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보냅니다, 마음을 나눕니다
물건을 보냅니다, 마음을 나눕니다
  • 금유진·박예진 기자
  • 승인 2020.05.26 23:20
  • 호수 14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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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가게의 기부품 순환

Prologue

“기부 수익보다 처리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물품 한 점의 기부가 아쉬운 기부 단체가 기증자 감소를 무릅쓰면서까지 폐기 실태를 공개하고 나섰다. 비영리공익재단 ‘아름다운 가게’ 기증자 수가 해를 거듭하며 늘고 있음에도 5년 전 45~50% 언저리를 맴돌던 기부품 폐기율이 올해 70%를 훌쩍 넘어섰다. 기부율 증가의 기쁨도 잠시, 이 수치는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기부 에티켓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고자 한 수많은 사람이 있을 터. 이에 기자는 기부가 이뤄지는 현장의 중심에서 직접 그 실태를 살펴보고자 아름다운 가게의 기부품이 순환되는 과정을 따라가 봤다.

 

 물품 기부의 중심, 아름다운 가게

금전과 물품, 재능 그리고 소셜 기부(SNS를 이용한 기부)까지. 기부의 형태는 점점 다양화되고 있지만, 아름다운 가게의 전반적인 기부 활동은 물품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보통 기부를 통해 쌓인 기부품을 재판매하고, 이를 통해 얻는 수익은 ▲금전 기부 ▲취약계층 아이들을 위한 생필품 제공 ▲의료진 방역물품 지원 등에 사용된다. 또한 미숙아를 위한 털모자 뜨기와 유명 연예인들의 연탄 나르기 봉사 등도 모두 물품 기부의 다양한 형태 중 하나다. 국내 물품 기부의 선구자인 아름다운 가게는 ‘모두가 함께하는 나눔과 순환의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를 슬로건으로 내걸며 기부의 재순환을 도모하고 있다. 그리고 기부된 물건이 재판매되기 위해 처음 도착하는 곳은 아름다운 가게의 대들보, 되살림터다. 이에 가장 먼저 성동구에 위치한 ‘서울되살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품 기부, 그 현장을 톺아보다

▲ 분주히 기부품을 선별하는 모습
▲ 분주히 기부품을 선별하는 모습

큰 문을 열고 들어가 마주한 서울되살림터는 기자가 생각한 것보다 크고 웅장했다. 오른편엔 ‘아름다운 가게’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트럭이 여러 대 주차돼 있었고 수거 간사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차량에 담긴 박스를 안쪽 분류 창고로 전달했다. 어느새 컨테이너에 담긴 파란 피켓 박스들은 한쪽 구석을 빼곡히 채웠고 기부된 물품들은 한데 모여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록빛 작업복을 입고 고개를 떨군 채 물품 분류에만 몰두하는 직원들은 모두가 달인처럼 능숙하고 빨랐다.

▲ 폐기품을 걸러내는 컨베이어 벨트
▲ 폐기품을 걸러내는 컨베이어 벨트

공장 내부에서는 물품 세분화 분류가 한창이었다. 박스에 담긴 물품은 크게 의류, 잡화, 도서, 가전으로 나뉘며 재판매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서로 다른 컨테이너로 떨어졌다. 되살림터 기부품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의류는 그 위엄을 자랑하듯 더미째 쌓여있었고 생산 가능한 것으로 취급된 옷은 옷걸이에 걸려 담당 간사의 손에 넘어갔다. 3천 원이라는 가격에 놀라자 되살림터 손경미(52) 간사는 “상태와 브랜드, 종류에 따라 합리적인 수준으로 책정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정가의 10~20%라는 암묵적 기준이 있었지만, 현재는 직구 상품과 짝퉁도 많아 상태를 최우선으로 보고 가격을 매기고 있다”고 책정 기준에 관해 설명했다.

 

기부 에티켓을 지켜주세요

옆 컨베이어 벨트에서는 잡화, 가방, 주방용품, 신발들이 나란히 움직이며 서로 다른 피켓 박스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가방 하나를 들어 자세히 살펴보던 중 쿵 소리에 이끌려 나가보니, 한쪽에서는 도서 정돈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폐품으로 보이는 것들이 가득했다. 이에 기자가 서울되살림터의 기부품 유입·유출 수치를 묻자, 되살림터 센터장 임미정(57) 씨는 “1년 동안 유입되는 기부 물품은 1천만 점이고, 이 중 총 340만 점 정도가 출고된다”며 폐기율이 60~70%에 육박한다고 전했다. ‘처리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겠다’라는 생각을 하던 중, 그녀가 “생산 가치가 떨어지는 제품도 중간 업체를 통해 동남아나 아프리카에 전달함으로써 순환을 도모한다”고 말했다. 자원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놀라웠다.

