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바게닝, 거래인가 정의인가
플리바게닝, 거래인가 정의인가
  • 노효정 기자
  • 승인 2020.05.26 23:13
  • 호수 14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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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플리바게닝

 

● [View 1] 강력계 형사 A씨

강력계 형사로서 마약 수사를 담당한 지 어언 20년이 흘렀다. 조직범죄는 나날이 교묘해져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지만, 수사 강도는 점점 억압받고 있는 상황이다. 마약 범죄 특성상 검거된 피고인의 투약 여부를 가려 처벌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공범과 불법 밀반입 공급원의 근원지를 검거하는 일은 여전히 힘겹기만 하다. 이처럼 썩은 뿌리를 뽑지 않은채 가지치기만 이어간다면 동일 범죄가 계속해서 되풀이될 것이다.

우리나라에 플리바게닝 제도가 도입되길 바라는 이유도 이와 같다. 마약 범죄와 같은 조직범죄의 경우엔 피고인의 증언이 매우 중요하며 수사의 커다란 열쇠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플리바게닝을 단순히 검찰과 범죄자 간의 형량 거래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범죄를 뿌리 뽑기 위한 방안으로 봐야 한다. 나는 플리바게닝이 수사와 재판의 효율 향상 및 범죄 심판 수 확대라는 대의를 위한 발걸음이라 확신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기소독점주의(검사가 공소권을 독점하는 것)와 기소편의주의(검사의 기소·불기소의 재량을 인정하는 것)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암묵적으로 플리바게닝과 유사한 형태의 수사 방법이 물 밑에서 이뤄지고 있다. 암묵적 관행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제도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투명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 언젠간 확립돼야 할 제도라면 범죄의 영향력이 증폭돼가는 지금이어야 한다.

● [View 2] 법과대학 교수 B씨

나는 일평생을 변호사로 일하다 퇴직한 후 모 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고 있다. 내가 변호사로 일하는 동안 만나온 고객들은 대부분 중범죄의 피해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의 형량이나 처벌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피고의 뉘우침이나 피해자의 선처가 아닌 검찰과의 거래로 형량을 조절하는 플리바게닝을 실시하게 된다면 피해자는 재판 과정에서 더욱 소외될 것이다.

피고인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피고인의 유무죄 여부가 판결 나지 않은 상황에서 유죄 및 형량을 협상하는 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의 입장에선 유죄 인정을 거래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압박일 수 있다. 즉, 피고인의 권익보다 검찰의 수사 편의만 증대시키는 제도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수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말하지만, 피고인의 증언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과 더불어 그에 따른 소요시간 및 비용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한편 플리바게닝이 가져올 혼란도 고려해야 한다. 증언을 대가로 형을 낮춰 판결한다면 이후 같은 범죄가 발생했을 때 상이한 형벌을 받게 된다. 같은 죄목에 다른 형벌의 판례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이 재판의 초석이 돼 실무상 구속력을 발휘하는 선례가 엉켜버리면 법적인 혼란이 발생한다. 법 아래 국민이 어떠한 행위에 대해 일정한 처벌을 받게 됨을 미리 알아야 한다는 원칙에도 혼선이 올 수 있다. 법은 모든 이에게 온전하고 정의로워야 하지 않겠는가.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Report]

유죄협상제 또는 사전형량조정제도라고도 불리는 플리바게닝은 검찰 측에서 피고가 유죄를 스스로 인정하거나 다른 범죄자의 범죄 사실을 고하는 대가로 형량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미 미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채택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실제적 이점과 법리적 실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1년 7월 1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플리바게닝과 유사한 ‘사법협조자 소추면제 및 형벌감면제’를 의결했다. 이는 피고인의 진술이 여타 범인의 검거에 기여한 때에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는 안이다. 당시 국민 정서와 맞지  않아 반대 여론에 밀려 현재까지 정식 도입이 유보된 상태지만 관련 논의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후 2017년 12월 1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9세 이상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플리바게닝에 대한 국민 여론’에 대해 조사한 결과 57%가 찬성 의사를 밝혀 국민 정서의 변화가 감지됐다. 일반 국민의 법 감정이 변화해가는 가운데, 한국형 플리바게닝이 사회 구성원 간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효율을 추구할 수 있길 바란다.

노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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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o3o@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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