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이해해야 진짜 가족이다
슬픔을 이해해야 진짜 가족이다
  • 송정림 작가
  • 승인 2019.11.22 11:03
  • 호수 14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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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카프카의 『변신』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가 불안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기가 침대 속에서 커다란 벌레로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갑옷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누워 있었는데 나머지 몸뚱이에 비해 너무나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가 눈앞에서 힘없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변신>이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정작 그 자신은 놀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레고르는 그저 걱정할 뿐이다. 오늘 회사를 어떻게 가야 할까를.

그레고르가 일하지 못하게 되자 집안에 돈 걱정이 늘어간다. 그동안 그레고르가 일해서 가족들이 편히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 은행 수위가 되어 금 단추가 반짝이는 감색 제복을 입은 아버지가 퇴근해 들어와 그레고르를 밟아 죽이려고 한다. 그레고르가 달아나자 이번에는 선반 위의 과일 접시에서 사과를 주머니에 잔뜩 쑤셔 넣고 계속 사과를 던져댄다. 날아온 사과가 그레고르의 등에 깊이 박힌다.

살림이 줄자 어머니도 누이도 취직한다. 누이동생이 청소하던 방이 이제 오물과 먼지로 뒤덮인다. 살림에 보태려고 하숙을 치기 시작하는데 하숙인들의 쓰지 않는 물건들과 부엌 쓰레기통이 그레고르의 방에 쌓인다. 그레고르는 실과 머리털, 음식 찌꺼기 같은 것을 잔등이나 옆구리에 잔뜩 붙인 채 질질 끌며 기어 다닌다.

하숙인들이 거실에서 식사를 마쳤을 때 누이는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한다. 그레고르는 음악 소리에 감동해 앞으로 나간다. 그녀의 눈과 자기의 눈이 마주칠 수 있을까 하고 머리를 낮게 바닥에 문질러 댄다. ‘이토록 음악이 마음을 감동시키는데 그래도 벌레일까?’ 그때 하숙인들이 그레고르를 발견한다. 집안에 대 소란이 일어난다. 누이동생이 손으로 탁자를 쿵! 두드리고 말한다. “만약 저게 오빠라면, 제 발로 나갔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 이제 어떡한다?’ 그레고르는 생각했다. ‘없어져야 한다.’

다음 날 아침, 그레고르가 죽었음을 알게 된 가족들은 감사의 성호를 긋는다. 가족들은 봄날 아침의 부드러운 공기 속으로 나가 전차를 타고 야외로 나간다. 그들은 장래 계획을 얘기하며 이제 딸에게 훌륭한 짝을 찾아줘야겠다고 생각한다.

부지런히 일해서 가족을 부양할 때에는 사랑하는 아들, 존경하는 오빠였으나 아무런 가치가 없어지자 한 마리 징그러운 벌레가 돼버리는 현실. 과연 가족의 의미는 그런 걸까? 과연 사랑의 의미는 그런 걸까? 돈을 벌지 못하고 다른 이와 다르게 생기고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 인간은 소외된다. 소외의 외로움일랑 가슴에 담아두고 낮아진 어깨를 추스르며 당당함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우리의 아버지, 우리들의 친구, 연인, 그리고 나. 그의 슬픔을 이해해야 진짜 가족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위안하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그래야 서로 괴물이 되는 것을 막을 수가 있다고, 슬픈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전해준다.

▲ 『변신』의 저자 프란츠 카프카
▲ 『변신』의 저자 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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