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양심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 송정림 작가
  • 승인 2020.04.14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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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이 소설의 화자는 엄마 없이 아버지 손에서 자라는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 스카웃이다. 그의 아버지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공기총을 받은 스카웃에게 말한다. “난 니들이 뒤뜰에 나가 깡통이나 쐈으면 좋겠어. 하지만 새들도 쏘게 될 거야.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스카웃은 모디 아줌마에게 왜 앵무새를 죽이는 게 죄냐고 묻는다. “앵무새들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 그러니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되는 거야.”


소녀의 아버지는 정의로운 백인 변호사 애티커스다. 대공황 직후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기 직전인 1930년대, 미국 앨라바마 주의 작은 마을에서 사건이 일어난다. 흑인이 백인 여자를 성폭행한 사건이다. 스카웃의 아버지 애티커스는 성폭행 혐의를 받는 흑인 노동자인 톰 로빈슨의 변호를 맡게 된다. 


이 사건의 진실은 이랬다. 마옐라는 일곱 동생을 키우면서 아버지의 상습 폭력에 휘둘려 집안에만 갇혀 살았다. 허드렛일을 도와주던 톰은, 그녀를 인간적으로 대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마옐라가 톰을 유혹하는 장면이 아버지에게 들키면서 죽도록 두들겨 맞는다. 그리고 술주정뱅이 백인 아버지는 ‘흑인이 백인 여자를 강간하려 했다’고 고소한 것이다. 


스카웃의 아버지가 억울한 흑인의 변호를 맡게 되자 아이들이 스카웃을 놀린다. 어른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네 아버지는 그 검둥이나 시정잡배보다 나을 게 없어!” 그러나 아버지는 흔들림 없이 말한다. “톰 로빈슨의 사건은 인간의 양심에 대한 문제이고, 내가 이 사람을 돕지 못하면 나는 신을 믿을 수도 없어.” 

재판이 어려울 거라는 것도 애티커스는 알고 있었다. 이기지 못할 싸움인 줄 알면서도 그는, 이기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톰이 그녀를 성폭행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결정적 증거가 나온다. 하지만 배심원들은 유죄 판결을 내린다. 모든 사람은 알고 있었다, 그 흑인은 절대로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리 정직하고 착하더라도 흑인은 흑인이었다. 아무리 비겁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경멸받을 짓을 했어도 백인은 백인이었다.

다수결 원칙을 따르지 않는 유일한 것은, 바로 사람의 양심이라고 믿는 애티커스. 그는 톰에게 상급 법원에 항소할 수 있다며 격려한다. 하지만 백인들의 이기심과 편견에 절망을 느낀 로빈슨은 호송 중에 도망치다가 사살당하고 만다. 애티커스의 마지막 변론은 편견과 거짓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어떤 흑인은 거짓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흑인은 부도덕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인간 전반에 적용되는 진실이지 어떤 특수한 인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나라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된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무일푼인 사람도 록펠러와 동등하고, 우둔한 사람도 아인슈타인과 동등하게 하는, 인간이 세운 한 기관이 있습니다. 그 기관이 여러분의 법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의무를 다하십시오.”


다만 흑인이라는 것 때문에 죄인이 된 톰 로빈슨, 그는 앵무새였다. 아무에게도 피해를 준 적이 없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방아쇠를 겨눴다. 편견의 방아쇠, 선입견의 방아쇠가 겨눠지고 있는, 외롭고 억울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어떤 총구를 앵무새를 향해 겨누고 있을까? 지금 당장 그 총구를 내리는 것, 아이의 마음처럼 편견 없이 정직하게 깨어있는 것, 그것이 곧 사람이 지녀야 할 양심이며 용기가 아닐까.

 

▲ 저자 하퍼 리
▲ 저자 하퍼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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