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그리다
기사를 그리다
  • 박두진 일러스트 기자
  • 승인 2019.11.26 14:32
  • 호수 14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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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진 뉴미디어 부장

 

먼저, 기자는 미술부 기자로 본지에서 활동해왔다. 지금까지 삽화로만 기사를 실어 왔으나, 표현방식을 바꿔 처음으로 글로 기사를 작성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 이전에 기자가 신문을 발행할 때 하던 고민은 삽화 하나로 어떻게 기사가 담고 있는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이렇게 글을 풀어 필자로서 의견을 표현하자니 매우 신선하다. 더불어 이번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 취재부 기자들이 기사를 쓰며 경험했을 고충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미술부 기자의 업무는 각종 시각 자료와 만평, 만화 등 다양한 삽화를 그리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음에는 난감했던 취재부 기자들의 미숙한 콘티 그림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 정도로 다사다난한 일상이 지나갔으며 매주가 창작의 연속이었다. 몸으로 부딪치는 인터뷰의 연속이 취재부의 업무라면, 삽화 하나로 어떻게 기사의 내용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고민하는 것이 미술부의 업무다. 이 업무는 기자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신문에 할애하게 만들었다. 취재부 업무에 비하면 비교적 시간이 덜 드는 업무일 수 있으나, 삽화를 그리는데 다른 기자들만큼이나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이유는 기사의 완성도에 대한 욕심이 날 뿐 아니라 즐거움도 함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부 기자에게도 고충은 있다. 공들여 그린 그림이 본지에 실리지도 못한 채 휴지통으로 버려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모든 그림에 열정을 쏟아야 한다. 과거 한 미술부 기자가 열심히 취재를 마친 취재부 기자의 기사와 함께 실릴 삽화를 제대로 그리지 않아, 그간 취재해온 기자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당시 담당 기자가 아쉬워하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삽화 또한 기사의 완성도에 많은 부분을 관여한다는 점이 삽화를 안일하게 그릴 수 없도록 만든다. 기자 또한 그런 이유로 취잿거리를 직접 발로 뛰며 구하러 다니는 취재부 기자들의 노력이 깃든 글에 들어갈 사소한 삽화 그림 하나라도 허투루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한 마음가짐이 되려 스스로를 창작의 고통에 빠뜨린 것 같지만, 기자는 그렇게 만들어진 현재의 모습에 만족을 느낀다. 오랜 고민 끝에 그린 결과물이 만족스러울 때에는 신문에 실린 기사 삽화가 자랑스럽기도 하다.

 

단대신문을 시작하기 이전의 기자는 정확한 명암과 꼼꼼한 투시법, 그리고 적절하게 배치된 채색만이 사람을 감명 깊게 만드는 그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대신문에서 미술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완성도가 조금은 떨어지더라도 풍자와 여운을 담은 의미 있는 그림이라면 독자에게 깊은 감명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로 미술부 기자들이 취재부의 보조가 아닌 미술부 기자로 활동하며 본인만의 독창성과 표현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또한 그렇게 노력해온 기자의 노력이 단대신문의 발전에 한 걸음이 되길 희망한다. 비록 신문에 실리는 삽화는 회색 배경에 흑백 잉크로 그려진 초라한 그림으로 보일 수 있지만, 기자의 눈에는 이 초라한 그림이 마치 형형색색 칠해진 하나의 오롯한 작품으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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