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민의의 분출구
갈라진 민의의 분출구
  • 서현희·이수현 기자
  • 승인 2019.11.14 20:24
  • 호수 14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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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 - 서초동 및 광화문
▲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수많은 외침
▲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수많은 외침

[Prologue]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공화국의 최고 가치체계인 헌법. 그중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 2항에 당당히 명시돼있는 ‘주권 재민’의 가치를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실감한다.
그중에서도 ‘집회’는 국민이 목소리를 내고 민의에 따른 승리를 거두는 가장 민주적인 최후의 수단이었다. 가깝게는 지난 탄핵정국부터 멀게는 4.19 혁명까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국민의 손으로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본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거취를 주제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던 제8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와 제148차 태극기집회, 바른미래당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 촉구 촛불집회를 찾아가 각각의 집회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취재해봤다. 지난달 5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퇴로 이제는 역사가 돼버린 열기 가득한 그 현장에 본지가 함께 했다.

▲  맞불을 놓기위해 서초동에서 휘날리는 태극기
▲ 맞불을 놓기위해 서초동에서 휘날리는 태극기

■ 조국 구속, 법치 수호,
국민 저항권 발동!
취재 당일, 서초동에서 조국 장관을 둘러싼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맞불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서초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철에서 내리니 입구 계단부터 경찰들이 질서유지하는 모습에 긴장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역사의 현장에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 이내 긴장은 기대로 변했고, 한껏 기대감에 취해 서둘러 집회 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촛불집회에서 태극기집회로 향하는 길. 몸에 피켓을 두르고 화를 내며 걸어가던 참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자극적인 사진과 문구가 적혀있던 현수막은 기자에게 새로운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집회 참가자는 대부분 노년층이었지만 그들의 목소리와 행동에는 힘이 넘쳤다.


태극기집회를 주최하는 단체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주최 측 부스에 찾아갔다. 집회를 주최한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공화당 송영진 대외협력실장은 “문재인 정부는 기회가 균등하고 과정이 공정한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조국 장관 임명을 통해 스스로 적폐가 됐다”라며 현 정부에 대한 깊은 분노를 드러냈다. 또한 평소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던 태극기집회를 서초동에서 진행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그는 “촛불만이 민심은 아니며 국민의 다른 소리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라고 답했다.


태극기집회에는 우리공화당 당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 심지어는 미국 버지니아에서 온 미국 시민권자 등 많은 사람이 자리했다. 20대의 두 딸과 함께 태극기집회에 참가한 신순옥(54) 씨는 지난 2016년을 시작으로 열린 제1차 태극기집회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일반 참가자였다. 그는 “현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에 분노를 느꼈다”며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집회에 계속 참여할 것”이라는 강한 참여 의지를 보였다.

▶ 긴박한 시위현장
▲ 긴박한 시위현장

■ 도를 넘은 혐오 표현,
집회의 명암
태극기집회 현장은 질서정연한 모습이었으나 집회 현장과 조금 벗어난 곳에서는 폭력 행위와 여러 혐오 발언이 오갔다. 태극기집회 장소로 가는 길 좌측에 오후 6시로 예정된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신고된 집회 시간 이전부터 자리하며 양측 간의 공방전이 이어졌다.


집회 현장으로 향하던 태극기집회 참가자로부터 혐오 발언이 먼저 터져 나왔다. “빨갱이”, “나쁜 놈들.” 선글라스와 특전사 군복 차림의 한 태극기집회 참가자는 참다못해 경찰 바리케이드를 넘어 상대 집회 장소로 뛰어들었다. 다행히도 수십명의 경찰들이 그를 제지하기 위해 달려들어 이는 미수에 그쳤다. 초기에는 침착함을 유지했던 촛불집회 참가자들도 결국 ‘닭사모’, ‘수구꼴통’ 등의 혐오 발언으로 응대하며 현장은 잠시 소란을 겪었다.

▲ 구호를 외치고 있는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집회 참가자들
▲ 구호를 외치고 있는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집회 참가자들

■ 조국 감싸기 그만!
특혜장관 자진사퇴 하라!
서초동 촛불집회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전, 4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기자는 혹시 다른 집회가 예정돼 있을까 기대하며 집회의 성지인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여러 집회 속 시끄럽고 혼잡한 분위기를 예상하고 갔지만, 도착 후 적막하기만 한 광화문광장을 보고 ‘혹시 헛걸음을 한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바른미래당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 촉구 촛불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안도했다.


