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 해몽, 술보다 해장
꿈보다 해몽, 술보다 해장
  • 윤주필(국어국문) 교수
  • 승인 2019.11.19 14:56
  • 호수 14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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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필(국어국문) 교수
윤주필(국어국문) 교수

 

 

성경에는 151번 꿈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탈무드』에서는 “해석하지 않은 꿈은 읽히지 않은 편지와 같다”라고 했다. 어떤 교수신부의 말씀마따나 하느님은 매일밤 연애편지를 쓰는데 우리는 매일 아침 봉투도 뜯어보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린다. 꿈은 해석하는 자의 것이다. 『구약성서·창세기』 41:1~38에는 파라오의 꿈과 요셉의 꿈풀이가 있다. 꾼 사람보다 풀이한 사람이 하느님의 전갈을 받아 쥐는 셈이다. 이 대목은 결국 꿈장이(dreamer) 요셉의 이야기이다.


『삼국유사』에서도 꿈 이야기가 나온다. 「태종춘추공」의 <문희매몽(文姬買夢)>이 그것이다.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는 언니의 꿈을 비단치마를 주고 샀다. 언니가 꿈에 산에 올라가 오줌을 누었는데 서라벌 성안에 가득찼다. 문희는 꿈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내가 되고 언니는 겨우 좋은 치마 하나를 얻었다. 여기서도 꿈 꾸는 것 이상으로 꿈을 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꿈 이야기에는 항상 해몽의 과정이 곁들여지지만 풀이가 이야기의 본령이다. 또 꿈을 푸는 데도 두 가지 태도가 서로 견주어진다. 나쁘면 나쁜 대로 풀어야 결과가 좋지 입맛에 맞게 풀면 위험하다. 흉조를 대비하면 길조가 되고 흉조를 방치하면 망조가 된다. 사실 좋은 꿈이 악몽이고 나쁜 꿈은 길몽이다. 꿈은 이미 겪은 일들이 의식 밑바닥에 가라앉아 뒤엉켜서 미래를 암시한다. 사람은 언제나 과거를 통해서 현실을 살지만 미래를 꿈꾼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그래서 꿈을 꾼다면 꿈을 풀어나갈 줄 알아야 한다.


꿈 비슷한 것으로 술이 있다. 꿈을 꾸면 아리송하고 술을 마시면 취한다. 취하라고 마시는 게 술이라고 하면서 술에 감기고 끝내 술이 술을 마신다. 취생몽사(醉生夢死), 흐리멍덩하게 사는 삶이다. 사실 술은 첫물에 취하고 사람은 훗물에 취하는 법이다. 오래 사귄 좋은 벗과 함께 하니 술이 없어도 이미 취한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살이가 따분하거나 고단할 때 술을 찾는 것만은 아니다. 복을 나누기 위해서 술을 함께 마셨던 것이 우리네 미풍양속이었다. 음복(飮福)은 복을 마시는 행위이다. ‘福’이라는 글자 자체가 그것을 증명한다. 示는 신의 계시이고, 은 불룩한 술병을 나타낸다. 신령과 통하고 너와 나를 허무는 데 있어 술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제삿술에 분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디 제삿술뿐이겠는가? 좋자고 마신 술이 사달을 일으키기 일쑤이다. 공자께서는 술에 대해 특별한 태도를 취하셨다. 『논어』 「향당」 편에 의하면 다른 음식과는 달리 오직 술만은 양을 미리 정하지 않았지만 혼란한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한다. 한 잔 술에 마음이 어지롭다면 그만 마셔야 하고, 취할 때까지 기분이 마냥 상쾌하다면 취향(醉鄕)의 복록을 누리는 것이다. 누구냐에 따라 한 잔 술에 눈물 나고 반 잔 술에 웃음도 난다. 술은 꿈만큼이나 다루기가 까다로운 존재이지만 결국 어떻게 풀어가느냐 문제의 핵심이다. 꿈보다 해몽인 것처럼 술보다 내 속을 먼저 푸는 것이 중요하다. 해장을 숙취 끝에 한다면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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