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경대-설마가 대통령 잡았다
화경대-설마가 대통령 잡았다
  • 송덕익
  • 승인 2004.03.24 00:20
  • 호수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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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가 대통령 잡았다

지난 3월12일 점심 무렵에 터진 탄핵뉴스는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만 진짜로 그랬다. 그것도 이 나라 최고통치권자인 대통령을 말이다. 사실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기 전까지만 해도 거개의 국민들은 설마하지 않았던가. ‘야당이 탄핵까지야 시키겠어’ ‘대통령이 사과하겠지’하며 양측간에 정치적 합의가 있을 줄 알았다. 또 있기를 바랬다.
우리에게 대통령탄핵은 교과서에서나 접한 관념상의 단어였다. 그 엄청난(?) 단어를 텔레비젼 자막으로 접한 온 국민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건 아마도 대통령 탄핵으로 나라가 절단나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퇴근길에 탄핵정국을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하자는 동료의 유혹을 뿌리치고 귀가했다. 이유는 세상 물정 모르던 대학 3학년때 있은 정치적 경험때문이었다.
87년12월20일께였다. 그날은 87년 대통령 선거 며칠 뒤었다. 당시 13대선에서 양김은 국민들의 요구인 후보단일화를 거부했다. 그래서 선거는 ‘1노3김’으로 치러졌고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선거후 지역감정은 극에 달했고 양김 진영은 서로를 탓했다. YS 찍은 사람들은 DJ찍은 사람들을 욕했고 DJ 찍은 사람들은 YS지지자들을 비난했다.
그날 후배들과 함께 포장마차엘 갔었다. 우연찮게도 일행중에 전라도가 고향인 후배가 있었는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옆 좌석 사람들이 “ 어~, 전라도 ×××네” 라며 시비를 걸었다. 다혈질인 후배는 단지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 하나로 걸어온 시비를 도저히 참지못하고 “그래 나 전라도 ×××이다 어쩔꺼여 이~”라고 대꾸했다. 그후 몇 마디 험한 말이 오고 간 후 포장마차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급기야 양측은 파출소까지 가서 훈방조치 된 기억이 있다.
파출소에서 그쪽 사람들은 후보단일화 하지 않은 DJ가 미웠는데 마침 옆에서 전라도 사투리가 들리기에 별 생각없이 내뱉은 말이었다고 했다. 그때 이후부터는 그 후배는 낯선 사람 앞에서는 전라도 사투리 안쓴다고 한다.
생각 컨데 지금의 탄핵정국에서 일어나는 국민들간의 반목과 질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하다. 그때는 영호남의 지역감정 뿐이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세분화 됐다. 친노와 반노, 보수대 개혁, 찬성대 반대, 청년대 장년 등으로 말이다. 얼마전에는 택시기사와 승객이 탄핵을 놓고 주먹다짐을 벌였다는 가쉽기사가 있었다. 또 ‘탄핵 언급 금지’를 입실 조건으로 내건 술집들도 눈에 띈다.
탄핵을 놓고 국민들끼리 애꿎은 감정대립을 하고 있을 때 정치인들은 벌써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느라 정신없다. 탄핵으로 정당 지지도가 올라 간 당에서는 공천탈락자들에 대한 재공천을, 여론이 불리해진 당은 탄핵철회를 거론하고 있지 않은가.
탄핵의 원인도 총선을 사이에 둔 정치인들간의 밥그릇 싸움이었고 탄핵이후 지금의 작태도 그렇다. 다만 다가오는 4.15 총선에서 각자 신념대로 투표하면 된다.
우리는 알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게 설마라는 사실을. 설마는 믿음과 방심에서 생겨난다. 그러니 이번에는 ‘설마 떨어지기야 하겠어’ 하는 국회의원들 제대로 한번 잡아보자.
송덕익<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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