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읽기
민심 읽기
  • 윤주필(국어국문) 교수
  • 승인 2019.11.29 15:07
  • 호수 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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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필(국어국문) 교수
윤주필(국어국문) 교수

 

 

최근 한국은 국내외적으로 여러 어려움에 휩싸였다. 언제 안 그런 적이 있는가 싶지만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 지금 풀어야 할 현안들이 쌓여있다. 한국 사회는 얼마큼 공정한가? 한미동맹과 남북협력의 관계는 진정 모순적인가? 책임 있는 국가 기관의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과제가 어렵고 도전이 거셀수록 민심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는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 그대의 손바닥으로 무한을 붙들라”고 하면서 순수의 힘을 노래했다. 순수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결국 나타나고 들리지 않는 듯해도 끝내 드러난다. 『신약성서』에서 예수께서는 “돌멩이들이 소리를 칠 것이다”라고 했다.


전통시대의 통치자들은 민심을 두려워해서 민요를 채집했다. 이러한 전통은 이미 한문학의 경전이라 할 『시경』에서부터 마련됐다. 우리나라 『파한집』도 그러한 사정을 잘 증언해 준다. 의종(毅宗)은 신하들과 시 짓는 모임을 자주 열어 ‘문학을 사랑한 임금’으로 칭송받았지만 호위무사처럼 무신을 부려서 고려 무신란의 빌미를 제공했다. 문치주의를 표방했던 중세 국가의 통치자로서 왕은 문학을 정치에 활용하려 했다. 그는 전국 각지에 관리를 파견해 객관에서 시작품들을 수집하게 했다. 백성들의 여론과 풍속을 감찰하려는 의도였다. 관료들은 좋은 작품을 추려서 시선집을 제작하고 임금에게 보고했는데, 뼈 아픈 소리를 하는 두 작품에 왕의 눈이 멈춰서 얼굴색이 변하니 신하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또한 어려운 국내 사정으로부터 세계정세를 읽어야 한다. 1912년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민요를 수집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가운데 황해도에 채집한 <풍자요>들은 왜정(倭政) 3년을 두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야하고 부르면 왜하고 대답하는데/ 아인(俄人)이 가고서 왜인(倭人)이 온다”라고 한 것은 해방 후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중국 되 나오고 일본 일어선다. 조선 사람 조심하라”고 한 노래의 예고편이다. “망(亡)할 놈 보라고 전하는데/ 오늘의 봉작가(封爵家)는 망한(亡韓) 놈이라”라고 한 것은 나라가 망하는 와중에도 일제에 빌붙어 귀족 작위를 받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니 ‘토착왜구’의 연원을 꼬집었다. “밥을 먹으면 똥 눌 걱정이라/ 경찰의 청결법 이 아니냐”라고 할 때는 ‘정리정돈’을 입에 달고 사는 훈육식 국민교육도 모자라 ‘청결법’이 등장한 것을 비꼰 것이다.


“호미(虎尾) 놓기 어렵다는데/ 오늘의 지나(支那)는 호미 놓기 어렵다”는 그 가운데 압권이다. 이는 단지 100여 년 전 중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호랑이 꼬리를 잡고서 그냥 있자니 힘이 달리고 놓자니 물릴 것 같은 어려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미국 주도의 세계 자본주의에 편입된 것이나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것은 마치 호랑이 꼬리를 잡거나 그 등에 올라탄 것과 같다. 호랑이를 능수능란하게 부리려면 어찌할 것인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민심에 의지해 자력갱생의 길을 찾아야만 호랑이라도 이롭게 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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