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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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혜주·김종익 기자 정리=박예진 기자
  • 승인 2019.11.14 13:33
  • 호수 14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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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웅은 어떤 모습인가요

Prologue
지난 4월 개봉했던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면, 20대가 전체 관람객의 46%를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히어로 영화에 대한 20대의 열렬한 관심을 나타낸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히어로는 1. 영웅 2. (소설, 영화 등의) 남자 주인공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올해 미국 최대의 코믹스 회사 중 하나인 마블 스튜디오가 첫 여성 단독 히어로 영화 <캡틴 마블>을 공개하고 중국계 히어로 샹치를 주인공 반열에 올리면서, 정의만큼이나 한정적인 히어로의 모습을 보여줬던 영화계에 기분 좋은 반향이 불어오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히어로의 모습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에 본지가 히어로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고 다양한 히어로가 등장하게 된 이유와 배경을 알아봤다.


# 세상을 지키는 히어로의 등장!
문학 작품의 시초는 전설이나 신화를 기록한 글이다. 그중 건국 신화는 집단의 유대를 국가적 단위로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 그리스·로마 신화, 이집트 신화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국가의 건립을 정당화하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한편 미국의 경우, 현 GDP 1위 국가임에도 비교적 짧은 역사로 인해 건국 신화가 부재한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미국식 ‘슈퍼 히어로’다.


20세기 초 미국은 성장과 혼돈의 시기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국민들을 하나로 결집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경제 대공황을 겪으며 지쳐있었던 그때, 만화책 속에는 ‘슈퍼맨’이라는 히어로가 등장했다. 히어로가 추구하는 질서 유지와 정의 실현은 그야말로 미국인들이 열광할만한 요소였다.
더불어 미국은 서부개척시대에 가장 큰 가치였던 자유와 힘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는 공권력이 부재했기 때문에 강한 자가 곧 선한 것이라 불리던 시대였음에도, 미국인들은 서부개척시대 덕분에 현재의 미국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그 시절에 대해 미화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최고의 대통령 중 한명이라 불리는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카우보이 출신이기도 했다. 히어로는 이러한 계보를 계승한 것이다.


히어로 영화는 대체로 세계적 위기에서 미국의 상징적인 히어로가 세상을 구하는 서사로 흘러간다. 이런 내용은 미국인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권선징악과 민주주의 같은 미국적 이데올로기를 확립하기에 충분했다. 만화책에서 시작된 히어로물은 할리우드와 접목해 현재는 하나의 영화 장르로 자리 잡게 됐다. 북미 영화 흥행 집계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현재 역대 흥행 영화 상위 11개 중 5개가 히어로 영화라고 한다. 이 사실은 영화 시장에서 이들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 의존적인 여성 히어로? 독립적인 여성 히어로!
히어로의 다양성은 남녀평등의 역사와 함께 발달했다. 남녀평등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은데, 세계적으로 1900년대 초부터 여성에게 처음 참정권이 부여됐다. 미국은 1920년부터 헌법으로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시작했으며, 히어로 또한 이 시기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 1세대 히어로의 대부분은 남성 캐릭터로, 물리적 강함을 과시하고 힘으로 악을 물리쳤다. 그러던 와중에, 1943년 ‘원더우먼’이라는 여성 히어로가 처음 등장한다.


여전히 남녀차별이 이어지던 시기였음에도 원더우먼은 강한 초능력과 아름다운 외모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 인기는 다른 어떤 히어로와도 비할 수 없었고, 오로지 슈퍼맨과 배트맨만이 적수로 손꼽혔다. 하지만 영화화된 원더우먼은 큰 흥행을 거두지 못했고, 그 후 남성 히어로의 조력자로 역할이 축소되기에 이른다.


원더우먼과 슈퍼우먼, 그리고 배트우먼까지. 1세대 여성 히어로인 이들은 몇 가지 아쉬운 공통점을 가진다. 먼저 셋 모두 성적인 요소가 부각된 의상을 착용한다. 만화 속에서 원더우먼은 몸 선에 딱 달라붙는 튜브톱과 핫팬츠를 입고 있으며, 슈퍼우먼과 배트우먼은 각각 배가 드러나는 티셔츠 아래 짧은 치마와 전신 타이츠를 입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또한, 이들의 역할은 중심적으로 다뤄지기 보다는 남성 히어로의 조력자나 동반자에 그친다. 이러한 요소들은 당시 여성 히어로에게서 독립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만들며 1세대 여성 히어로의 한계점으로 남았다.


하지만 여성의 구매력과 사회적 지위가 상승함에 따라, 최근 새로운 여성 히어로가 탄생했다. 지난 3월, 마블은 첫 여성 히어로 단독 영화인 <캡틴 마블>을 개봉해 큰 흥행을 거뒀다. 이번 영화는 사랑 이야기가 부재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다른 여성 히어로 영화와 대비된다. 원더우먼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후 남성의 도움으로 힘을 각성하지만, 캡틴 마블은 여정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스스로 깨우치며, 독립적으로 악을 물리치는 히어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시대가 변했다. 이제 여성도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여성 히어로 역시 조연에 그치거나 성적인 요소가 부각되는 일 없이 홀로서기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개선돼야 할 점은 존재한다. 마블 스튜디오의 <블랙 위도우>는 만화 초반부터 등장한 주요 히어로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활약한 남성 히어로들의 단독 영화는 각 네 편 이상 개봉하는 동안 그의 단독 영화는 현재 제작중에 있다. 이를 통해 아직 캐릭터 역할 속 실질적 평등은 이뤄지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 편견은 깨라고 있는 법
작년 개봉한 영화 <블랙 팬서>는 마블 최초의 흑인 히어로 단독 영화로, 국내에서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앞선 흥행을 바탕으로 마블 스튜디오는 <블랙 팬서>의 후속 작품을 오는 2022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 중이며, 신작 <이터널스>에서는 성 소수자와 청각장애 히어로, 아시아계 히어로를 등장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마블 스튜디오의 대표적인 흥행작 <토르> 시리즈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여전사 발키리는 마블 스튜디오의 첫 성 소수자 슈퍼 히어로가 될 예정이다. 지난 3월 <캡틴 마블> 시사회에 참석한 마블 스튜디오 제작 팀장 빅토리아 알론소는 “이제 게이 슈퍼 히어로가 마블 영화 시리즈에 출연할 때”라고 전했다.


