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피자, 냉장고를 부탁해!
밥피자, 냉장고를 부탁해!
  • 신동현 수습기자
  • 승인 2020.06.03 00:11
  • 호수 147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 밥피자
▲ 노릇노릇 구워진 ‘밥피자’
▲ 노릇노릇 구워진 ‘밥피자’

<조리 순서>
1.남은 찬밥과 토마토소스, 치즈와 몇 가지 채소를 준비한다.
2.팬에 식용유를 소량 두르고, 밥을 넓게 펼친다.
3.펼쳐진 밥 위에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치즈를 얹는다.
4.치즈 위에 채소를 골고루 올리고 10분 정도 약한 불에서 굽는다.
TIP. 재료는 냉장고 사정에 맞게 추가하면 더욱더 맛있는 밥피자 완성!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공부도 연애도 아닌 밥양 조절임이 분명하다.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찬밥이 무려 고봉밥 한 그릇이다. 구슬땀 흘려가며 농사지은 농부 아저씨에게 무언의 사과를 드리려던 찰나, 무언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잠깐, 찬밥을 활용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어보면 어떨까?’ 마침 냉장고에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재료들이 많아 해결하려던 참이었다. 어떤 요리가 있을까 고민하던 중 선반에 붙어있던 피자 홍보지가 눈에 들어왔다. “피자... 찬밥... 밥피자?”를 중얼거리니 남은 찬밥과 냉장고의 재료들을 함께 담을 수 있는 요리, 밥피자가 떠올랐다. 그렇게 냉장고 털이의 주역 ‘밥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요리에 앞서 재료 준비에 나섰다. 아니, 재료 준비라 할 것도 없다. 필수 재료는 먹다 남은 찬밥 한 공기, 토마토소스, 그리고 피자 치즈뿐이다. 그 위에 토핑은 냉장고 속 재료 사정에 맞게 꺼내면 준비 끝. 마침 양파, 버섯, 파프리카가 있어 잽싸게 꺼냈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 재료를 살펴보니 식욕이 앞섰다. 치즈와 토마토소스, 단짠의 조합은 항상 옳다. 그냥 밥에 비벼 먹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더욱 풍족한 한 끼를 위해 참았다.


재료를 꺼냈으니 본격 실전이다. 허리에는 앞치마를 팬에는 식용유를 둘렀다. 식용유 두른 팬 위에 밥을 원형으로 넓게 펼쳤다. 먹다 남은 찬밥이 피자의 도우 역할을 하다니. 찬밥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준 조물주가 된 기분이었다. 피자 도우로 다시 태어난 밥 위에 토마토소스를 듬뿍 발랐다. 자비 없이 토마토소스 한 통을 싹싹 비우고 나니, 문득 기자의 위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맛은 틀림없이 성공적일 터. 마음을 다잡고 서둘러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 심예지 수습기자
▲ 심예지 수습기자

토마토소스로 범벅된 밥 위에 피자 치즈를 사정없이 흩날렸다. 올해 휘날리는 봄바람은 자주 경험하지 못했지만, 흩날리는 피자 치즈와 함께라면 아무렴 괜찮다.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고 양파와 버섯, 그리고 파프리카를 한 입 크기로 잘라 올렸다. 드디어 제법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처음보다 무거워진 팬을 들고 오븐으로 향했다. 팬의 무거움과는 달리 가벼운 마음으로 약한 불에 타이머 10분을 설정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다.


부풀어가는 피자 치즈와 함께 내 마음도 기대로 부풀어 올랐다. 타이머가 울리기 무섭게 재빨리 팬을 집어 들고 식탁으로 향했다. “잘 먹겠습니다”를 외친 후 커진 기대감으로 피자를 조각 채 집어 크게 한 입 베어 먹었다. 그 순간 이미 나는 밥의 고장인 이천과 피자의 고장인 나폴리에 서 있었다. 두 평 남짓한 주방에서 동서양을 함께 맛본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바삭한 누룽지처럼 적당히 눌어붙은 밥과 한껏 부풀어 오른 촉촉한 치즈는 그야말로 ‘겉바속촉’ 그 자체였다. 그렇게 마지막 한 조각에 눌어붙은 밥까지 긁어먹고 나니 말로만 듣던 ‘소확행’을 몸소 체험한 기분이었다.


한식과 양식이 한꺼번에 생각날 때 하나만 선택하라는 법은 없다. 밥피자와 함께라면 나의 욕심을 확신으로 바꿔버릴 수 있다. 여기에 먹다 남은 찬밥과 냉장고 속 골칫덩어리를 해결하는 건 덤이다.

 

한 줄 평
미니멀리즘과 냉장고 털기가 유행이라던데, 나도 그 유행에 동참한 것 같다. 우리 집에서 찬밥이 나오지 않는 그 날까지, 밥피자는 식탁 위에 계속 오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