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개발 사이 : 현대화 속 깊어진 갈등의 골
전통과 개발 사이 : 현대화 속 깊어진 갈등의 골
  • 금유진·김종익 기자
  • 승인 2019.11.22 11:02
  • 호수 14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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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량진수산시장

 

Prologue

1927년 서울역 인근에서 ‘경성 수산’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한 후, 1971년 지금의 노량진동으로 이전을 하며 우리나라 대표 수산시장이라는 명성을 이어온 노량진수산시장. 그러나 2012년부터 진행된 현대화 사업의 영향으로 구 노량진수산시장(이하 구 시장)은 엉망이 됐고, 신 노량진수산시장(이하 신 시장) 마저 기존 상인들과 관리 운영 담당인 수협중앙회 간의 물리적 마찰까지 이어지며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빚었다. 그렇게 전통과 개발의 충돌이 시장을 가득 채웠던 지난 시간. 이에 본지는 명의 양도 집행 이후 4개월이 흐른 현재 시장에 일어난 변화와 그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13일, 노량진수산시장을 찾았다.

▲ 노량진역 육교에 걸린 개발 반대 현수막
▲ 노량진역 육교에 걸린 개발 반대 현수막

 

투쟁, 구 노량진수산시장의 흔적

전국적인 비 소식이 가득했던 날. 제법 쌀쌀해진 온도와 궂은 날씨 탓인지 유난히 어두운 하늘을 가진 노량진역에 하차했다. 출구를 벗어나자마자 곳곳에 부착된 개발 반대 포스터와 생선, 호떡, 어묵 등 갖가지 음식을 팔고 있는 노점상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작은 공간 안에 밀집된 점포 사이 ‘노량진수산시장 사수’, ‘서울시는 책임지고 중재하라’ 등의 글귀가 새겨진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기자는 이곳이 개발을 반대하는 구 시장 상인들의 활동 무대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구 시장 시민대책위원회 윤헌주(51) 공동위원장에 따르면, 시장 현대화 사업이 진행된 후 투쟁을 지속한 지는 3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들은 “수협이 서울시민과 상인을 생각하지 않고 본사의 이익만을 추구해 노량진수산시장은 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며 신시장에 들어간 상인들도 수협의 임대료 징수와 노예계약 등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이어 수협이 하는 현대화 사업은 시장을 이용하던 시민들과 상인들을 위한 현대화가 아니라며, “수협이 들어서기 전에는 임대료를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시장을 운영해 나갔으나, 현재는 수협이 연간 100억여 원의 임대료를 받아 가는 상황”이라며 냉소를 보였다. 기자가 그와의 대화를 마치고 신 시장으로 가려는 찰나, 뒤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왜곡해서 담는 주요 언론사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달라”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게 인사를 하고 신 시장으로 향하던 중 갑작스럽게 노점을 철거하기 위해 방문한 동작구청 직원들과 상인들의 다툼이 벌어졌다. 놀란 기자에게 한 상인은 “평일에 매일같이 찾아와 철거를 요구하고, 우리가 모여 막으면 다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며 익숙한 듯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 신 시장으로 들어가는 통로 벽에 쓰여진 글귀
▲ 신 시장으로 들어가는 통로 벽에 쓰여진 글귀

 

적응, 생업이기에 선택한 신 노량진수산시장

노량진역에서 몇 발자국이나 걸었을까. 수산시장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나왔다. 통로 입구 벽면에는 ‘현대화 부실 공사 철거’라는 글씨가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문득 노후된 벽면에 흉물스럽게 박힌 진한 그 글씨가 미처 지우지 못한 이곳의 상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수산시장에 입성했다.

막상 마주한 시장은 크나큰 갈등이 지나간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모습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생선과 수많은 상회를 분류한 작은 간판, 저마다 원하는 생선을 찾기 위해 시장에 들른 사람과 생선을 팔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상인들의 목소리만이 건물을 가득 채웠다.

“구 시장에서 하루에 쥐를 30마리씩 잡을 정도로 열악했던 환경을 마주하며 언젠가는 개발이 이뤄질 것을 예상했다”는 수산시장 30년 경력의 상인 A 씨. 그는 “이제 쾌적한 공간에서 일할 수 있어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수결에 의한 선택을 지지한다던 그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갈등은 일부 상인의 목소리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만난 수산시장 25년 경력의 B 씨는 가격이 저렴하고 큰 공간이 확보됐던 구 시장을 그리워했다. “수협과 시장의 깊은 갈등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돈이 법을 이겼다”는 말을 내뱉으며 논란이 됐던 개발 과정을 조심스레 상기하던 그는 기자와의 대화 중에도 옆을 지나는 손님을 높은 목소리로 부르기 바빴다.