태극기집회의 강렬한 모습 때문일까. 유사한 목소리를 내던 이전 집회와 대비되는 바른미래당의 집회 분위기는 다시 한번 기자를 놀라게 했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잔잔한 콘서트가 끝난 뒤 조촐한 집회 분위기 속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참석해 ‘조국 장관 임명 철회’를 힘차게 외쳤다. 이 장면은 기자에게 성숙하고 평화로운 집회의 모습을 선사했다.


바른미래당 정찬택 조직 위원장에게 이번 집회를 주최하게 된 배경을 물었다. 그는 “청춘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준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국 장관을 해임해달라는 뜻을 촉구하기 위해서”라며 “시민 모두가 발언하고 참여할 수 있는 문화행사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또한 해당 집회는 제5회를 맞은 정기집회로,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장관을 해임할 때까지 지속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비록 소수가 자리했던 집회였지만 일반 시민들의 참여도 있었다. 이번이 첫 집회 참석이라는 익명을 요구한 시민 A(21) 씨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국 장관 임명을 서두른 문재인 정권의 잘못을 비판하고자 나왔다”며 차분한 어조로 본인의 뜻을 전했다.

■ 조국 수호 검찰개혁!
정치검찰 OUT!
광화문 취재를 마치고 서초동으로 돌아왔을 때는 어느덧 오후 8시가 지나있었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 집회 분위기는 절정에 달아올라 있었다. 대검찰청 앞, 8차선 도로가 촛불로 가득 찬 모습을 보니 숫자로만 다가왔던 엄청난 인파가 체감됐다. 오전부터 삼삼오오 모여든 참가자들은 서초역에서 교대역까지, 그리고 예술의 전당 부근까지 모든 방향의 도로를 가득 메워 일부 구간에서는 한 발자국도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시민들이 밝힌 촛불은 밤하늘을 환하게 수놓았고 촛불이 밝아진 만큼 검찰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도 더 우렁차게 들려왔다. 무대의 발언자가 하는 말을 들어보려 했으나 “조국 장관을 향한 검찰 수사는 정치적 성격을 띈 과잉 수사”라는 말밖에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이에 직접 주최 측의 공식 입장을 들어보고자 무대 방향으로 향했지만 인파가 몰려있어 접근조차 어려웠다. 태극기집회와는 달리 촛불집회에서는 특정 정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시사타파TV’에서 무대방송을 진행하고 있었고, ‘사법적폐청산 시민연대’, ‘개싸움 국민운동본부’ 등 여러 진보시민단체의 모습이 발견됐다.


촛불집회에서는 아들을 무등 태우고 온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안산에서 온 정유정(53) 씨는 집회에 참여한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조국 장관이 검찰을 개혁할 수 있도록 정부에 힘을 실어줘 후손들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나왔다”고 답했다. 이번이 두번째 집회라는 그는 계속해서 촛불집회에 참여할 예정이라 밝혔다. 한편 어머니와 함께 집회에 참여한 임재현(32) 씨는 3년 전 광화문 촛불집회 이후 처음 참석한 집회라고 했다. 그는 “공수처 마련과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자리를 채워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나왔다”라고 말했다.

[Epilogue]
지친 몸을 이끌고 서초역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 지하철 안에서 한 참가자가 집회현장에서의 흥분을 추스르지 못한 채 큰소리로 집회 구호를 외쳤다. 이에 다른 참가자들이 호응하기 시작하자 지하철 내부는 곧 집회 현장으로 뒤바뀌었다. 일반 시민도 많았던 열차 내부에서 기자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지하철을 타기 전, 서초역에서 촛불집회 참가자와 60대 일반 시민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은 채 언쟁하던 모습과 이전의 집회현장에 있었던 여러 충돌 상황이 떠올랐다. ‘서로의 말에 귀를 닫고 갈라서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기자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당일 집회현장의 모습은 갈라진 민의의 분출구와 다름없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였다.


기자는 수많은 사람과 통일된 구호를 직접 목격하며 새삼 여론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또한 이 통일된 구호로 서로를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모습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도 느껴볼 수 있었다. 다만 의견이 격렬히 대립되는 그들도 추구하는 한 가지만은 같았다. 그들은 모두 정의로운 나라를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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