멋진 가치 아래 일하는 되살림터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에 높은 성취감을 보였다. 택배를 해체하다가 정성스럽게 쓰인 편지를 발견하거나, 깨지기 쉬운 도기를 손수 각봉해 보낸 기부자들의 손길을 볼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또한 정기 수익 나눔 사업 ‘아름다운 희망 나누기’에서 달성한 연 50억 원 성과와 모바일 쇼핑몰 ‘옥션’과 협업해 진행하는 ‘나눔 박스 착한 기부’의 입고량을 확인하면서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몸소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되살림터에서 나와 보니 오는 길엔 보지 못한 새활용 거리가 펼쳐졌다. ‘새활용(Upcycling)’이란 업그레이드(upgrade)와 리사이클링(recycling)의 합성어로 버려지는 폐기물들을 디자인과 활용도를 더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되살림터 건물 2층에 자리한 작업장에서 본 가방처럼 길을 걷는 내내 새활용된 물건들이 줄을 이었다. 타이어와 드럼통이 합쳐져 만들어진 화분엔 붉은 꽃들이 가득했고, 버려진 페인트 통이 엮인 놀이 시설 앞은 아이들로 즐비했다. 이런 사소한 구경거리가 지구와 환경을 지키는 이곳의 가치를 깨닫게 했다.

 

아름다운 ‘가게’를 지키는 사람들

귀한 마음을 담아 되살림터에 보내진 물건은 각 지역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가게 매장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기자가 방문한 아름다운 가게 경기도 안양점은 현재 전국 113개 매장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를 자랑한다. 이 역시 일반 상점과 다를 바 없이 시장 옆 길가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다.

▲ 아름다운 가게 직원들
▲ 아름다운 가게 직원들

오픈 전 업무 준비가 한창인 매장에서는 화기애애한 직원들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이에 기자는 이곳에 모인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안양점에서 3년 이상 근무했다는 가정주부 조현정(52) 씨는 “결혼 후 아이를 낳고도 할 수 있는 봉사를 찾던 중 TV에서 아름다운 가게의 존재를 봤다”며 “작지만 어딘가에 도움이 되는 보람을 느끼고자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봉사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는 김태선(27) 씨는 “아름다운 가게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연계되는 점이 좋았다”고 전했다. 가장 최근 들어온 봉사자 박상운(20) 씨 역시 “입대 전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자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며 이곳을 찾게 된 특별한 계기를 들려줬다.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물건 판매와 진열, 청소 그리고 기증자 응대다. 여기서 기증자란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물건 나눔을 희망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름다운 가게의 물품 기부는 매장 방문과 자택 방문 접수(트럭 방문) 두 가지 방식을 통해 진행된다. 매장에서 이뤄지는 기증은 지점별로 상이하지만, 안양점은 주말에 평균 500점 정도의 기증품이 모인다고 한다. 매장 내 창고에 판매용 기증품과 되살림터로 보낼 새로운 기증품이 넉넉히 자리한 모습에 우리 사회에 가득한 나눔의 정이 느껴졌다.

 

아름다운 가게로 모이는 사람들

▲ 아름다운 가게 내부
▲ 아름다운 가게 내부

영업 시작으로 매장에 환한 불이 켜지자 기자는 내부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은 것은 색상에 맞춰 진열된 가방이었다. 핸드백부터 책가방, 에코백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기부품의 범위가 한정되지 않은 덕분인지 의류나 신발은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디자인과 사이즈가 골고루 준비돼 있었다. 게다가 몇몇 물건을 제외하고는 외관상 중고품이라는 티가 나지 않는 상품이 많아 놀라웠다. 심지어는 새 상품도 있었다. 이는 주로 기업의 후원품이나 장애인 단체에서 만든 공익상품이다. 정길후(34) 매니저는 “장애인의 일자리 지원과 수익 창출을 위해 아름다운 가게가 대신 판매하고, 그 물건의 수익금을 해당 단체에 돌려주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며 공익상품의 판매 목적을 밝혔다. 나눔을 통한 자원의 순환과 환경 보존, 소외된 이웃을 향한 도움의 손길. 이 모든 것을 지향하는 아름다운 가게의 가치가 그 대답 속에 스며있었다.

몇 가지 질문 후 본격적인 구경에 들어간 기자는 각종 볼거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확인해보니 한 시간가량의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동안 생각보다 많은 방문자 수에 놀라움을 표하자, 정 매니저는 “코로나19의 여파로 보통 300명을 웃돌던 평균 방문자 수가 부쩍 준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기자와 함께 의류 전시를 구경하던 이해득(60) 씨는 “지금 입고 있는 재킷도 지난번 방문 때 구매한 옷”이라며 중고 상품에 대한 편견만 깨면 값싼 가격에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필요한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나눔에 동참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는 장점도 덧붙였다. 이동이 제한적인 특수 상황 속 매장 방문이 아쉬웠지만, 마스크를 착용한 채 매장에서 저렴한 가격의 옷과 물건을 구매하고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돌아가는 손님의 진한 웃음소리가 인상적이었다.

 

Epilogue

타인을 위한 선행은 분명한 보람을 준다. 그래서일까 취재 중 만난 사람들의 얼굴에는 보람이 가득 찬 행복이 묻어 있었다. 일상이 바빠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던 기자는 이번 취재를 통해 일상에서도 손쉽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의 멋진 얼굴이 닮고 싶어졌다. 그래서 당장 집에 돌아와 사놓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옷가지와 물건을 모아본다. 또 여기 모인 마음이 도움이 필요한 곳에 따스한 손길로 전해지도록 세심함을 더한다. 이 물건들이 내 흔적을 담고 세상을 누빈다고 생각하니, 결코 아무렇게나 보낼 수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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