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 뒤엉킨 실손보험 청구절차
이해관계 뒤엉킨 실손보험 청구절차
  • 박수아 기자
  • 승인 2020.06.03 00:14
  • 호수 14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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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 [View 1] 실손보험 가입자 A씨
10년째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어김없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실손보험이란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치료비를 지급하는 보험으로 가입자가 3천800만 명에 육박해 제2의 건강보험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실손보험에 가입한 모두가 혜택을 제대로 누리는 건 아니다.


현재까지도 나를 포함한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 찾아가 직접 보험금 청구 서류를 발급받고 이를 다시 보험사에 제출한다. 그러나 이 과정이 번거롭고 복잡하다 보니 소액의 보험금은 포기해버릴 때가 많다. 실제로 2018년 12월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가 공동 의뢰한 ‘한국갤럽’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의 ‘보험금 미청구’ 비율은 47.5%라고 한다. 모든 게 디지털화 돼가고 있는 시대에 보험금 청구는 전산으로 시행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간소화 조치는 보험금 미청구로 인해 생기는 크고 작은 손실을 막는 것뿐 아니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나의 경우 한 달 전 병원에서 굳이 필요 없는 비급여 진료(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않는 진료)를 권유받은 적이 있었다. 이렇듯 예상보다 큰 금액의 진료비가 나올 때는 과잉 진료를 받은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하지만 간소화 법안이 통과된다면 보험사에서 비급여 청구의 진료명세서를 확인할 수 있어 과잉 진료에 관한 의심과 걱정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시행은 소비자의 편익을 위해서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 [View 2] 대학병원 의사 B씨
나는 의사이자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으로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에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보험금 청구를 간소화하면 당장 편리함은 얻을 수 있지만, 전자문서를 통한 진료 정보 전달의 한계로 인해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성이 있다. 현재 개인의 질병정보는 매우 민감한 자료이기에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환자가 아닌 보험사에 진료 정보를 쉽게 넘기는 것은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행위다.


최근 보험업계에서도 보험금 청구 간소화 법안에 찬성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실손보험 가입자의 진료비와 질병 내용 같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축적해 불합리한 보험 상품을 만들거나 보험금 청구를 거부하는 등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보험사의 뜻이 내포돼있을 수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이 실손보험 청구 거부 간소화 법안으로 변질될 우려가 생기는 대목이다. 또한 지난 1월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실손보험 손해율이 최근 130%까지 치솟으면서 지난해 상반기 보험사들의 손실액은 1조 원이 넘었다고 한다. 보다시피 가입자가 청구한 보험금을 손쉽게 내주기 위해 간소화를 추진한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실손보험은 엄연히 사보험(민간 보험) 영역에 속한다. 사보험 영역인 실손보험 청구 업무를 왜 병원에서 도맡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개인의 필요로 선택한 보험을 정부가 나서서 법적으로 강제할 이유는 없다. 병·의원이 환자 대신 서류를 전송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Report]
4차 산업혁명으로 세계 각국에서는 인슈어테크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인슈어테크는 보험(Insur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기술과 보험의 융합을 뜻한다. 미국의 경우 챗봇을 통해 3초 만에 보험금 지급이 완료될 정도로 인슈어테크가 발달해 있다. 중국 역시 모바일로 기본정보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보험금이 청구된다. 이렇듯 모든 것이 전산화되는 인공지능 시대 속 복잡한 절차에 대한 불편함은 나날이 증가하고 사람들은 간편한 절차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로 인한 우려가 뒤따르고 있다. 특히 병원은 보험금 청구가 전산화되면 치료비에서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비급여 항목의 세부 명세서를 보험사에 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병원의 경영 정보가 공개되거나 병원 매출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보상 청구 절차 자체를 떠안아 부담이 가중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은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제도 개선을 권고한 이래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제도 도입을 놓고 서로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뒤엉킨 현실 때문이다. 따라서 보험 가입자와 의료계는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관계가 되도록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박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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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termelon@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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