형평성의 문제로 얼룩진 인재 요람의 장
형평성의 문제로 얼룩진 인재 요람의 장
  • 이수현 기자
  • 승인 2019.11.14 13:33
  • 호수 146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요시선 54. 2025 자사고·특목고 일반고 일괄 전환
출처 경향신문
출처 경향신문

 

 

● [View 1] 일반고등학교 교사 A 씨


나는 일반고에서 3학년을 담당하는 교사로 근무 중이다.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많은 학생이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나의 수업 준비에 문제가 있나 싶어 많은 성찰을 했다. 하지만 이것이 나만의 문제인지 확인하고자 교사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올려보니, 전반적인 일반고의 분위기가 우리 반과 유사하다는 반응이 많아 충격을 받았다.


지난 7일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고교 서열화 해소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오는 2025년까지 자율형사립고(이하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는 일반고로 일괄 전환된다. 일반고에 근무하는 나는 정부의 이번 발표에 공감했다. 우리 반 학생들의 무기력함이 서열화된 고등학교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정 학교로 우수한 학생이 쏠리면서, 일반고의 교육열과 자신감 하락이 유발된 것이다.


평소 대학 입시를 전담하다 보니,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도 우리 학교 학생들이 특수목적 고등학교(이하 특목고) 학생들보다 불리하다는 것을 느껴왔다. 정부의 이번 발표를 다룬 기사에서도 지난 5일 교육부의 ‘주요 대학 학생부 종합 전형 실태조사’에서 고교 서열화가 실제로 확인된 바 있다고 했다.


나는 특목고의 일반고 일괄 전환이 고교 평준화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미 1970년대 고교 평준화로 지역별 명문고가 사라진 실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육부가 5년간 약 2조2천억원을 투입해 일반고의 경쟁력을 강화한다고 한다. 이에 정부의 목표 달성 의지를 충분히 확인한 나는 현 정부의 ‘일반고 중심 고교체제 개편’ 정책을 지지할 생각이다.

 

● [View 2] 경기도에 거주하는 학부모 B 씨

나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평범한 학부모다. 평소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우리나라에 얽매이지 않고 국제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영어 조기교육에 공을 들였다. 다행히 아이들이 곧잘 따라와 줘, 후에 입학할 외국어 고등학교 중 어떤 곳이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는지 알아보며 최근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다.


하지만 교육부에서 갑작스럽게 외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한다고 발표해 당황스럽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육부는 평가를 통한 자사고의 ‘단계적’ 일반고 전환 기조에는 변함이 없음을 밝혔지만, 갑자기 일괄 전환으로 정책 방향을 수정했다. 학부모들이 원하는 것은 질적으로 훌륭한 교육과 교육 선택권이다. 하지만 이번 교육부의 발표는 교육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훼손하고, 특수한 상황에서 진학을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뜻을 짓밟은 것과 다름없다.


외국어고와 자사고 등의 일반고 일괄 전환은 ‘교육 특구’ 선호 현상을 만들 가능성도 크다. 현 정부에서 정시 확대 또한 추진되고 있기에, 수능에 유리한 과거 ‘강남 8학군’ 같은 명문고가 부활할 소지가 있다. 이는 외고가 전국 곳곳에 위치해 서울 밖에서도 교육 문제가 없었던 이전과 대비된다.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 때문에 경기도에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정부의 일방적인 고교 개편에 동의할 수 없다.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Report]

지난달 1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자사고·특목고의 일반고 일괄 전환'에 대한 국민여론조사에 따르면 찬성이 54%, 반대가 36.4%로 나타났다. 많은 국민이 고교 서열화 해소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은 현 교육체제의 수명 주기가 어느덧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교육부 발표의 취지는 ‘그들만의 리그’였던 자사고,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해 교육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일반고의 교육 수준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교육정책개편에 서 실질적인 성과가 나타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 8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헌법은 국민이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며 자사고, 특목고 폐지에 대한 헌법소원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는 오는 2025년을 염두에 둔 정책인 만큼 시행 여부가 차기 정권에 달려있어 실효 여부가 불투명하다.


흔히 교육은 ‘국가 백년지대계’로, 백년을 내다보고 세우는 계획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교육정책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사회 각계각층의 충분한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진행된 정책은 정권이 바뀌면 다시 폐기돼, 또 다른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현 정부의 신중한 대응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상황에서 타협을 통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이수현 기자
이수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suhyeon@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