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연유산 제주, 그 이면을 조명하다
세계자연유산 제주, 그 이면을 조명하다
  • 강혜주·이서연 기자
  • 승인 2020.05.20 02:01
  • 호수 14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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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Prologue
자유롭게 국내 여행을 할 기회가 있다면 어디로 떠나고 싶은가. 지난 2월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소셜미디어 빅데이터 활용 국내 관광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국내 여행지의 키워드 언급량 조사에서 제주도가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자 대표 수학여행지인 제주. 어느 날 기자는 제주도의 난개발(종합적인 도시계획 없이 이루어진 개발) 실태를 고발하는 한 칼럼을 읽고, 그간 미디어를 통해 접한 아름다운 모습과는 상반된 실상에 충격을 받았다.


이에 관광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제주를 보겠다는 다짐을 안고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을 나와 제주 시내로 이동하는 버스의 차창 너머에는 공사 중인 높은 건물이 눈에 띄었다. 공항에서 봤던 야자수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제주도를 떠나는 도민들

▲ 제주 동문시장 내부
▲ 제주 동문시장 내부

 

부족한 양질의 일자리
제주도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기자는 도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제주 동문시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민서원(45) 씨는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가게를 관광 상품 판매로 업종만 변경해 이어받았다. 그는 “주변 가게도 주인이 바뀌는 경우가 드물다”며 “주로 자녀들이 세습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근처에서 과일을 판매하는 A 씨도 할머니가 40년간 운영하시던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인 만큼, 관광객을 상대하는 직업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2018년 제주도청이 주관한 ‘창업 희망 업종’ 설문조사에서 숙박·요식업이 36.8%로 1위를 차지했다. 이를 통해 제주도 내에 직업적 다양성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또한 같은 해 도내 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상업·숙박업·요식업 종사자 비율이 전체의 50%에 달했다.


제주도의 취업률은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상용근로자(고용 상태가 안정적인 근로자) 월급여액은 전국 최저다. 이는 양질의 일자리가 적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일자리가 창출되려면 대기업의 진입과 지역 개발이 필요하지만 제주도는 접근성이 낮다는 이유로 기업의 선호도가 낮은 실정이다. 

주민 소득과 부동산 간의 괴리
부동산 가격에 대한 부담 급증 역시 최근 인구 유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제주대학교 이성호(부동산관리)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제주도의 부동산은 2013년부터 5년간 토지는 최소 5배, 집값은 최소 2배가 훌쩍 뛰었다. 기자는 제주도의 부동산 및 지가 변동에 대해 구체적인 배경을 듣고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위원으로 여러 차례 활동한 이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이 교수는 제주도의 지가 상승 배경에 대해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국내 자본이 투자를 꺼리는 제주도의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실시한 투자이민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이민제란 고시된 지역의 휴양 시설에 기준 이상의 금액을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거주 자격과 영주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결과적으로 제주도 부동산에 중국 자본이 유입되면서 영리적 개발이 크게 전개됐지만, 그에 따른 역풍은 도민들이 맞게 됐다. 이 교수는 “땅값이 2배 올라 외지인에게 팔았는데, 1년 뒤 또다시 곱절로 오르면서 누구도 집을 살 수 없게 된 것”이라며 과도한 투자 자본 유입의 부작용을 소개했다. 


결국 일자리 부족과 부동산 가격 상승은 원주민이 제주를 떠나는 원인이 됐고, 탈물질화를 추구하며 제주를 찾았던 사람들마저 난개발된 모습에 실망해 육지로 돌아갔다.

▲ 제주환경운동연합 입구
▲ 제주환경운동연합 입구

 

제주도 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난개발

난개발. 기자가 취재 중 가장 많이 접한 단어다. 관광객에게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명목하에 제주도는 지금 난개발에 시름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맞이한 관광객 급증과 자본 투입으로 인해 어떤 환경 문제를 직면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기자는 제주환경운동연합을 방문했다. 

내부에 들어서자 친환경 세제, 텀블러 등 여러 친환경 제품이 눈에 띄었다. 한쪽 벽면에는 제주도의 자연과 개발, 환경 문제 등 여러 종류의 책자가 꽂혀있었다. 그곳에서 김정도 정책국장을 만나볼 수 있었다.

대기오염
도내에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와 관련한 모든 사업을 하고 있다고 밝힌 그는 가장 먼저 대기 오염을 지적했다. “최근 미세먼지 농도가 서울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서울이 낮아진 게 아니라 제주도가 급격히 올라간 것”이라 덧붙였다. 대기 오염의 주범으로는 대규모 개발 사업과 높은 수치의 자동차 등록 대수를 꼽았다. 제주도는 지역 특성상 렌터카가 굉장히 많은 지역이다. 그는 “렌터카로 인해 제주의 인구 당 자동차 등록 대수 비율이 전국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덧붙이며 제주의 대기 오염이 심각한 수준임을 드러냈다.

