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항해에서도 내 옆에 두는 일등항해사가 필요하다
인생 항해에서도 내 옆에 두는 일등항해사가 필요하다
  • 송정림 작가
  • 승인 2019.11.14 13:33
  • 호수 14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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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허먼 멜빌의 『모비딕』
▲ 영화 '모비딕'의 한 장면
▲ 영화 '모비딕'의 한 장면

 

이쉬마엘이 탄 포경선의 선장은 한쪽 다리를 고래에게 잃은 후 고래 뼈로 만든 의족을 끌고 다니는 에이헤브 선장이다. 복수심에 불타 광인처럼 백경을 찾는 에이헤브는, 피쿼드호를 끌고 오직 한 마리의 고래, 모비딕을 쫓아다닌다. 희망봉으로, 인도양으로, 태평양으로.

지금까지 무수히 보트를 뒤집고 많은 사람을 죽게 했다는 전설의 고래 모비딕!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선장에게 모비딕을 쫓는 일이 얼마나 무모하고 끔찍한 광기인가를 말한다. “무엇 때문에 저주받은 고기 따위를 사람이 쫓아야 한단 말입니까! 나와 함께 돌아갑시다. 지옥의 바다에서 뛰쳐나갑시다.”

그러나 에이헤브는 비장하게 말한다. “무엇 때문에 흰고래를 쫓아야만 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어떤 것이 나로 하여금 흰고래를 쫓게 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측량할 수 없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어떤 기만의 보이지 않는 주인이, 잔인무도한 황제가 내게 명령해서 나를 본연의 사랑과 정을 배반하게 한다고. 이 몸을 틀어막고, 밀고 나가고, 부딪치게 하고, 바삐 덤벼들게 한다고. 이것은 모두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때 드디어 나타난다. 뚜렷이 몇 마일 앞에서, 큰 파도가 물결칠 때마다 높고 빛나는 몸을 보이면서 묵묵히 규칙적으로 물을 하늘 높이 뿜어 올리는 백경, 모비딕이... 선장은 외친다. “준비, 준비! 집합, 집합하라!” 모비딕과 인간. 그들의 숙명적인 투쟁이 벌어진다.

모비딕은 무수한 작살들을 등에 꽂고도 하얀 신처럼 유유히 푸른 바다를 향기롭게 달린다. 아름다운 흰고래는 인간들의 광기 어린 복수심을 비웃듯이 물줄기를 뿜고 달린다.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선장에게 말한다. “신의 이름으로 이 일을 그만둡시다! 이건 악마의 광란보다 더 나쁩니다. 천사들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그놈을 쫓는 것은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경이며 신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비딕을 향한 복수심은 이미 그의 숙명이 돼버린 지 오래였다. 에이헤브는 계속 고래를 추격하고, 세 척의 보트가 고래에게 작살을 꽂는다. 그러나 흰고래는 바다를 부드럽게 유영할 뿐이었다. 결국 피쿼드호는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그리고 에이헤브는 고래에게 던진 작살 끈에 목이 감겨 고래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우리는 지금 어떤 모비딕을 쫓고 있을까. 우리의 적수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무엇을 정복해야 하는지 그 대상도 모르는 채 미친 듯이 달려가는 우리들. 어쩌면 에이헤브 선장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알 수 없는 대상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우리가 아닐까? 무언가를 향해 빠르게 질주하고 옆도 뒤도 돌아볼 틈도 없이 우리들이 쫓아가는 그 대상, 어쩌면 그것이 모비딕인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인생 항해에서도 내 옆에 두는 일등항해사가 필요하고 그가 말하는 조언을 귀담아들으며 내가 쫓는 모비딕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바다를 표류하는 이쉬마엘이 전해준다.

송정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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