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너머의 감정을 전하다
카메라 너머의 감정을 전하다
  • 이서연 기자
  • 승인 2020.04.14 17:12
  • 호수 14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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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감독 오재호(45) 씨

Prologue
연필로 글씨를 쓸 때 누가 쓰는지에 따라 글씨체가 다르다.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누가 언제 어떤 기법으로 촬영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SKY 캐슬>, <슬기로운 시리즈>를 모두 동일한 사람이 촬영했다면 믿겠는가. 이번에 만나볼 인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콘텐츠 시장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을까.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촬영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재호(45) 촬영 감독을 서울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만나봤다.

 

▶ 자기소개 부탁한다
한국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는 촬영 감독 오재호다.

 

▶ 영상에 관심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교에 영화연출 전공으로 입학한 뒤 군대를 다녀와서 촬영 전공으로 바꿨다. 그전에는 영화에 촬영, 조명, 편집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공부하다 보니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들 각자가 굉장한 전문가들이었으며 어떤 공부를 통해 현장에서 일하게 됐는지 알게 됐다. 이후 선배들의 단편영화를 따라다니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 드라마계 데뷔 전까지 다양한 단편영화 작업을 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단편영화의 매력은.
사실 단편영화는 지금도 작업하고 싶다. 상업 영화나 드라마는 실험적인 무언가를 시도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단편영화는 풍부한 예산으로 진행은 못 하더라도 ‘독특한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있다.

 

▶ 이후 드라마계로 진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영화든 드라마든 촬영 감독으로 데뷔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도 서른아홉에 드라마를 처음 찍었을 거다. 딱 한 번만 적당한 예산과 배우들, 조명팀 등이 갖춰진 상황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때 신원호 감독을 만나 만든 작품이 <응답하라 1997>이다. 그렇게 드라마를 시작해서 현재까지 드라마만 하고 있는데 지금은 어떤 것만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싶진 않다. 나한테 주어진 모든 것을 다 해보고 싶다.

 

▶ 오랜 기간 영상을 촬영했는데 최근 기술의 발달로 변화된 점을 느끼는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왔다. 이건 쉽게 변했다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필름은 다시 감아 쓸 수가 없어 많은 고민과 리허설을 통해 한 컷을 찍었다면 지금은 여러 방향으로 해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필름과 달리 디지털은 직관적이기 때문에 비전문가라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본인에게 카메라는 어떤 의미인가.
작가는 글로 쓴다면 나는 카메라로 쓴다. 카메라, 렌즈와 필터들이 내가 쓸 수 있는 무기다. 한 컷을 찍을 때 무슨 렌즈로 어떻게 찍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즐거운 도구이기도 하다. 찍을 때마다 재밌다. 솔직히 샷은 똑같은데 매번 다른 감정과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에 달라 보인다.

 

▶ 촬영 감독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은.
인터뷰하고 있는 지금 같은 경우다. 나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궁금해하는 걸 보니 내가 하는 일이 여러 곳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느껴진다. 내가 지금까지 혼자만의 힘으로 오지 않은 것처럼, 미래의 촬영 감독들에게 좋은 밑거름이 되고 싶다.

 

▶ 수많은 촬영 감독 사이에서 본인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드라마에서 전 작품과 전 회 모두 핸드헬드(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손으로 그립을 잡은 채 찍는 촬영 기법)로 찍은 건 내가 처음인 것 같다. 이제 감독들과 미팅을 할 때 “이번에도 다 핸드헬드로 하실 거죠?” 이렇게 먼저 물어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제는 나의 상징이 돼버렸다.

 

▶ PD나 작가 이외 제작진들의 이름은 엔딩크레딧이 아니면 찾기 어려운데 이 부분에 대한 입장이 궁금하다.
사실 크레딧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크레딧보다 현장에서 얼마만큼 자기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받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자기 위치에서 꾸준히 하다 보면 많은 사람이 본인을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는 “누가 잘하더라”가 더 중요하지 크레딧은 별로 중요치 않다.

 

▶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영상이란 무엇인가.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한 작품을 완성해 낼 때, 인물이나 풍경 등을 찍을 때와 같이 상황에 따라 본인만의 촬영법을 통일하는 것이다. 이런 일관성이 결국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 같다.

 

▶ 앞으로 어떤 작품을 촬영하고 싶은가.
굉장히 인간적인 걸 다루고 싶다. 인공적인 영상미보다는 실제의 것. 일종의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중에 여유가 생겼을 때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다큐멘터리를 혼자서 간단한 카메라를 메고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 대학생들에게 작품을 추천해줄 수 있는가.
최근에 본 영화 중 실제 난민들을 데리고 찍은 <가버나움>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디테일하게 조명이나 미술을 한 것도 아니다. 카메라를 세워놓고 찍을 수가 없으니까 종종 들고 찍기도 했는데 그 부분이 거칠면서도 너무 예뻤다.

 

▶ 미래에 본인은 어떤 촬영 감독으로 기억되길 원하는지 궁금하다.
“저 사람은 정말 이건 진짜 잘했어”, “뭔가 독특했었어.” 무엇보다 제일 듣고 싶은 이야기는 “저 사람은 많은 사람과 소통을 잘해서 좋은 작품이 나왔던 것 같아”라는 말이다. 최고의 칭찬인 것 같다. 혼자의 능력으로 작품을 만들 수는 없다. 그 도움을 받으려면 소통을 해야 한다. 그래서 관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저 사람은 어떤 철학이 있었어”이기에 철학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 [공/통/질/문]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은 무엇인가.
‘가족’이다. 이 모든 건 가족으로 귀결된다. 누군가를 딱 집을 수는 없지만, 가족이라는 단어 하나로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아이들 또 거기에 관련된 사람까지 설명할 수 있다. 결국은 가족인 것이다.

 

▶ 끝으로 촬영 감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서워하지 말고 용감했으면 좋겠다. 흉내를 내는 건 좋은데 용기가 있어야 한다. 또한 촬영 감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잘 만든 상업 영화도 봐야 하지만 독립영화도 보면서 감을 익혀야 한다. 하지만 호기심에 잘못 발을 들여 인생을 허비하는 경우도 봤다. 정말로 뜻이 있어 끝까지 도전할 것이라면 말리지 않지만,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가짐은 나중에 후회로 돌아오니 최소 석사과정 정도까지의 공부도 같이했으면 한다. 괜히 어설픈 호기심으로 뛰어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제일 큰 바람이다.

 

Epilogue
인터뷰 내내 오 감독은 답변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촬영 감독을 비롯한 모든 감독은 ‘그 분야에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인 ‘Director’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 “음…”으로 말문을 여는 이유도 그가 있는 자리의 무게 때문은 아닐까. 사람들은 보통 무대 위만 주목하고 조명한다. 하지만 무대 뒤에선 많은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모아 무대를 밝히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한 작품을 혼자서 완성할 수 없듯 인생도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주변 사람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끔 서로 돕다 보면 직업의 만족감 또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 자신만의 철학을 갖고 살아가며 좋은 방향으로 조금씩 성장하길 희망한다.
 

이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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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_seol@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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