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를 더하는 베란다 농부 체험기
활기를 더하는 베란다 농부 체험기
  • 금유진 기자
  • 승인 2020.05.26 23:12
  • 호수 14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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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홈(HOME)족 문화(3)-홈 가드닝

따듯한 햇살과 지저귀는 참새의 울음소리,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을 맞이했다. 여느 때 같으면 등교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분주한 걸음으로 애태웠을 시간이지만 학교에 갈 일이 없어진 요즘은 꽤 여유로운 아침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은 지루함을 불러왔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특별함이 절실했다. 그렇다고 당장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반려동물을 입양할 수도 없는 노릇. 순간 기자의 머릿속에는 집에서 토마토나 상추를 재배하며 작은 수확에도 웃음 짓던 어린 시절이 스쳤다. 지루함과 따분함이 더해진 지금 농작물 키우기는 기자를 구원할 최고의 취미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마스크를 챙겨 쓰고 곧장 집을 나섰다. 씨앗을 사러 가는 길 곳곳에 보이는 꽃과 나무에 괜스레 마음이 들떴다. 동네 잡화점에 들어서니 각종 씨앗을 모아둔 코너가 보였다. 그곳에는 각종 상추와 당근, 대파, 부추를 비롯한 수많은 종류의 씨앗이 줄지어 있었다. 고민이 깊어진 기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초보자용 식물 추천’을 검색했고 천 원짜리 다채(비타민 채)를 구매했다. 다채는 무순처럼 비빔밥 등의 음식에 장식용으로 사용되는 새싹으로, 물만 주면 재배가 쉽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구멍이 뚫린 볼을 준비하고 물에 젖은 휴지를 깔았다. 그 위에 세 시간 불려둔 씨앗을 겹치지 않게 놓아주고 검정 비닐봉지를 덮었다. 아직 견고해 보이는 갈색의 작은 씨앗이 이틀 뒤 어떤 변화를 보일지 무척 기대됐다. 그 후 시간이 날 때마다 봉지에 쌓여 내부도 보이지 않는 다채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언젠가 ‘양파에 긍정적인 말을 했더니 성장 속도가 빨라졌다’는 실험을 본 기억이 떠올라 다정한 칭찬도 더했다. “예쁜 아가들아 쑥쑥 자라렴.”

▲ 물을 머금은 싱그러운 다채
▲ 물을 머금은 싱그러운 다채

드디어 이틀 뒤, 일렁이는 마음을 붙잡고 봉지를 열었다. 그 안에는 노란빛을 이룬 씨앗의 뿌리가 수줍게 올라와 있었다. 이제부터는 관리가 관건이다. 새싹이 마르지 않도록 유지하면 되는 간단한 방법임에도 기자는 매일 아침 7시에 물을 주겠다는 비장한 계획을 세웠다. 새싹의 빠른 성장이 놀라워 알람 없이도 저절로 눈이 뜨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설렘도 잠시, 거실 한편에서 놀라운 성장을 보이는 그 작은 놈이 기특했는지 기자가 잠든 밤 중 술을 드신 아버지가 새싹을 물에 담가 두면서 짧은 만남은 이별을 맞았다. 농사에 실패한 농부의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 준비된 상추 모종
▲ 준비된 상추 모종

 

▲ 푸른빛을 띄는 상추
▲ 푸른빛을 띄는 상추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손이 많이 가는 씨보다 모종을 키우는 편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동네 재래시장에서 상추 모종을 사 와 심었다. 상토(모종을 가꾸는 온상에 쓰는 토양)와 일반 흙을 골고루 섞은 뒤 물 빠짐을 위해 스티로폼 상자 바닥을 젓가락으로 뚫는 일도 잊지 않았다. 햇빛이 잘 드는 창 앞에 상추를 두고 마를 때마다 물을 줬다. 덕담 역시 빼지 않았다. 간절한 정성이 통했는지 상추는 날이 갈수록 몸집을 키워가며 푸른빛을 더했다.

▲ 키가 훌쩍 자란 콩나물
▲ 키가 훌쩍 자란 콩나물

상추 수확 성공으로 얻은 자신감에 힘입어 얼마 뒤 콩나물 재배에도 도전했다. 이 역시 물만 주면 잘 자란다는 말에 다채와 비슷한 방식으로 재배를 시작했다. 비닐봉지가 아닌 뚜껑 사용, 휴지를 깔지 않았다는 점만 이전과 달랐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물을 준 지 일주일이 지났을 즈음 뚜껑이 덮이지 않을 정도로 콩나물의 키가 훌쩍 컸다. 다채도 노란빛의 콩나물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이 작은 것들이 물만 먹고 스스로 자란다는 게 새삼 경이로웠다. 생명력 있는 농작물이 삶의 싱그러움을 더해주는 듯했다. 따분한 생활 속 농작물 키우기는 큰 움직임 없이도 일상에 활기를 되찾아주는 건강한 취미다. 그들이 기쁨과 행복을 담아 당신의 식탁까지 가득 채워주는 것은 그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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