이처럼 기존에 백인 남성을 주요 관객층으로 삼아 히어로물을 제작하던 할리우드에서 다양한 히어로가 등장하고 있다. 기존 히어로의 전형적인 틀에 지친 관객의 증가와 성 소수자, 유색 인종 등 인종과 젠더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흐름에 영화계가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수요가 중국, 인도 등 전세계적으로 확장되며 선진국 중심 영화의 구성이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윤수현(심리치료·2) 씨는 “할리우드 내 만연했던 인종차별도 없어지고, 배우의 인종과 성별이 아닌 배우 개인의 능력으로 슈퍼 히어로 배역을 배정받을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노호수(중동1) 씨는 “확장되는 것은 좋지만, 이를 위한 어이없는 설정은 영화 관람이나 영화 받아들이는 데 있어 의문을 품게 해 제작사의 적절한 캐스팅이 필요하다”는 우려를 표했다.

# 다크 히어로,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벌하다
다크 히어로(Dark Hero)를 그대로 직역하면 흑의 영웅, 어둠의 영웅을 의미한다. 그래서 ‘다크 히어로(공공의 정의를 위해 활동)’와 ‘안티 히어로(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활동)’는 모두 영웅으로 불리긴 하지만 전통적인 선(善)에는 해당하지 않는 히어로다. 권선징악의 스토리로 교훈을 주던 과거의 히어로와 달리, 다크 히어로나 안티 히어로와 같은 새로운 양상이 등장하게 되면서 히어로의 정의 자체가 확대됐다. 이들은 선을 행하기 위해 거칠고 과격한 방법도 가리지 않고 도덕과 법률을 쉽게 무시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악에 대응하기 위해 악을 자처하는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악당 같은 히어로에 열광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본인을 이야기 속 등장인물과 동일시하며 극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인간은 완벽한 ‘선’이 아니기에 ‘선’ 그 자체인 히어로의 방식보다는 다크 히어로의 충동과 폭주에 공감하며 엄청난 쾌감에 휩싸인다. 악을 순수한 정의로 이겨내는 고전적 영웅들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지고, 악을 악으로 응징하는 안티 히어로에 기대감을 갖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박욱주 겸임교수는 “사람이 순전한 선과 의로움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기독교적이고 계몽주의적인 믿음은 점차 퇴색하고 있다”며 “‘악’이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포스트모던적인 인간 이해가 대중문화계를 지배해가면서 안티 히어로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 시대의 흐름 때문만은 아니겠지 ? 설마 !
모두가 열광하는 히어로물 영화를 만드는 할리우드 제작사도 결국에는 사업 수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기존 미주·유럽 대륙에서의 관점에서 벗어나 최근 일명 ‘티켓 파워’를 보여주고 있는 아시아 시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영화 <어벤져스:엔드 게임>은 중국에서만 6억2천910만달러의 기록적인 흥행 수익을 거뒀고, 국내에서도 1억520만달러의 수익을 거둔 바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할리우드의 여러 제작사는 앞서 언급한 <샹치>를 비롯한 여러 아시아계 히어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이러한 동향이 바로 아시아계 히어로가 등장한 배경이다.


관객층이 다양해짐에 따른 영화 제작사의 대응에 대해 한국컨텐츠진흥원은 『미국 콘텐츠 산업동향』에서 “할리우드가 백인 남성을 타겟으로 영화를 만들어온 전략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과 무관심했던 아시아계 관객층이 티켓 구매력을 가졌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작년부터 시작된 #metoo와 #timesup 등 성평등에 대한 캠페인이 할리우드의 성불평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제작사에서는 블록버스터를 비롯한 스크린 미디어에서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이 편중돼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인지했다”고 이러한 히어로 물 영화 흐름의 변화를 분석했다.


여성 슈퍼 히어로 영화의 등장에 대해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조석몽 겸임교수는 “여성 운동으로 인해 영향력이 크고 전파 범위가 넓은 상업 영화 속 여성 캐릭터 지위가 많이 상승했다”며 “‘여성 슈퍼 히어로’, ‘여전사’, ‘슈퍼우먼’ 등 스크린 속 여성 캐릭터는 현실사회의 여성 권리 및 평등에 대한 추구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Epilogue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히어로물의 매력이 외면받자 출판사들은 구매력을 가진 성인을 겨냥한 히어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수시로 등장했고 성적인 묘사나 불법적인 탈선을 아무렇지 않게 찍어냈다. 그렇게 히어로는 더는 어린아이들의 꿈으로 남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 히어로들이 인종적으로 다양해지고, 성 소수자 등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다루는 히어로가 등장하며 다시금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캡틴 마블>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브리 라슨은 최근 한 방송에서 “누구나 히어로가 될 수 있다”며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선보이는 것이 우리가 해나가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흥행을 유도하기 위한 자극적인 묘사가 판치는 히어로물의 시대는 지났다. 남녀노소, 인종과 취향에 관계없이 누구나 스크린 속 자신과 비슷한 모습의 히어로를 보면서 짜릿함을 느끼게 되는 것. 그것이 앞으로 세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히어로가 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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