쓰레기 포화
과포화 상태인 쓰레기 더미 역시 심각한 문제다. 김 국장은 “도민의 일간 쓰레기 배출량이 인당 2kg에 달한다”고 밝혔다. 제주도는 근 10년간 관광객 수가 급격히 증가했으나 이를 감당할 처리 및 순환 시설 설계는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게다가 쓰레기 처리장도 이미 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 배출되는 쓰레기를 도내에서 처리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그는 “즐기기 위해 관광지를 찾아오는 건 알지만 지역에 영향을 최소화하는 관광 방식을 취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그 첫걸음으로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를 제안했다.

지하수 고갈
마지막으로 그는 지하수 문제를 고발했다. 제주도의 식수원은 지하수가 유일하다. 더불어 개발에도 지하수가 쓰이고 있는데, 계속되는 대규모 개발로 인해 식수 부족과 농수 고갈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종종 지하수가 부족해 바닷물이 역류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김 국장은 “이렇게 수자원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지만 지속적인 개발을 위해서는 관정(지하수를 이용하기 위한 우물) 허가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다시 지하수가 과용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고 토로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갈 채비를 하던 기자를 불러 세운 김 국장은 책장 곳곳에서 책자를 꺼내 열 권가량을 넘겨줬다. 동시에 그는 “부디 제주도의 환경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달라”며 부탁했다. 책자의 내용을 일일이 설명해주는 모습에서 그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들은 제주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이렇게 간절하고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던 것이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둘러싼 갈등

▲ 제주도청 앞 가득한 현수막
▲ 제주도청 앞 가득한 현수막

 

 

제주도청 앞 천막 친 사람들
여러 환경 단체의 제보에 따라, 자주 시위가 벌어진다는 제주도청 앞을 방문하니 실제로 여러 개의 천막이 도청 건너편에 줄지어 있었다. 천막 주변에는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수많은 현수막과 팻말로 가득 찬 모습이 보였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 제주’라는 슬로건이 걸려있는 도청 청사와 반발 의견이 담긴 현수막으로 가득 찬 정문 아래 1인 시위 중인 이들의 모습이 사뭇 대조적이었다. 그 광경을 사진에 담고 있던 기자에게 천막 쪽에서 “누구세요”하고 말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도청 앞 천막촌 사람들’ 중 제주 녹색당 소속이라고 밝힌 그들은 2018년 12월부터 이곳에서 시위 중이라고 말했다. 

▲ ‘도청앞천막촌사람들’의 천막 행렬
▲ ‘도청앞천막촌사람들’의 천막 행렬

 

천막 속에서 만난 부순정(46), 김순애(50) 씨는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가 2015년 11월,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발표한 이후로 이에 반발하는 활동을 해왔다. 부 씨는 “성산을 개발하려면 오름 수십 개와 마을 다섯 개, 수백 개의 용암동굴과 숨굴을 모두 제거해야 가능하다”며 공항 건립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김 씨는 현재 제주가 앓고 있는 난개발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제주가 이미 여러 환경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하며 “향후 관광객이 더 찾아오면 섬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작년에는 약 1천5백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제주도에 방문했다. 제주도 면적의 약 15배인 하와이의 연간 관광객이 최대 1천만 명이란 점을 고려하면 실로 엄청난 수치다. 관광객 증가에 부정적 입장을 표한 이들의 심정도 이해가 됐다. 제주대학교 교수와 환경 단체, 천막촌 사람들, 1인 시위 중인 이들까지. 기자가 취재 중 만나본 도민들은 모두 제2공항 건설에 부정적이었다. 그런데도 왜 국토부는 이를 강행하려 할까?

국토부의 제주 제2공항 개발 계획
제주도에서 돌아온 후, 그 답변을 듣기 위해 국토부 신공항기획과 관계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제주 제2공항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윤영진 사무관은 “최근 제주 지역의 항공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현 제주공항은 포화 상태로 항공 안전이 불안한 상황”이라며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즉, 항공기에는 안전한 비행을 보장하고, 도민들에게는 교통편의를 제공하며, 지역적으로는 발전 가능성 증대를 달성하려는 이유로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그는 “도민들의 반발과 불안을 인지하고 있다”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통센터를 운영하고, 제주도청 및 지역주민과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토부에서는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①오름 절제를 최소화하고 ②조류조사를 통해 주요 보호종 현황을 조사 후 ③대체 서식지 마련까지도 계획 중이다. 제2공항이 군사 공항으로 이용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그런 계획은 전혀 없다”며 “향후 국방부에서 요청이 들어와도 협의할 생각이 없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현재 성산에 건설을 추진 중인 제주 제2공항은 설계 직전 단계에서 조류조사를 시행 중이다. 이 절차가 통과된다면 기본 계획 고시 및 설계 단계로 접어들 예정이다.

 

Epilogue
기자는 제주도에 머물면서 개발로 인한 편리함과 자연이 공존하는 제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이 풍경이 개발하려는 자본가와 자연을 지키려는 도민들의 노력이 대립한 결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가 누린 편리함 속에는 자연과 터전을 잃은 도민들의 슬픔이 녹아 있던 것이다. 대표적인 관광지인 만큼 수많은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선 개발이 필수적인 절차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도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제주. 그 풍광을 보기 위해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먼 훗날에도 지금과 같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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