수산시장의 현대화를 바라보는 상인들의 시선은 저마다 달랐으나, 이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과거보다 현재가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같았다. 퇴근 후 남은 생선을 포장해 집에 돌아가던 익명을 요구한 상인 C 씨는 “장사가 어려운 것은 경제가 좋지 않은 사회적 흐름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누구의 탓도 하지 않는다”며 그저 장사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사실 몇십년동안 장사를 이어온 그들에게는 시장의 변화가 불러일으킨 수심보다 당장 떨어지는 매출에 대한 걱정이 더욱 앞섰다. 순탄치 않은 과정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이들이지만, 지금은 한마음으로 모여 신 시장에서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신 시장으로 들어온 데에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중요한 삶의 터전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것뿐. 이 와중에도 남은 동료를 생각하는 마음에 쉽사리 이름조차 밝히지 못한 채 목소리를 내는 그들의 주저함이 우리네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 신 시장 내부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
▲ 신 시장 내부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

 

개발, 수협 관계자의 이야기

신 시장 건물 6층에서는 ㈜수협노량진수산 경영기획부 현진규 대리를 만나볼 수 있었다. 현대화 사업의 취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구 시장은 건물안전 정밀검사에서 C, D등급을 받을 정도로 노후화된 건물이었고, 건물 외벽이 따로 설치돼 있지 않은 개방형 구조 때문에 수산물 변조의 위험이 컸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량진수산시장 부지는 엄연히 모회사인 수협중앙회 소유의 토지로써, 구 시장을 마저 철거한 후에는 수산복합테마파크가 건설될 예정임을 밝혔다. 기존 상인들과의 갈등에 대해서는 “원래 수협은 지금과 같이 강제집행 등의 물리적 마찰은 고려하지 않고, 상인들과의 완벽한 합의를 통한 신시장으로의 입주를 원했다”며 서울시 관할의 중앙도매시장인 노량진시장의 사회적 위치를 생각해 서울시와 수협, 상인 간 3자 회의를 여는 등 최대한 평화적인 합의를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아직 100여 명의 상인이 신 시장에 입점하지 못한 점에 아쉬움을 표했다.

끝으로 그는 노량진수산시장의 정상화 여부에 대해서 “명의 양도 집행도 완료됐으며 구 시장의 상인들이 대부분 이전해 현재는 3천여 명의 상인들이 신시장을 이끌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구 시장에 대한 철거가 진행될 예정이니 드디어 노량진수산시장이 정상화 궤도에 들어섰다고 본다”며 올해를 시장 이전의 원년으로 보고, 문화 관광지로의 도약을 진행할 것임을 알렸다.

▲ 신 시장 앞에 설치된 조형물
▲ 신 시장 앞에 설치된 조형물

 

이용, 시민들이 바라본 신 노량진수산시장

그간의 갈등을 모두 알고 있는 상인과 수협 관계자. 그사이에는 노량진수산시장을 방문한 사람들이 있다.어떠한 이해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단순히 수산물 하나만을 목적으로 이곳에 들른 사람들. 학보사 기자라는 말에 대화를 아끼던 시장 상인들보다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로 인터뷰에 응하던 소비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한남동에서 생선을 사기 위해 시장에 들렀다는 조이순(64) 씨는 “이전보다 작아진 시장의 규모와 적은 구경거리, 그리고 가격이 오른 물건이 아쉽다”며 과거 수산시장의 모습을 그리워했다. 그러나 그는 시장이 개발돼 쾌적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에 크게 공감했다.

친구들과 회를 먹기 위해 노량진에 들렀다는 최진영(21) 씨 역시 “신식 건물이 생기기 이전부터 노량진수산시장에 자주 들렀다”며 “아직 완벽한 모습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눈에 띄게 깔끔해진 시장의 변화가 돋보인다”고 말했다. 종로 3가에 사는 박동균(85) 씨 역시, “건물이 지어지면서 통로가 제한돼 시장 환경이 복잡해졌지만, 이전보다 깨끗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며 시장 변화에 대한 의견을 더했다.

Epilogue

취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장을 가기 전에 만났던 구 시장 상인들이 기자에게 어묵 국물을 건네주며 말없이 웃음을 내보였다.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지하철을 탄 기자는 오늘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구 시장 상인들이 역 앞에 나와 노점을 운영하며 구청 직원들과 부딪히는 모습. 신 시장 상인들에게 구 시장 상인들에 관해 묻자 거북한 표정으로 대답을 거부하던 모습. 수협 직원이 기자와 대화하며 신 시장의 향후 계획을 말해주던 모습. 기자가 마주했던 장면들은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익집단이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다. 노량진수산시장이라는 큰 공간 안에도 이익집단들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며 존재하고 있다. 과연 이들도 갈등을 통해 본인의 이익을 실현하고 싶었을까. 누군가의 과거이자 미래, 그리고 현재인 노량진수산시장에 얼룩진 흉터가 하루빨리 씻겨지길 바란다. 모두가 염원하는 ‘시민을 위한 노량진수산시장’의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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