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 유경진·권소영 기자
  • 승인 2020.06.03 17:07
  • 호수 14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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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덤 문화

Prologue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열정적으로 응원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팬덤 문화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서태지와 아이들, HOT, 소녀시대 그리고 지금의 아이돌이 탄생하기까지 언제나 수많은 팬이 함께했다. 그 속에서 팬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차 변화했다. 자신의 가수를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팬들을 속되게 이르는 ‘빠순이’부터 ‘줌마팬’, ‘삼촌팬’, ‘찍덕’ 등과 더불어 어엿한 공식 이름이 존재하는 ‘팬덤’까지. 나이와 성별에 의한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현재의 팬덤 활동은 하나의 문화생활로 자리 잡았다. 이에 기자는 다양한 팬덤 문화를 직접 느껴보고자 애정 가득한 현장을 찾았다.

# 전 세계가 우릴 주목해♪
빌보드 차트 1위, 유튜브 N억 뷰, 각종 해외 유명 매체 보도와 더불어 기네스 기록까지. 현재 전 세계가 K-Pop에 주목하고 있다. 음악방송이나 유튜브 댓글만 봐도 한국 연예인을 향한 해외 인기를 쉽게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류 전문 사이트인 ‘숨피닷컴’에서 미국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조사 대상자의 41%가 K-Pop을 즐기면서 한국어를 배운다고 답했으며, 42%는 K-Pop을 통해 한국 음식과 제품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실시한 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개선하는데 K-Pop의 영향력은 약 33%를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아이돌의 입지가 점차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K-Pop은 누구에게는 한국을 알아가기 위한 경로 중 하나로, 어떤 이에겐 음악을 즐기는 취미생활로 또는 꿈이자 우상으로. 나이와 국적과 관계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존재하고 있다.

▲ 역사 내 전광판
▲ 역사 내 전광판

 

# 팬들의 무한한 사랑 덕분에
팬덤의 규모가 커지면서 새로운 양식의 ‘팬덤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이에 기자는 실제 팬덤 문화를 몸소 느껴보고자 거리로 나섰다. 아이돌 생일 이벤트가 진행 중인 카페를 찾아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길에서도 팬들의 사랑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평소였다면 지나쳤을 지하철 전광판이었지만 긴 복도를 환하게 채우는 전광판 속 아이돌의 생일이나 기념일을 축하하는 광고를 천천히 훑어봤다. 전광판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포스트잇에 짧은 편지를 적어 붙이고 가는 팬들도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었는데, 각자의 글씨로 마음이 새겨진 포스트잇을 보니 가수를 향한 진실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전광판을 구경하고 있던 최지우(18) 씨는 “해당 광고를 보러 일부러 찾아왔다”면서 “트위터 등 SNS에 지하철 광고들이 위치한 장소가 잘 나와 있어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고 전했다.

기자는 지하철 전광판을 뒤로하고 미리 알아본 아이돌 카페를 찾아 떠났다. 기자가 방문한 카페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NCT 텐’의 생일 이벤트가 진행 중이었다. 카페의 문밖에는 생일을 맞이한 가수의 모습이 담긴 등신대가 설치돼 있었고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NCT 그룹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카페 주위를 둘러보니 가수의 사진이 하트모양으로 부착돼 있었으며 각종 앨범과 액자가 걸려있었다. 카페 직원인 이다현(24) 씨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카페 이벤트를 진행한다”며 “인기 많은 아이돌의 생일 이벤트를 진행할 경우 많은 팬이 찾아와 매출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음료를 주문하고 몇 분 뒤, 음료와 함께 팬들이 제작한 컵홀더 및 여러 장의 포토 카드, 엽서를 받았다. 평소 아이돌을 잘 모르는 기자였지만 카페에 있는 순간만큼은 기자도 ‘엔시티즌(NCT 팬클럽 공식 명칭)’이었다. 음료를 먹으며 구경하고 있는 도중 카페에서 사진을 열정적으로 찍는 팬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해당 아이돌 카페를 방문한 김소진(가명·28) 씨는 “트위터를 통해 아이돌 카페를 알게 됐다”며 “평소 아이돌 카페와 더불어 영상회나 전시회를 자주 방문한다”고 말했다. 또한 “예전에는 아이돌을 좋아하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 주변인들에게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이런 아이돌 카페로 인해 개방적인 인식이 심어져 자유롭게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밝혔다.

이처럼 팬덤 문화는 가수의 음악과 공연을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부가적인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현상을 만들고 있다. 스스로 문화를 개척해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가면서 더는 팬만이 아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로 나아가고 있다.

▲ 카페에서 얻은 포토 카드와 컵홀더
▲ 카페에서 얻은 포토 카드와 컵홀더

 

# 팬들의 위험한 사랑 때문에
때로는 팬들의 부정적인 사랑이 연예인에게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평소 아이돌의 음악방송 출연으로 인해 방송국에 많은 팬이 몰린다는 사실을 접하고 기자는 방송국으로 향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인지 텅텅 빈 건물들만 기자를 반겼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가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중 방송국 경호원이 기자에게 주차장 쪽으로 가면 팬들이 몰려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줘 발걸음을 급히 옮겼다. 주차장에 도착하고 기자의 눈에 들어온 장면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일명 ‘대포 카메라’라고 불리는 전문가용 카메라를 든 채 모두 한곳을 향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은 아이돌이 차를 타고 퇴근하는 길을 볼 수 있는 곳이었지만 다른 차량도 다니는 일반 차도이기도 했다. 팬들은 ‘빵빵’거리는 차들 속에서 위험을 감수해가며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한 컷이라도 더 찍겠다고 앞다퉈 자리를 잡았다.

익명을 요청한 방송국 경호업체 직원 A(34) 씨는 “영하 혹은 폭염의 날씨일 때 팬들이 밖에서 기다리다가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며 안전을 위해 정해진 규율 안에서 팬덤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또한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방송국에 들어올 수 없지만 이전에는 일부 극성팬들이 방송국에 들어와서 무작위로 사진을 찍었다”며 “연예인뿐만 아니라 방송국 관계자들도 불편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 위험한 차도 위에서 앞다퉈 사진 찍는 팬들
▲ 위험한 차도 위에서 앞다퉈 사진 찍는 팬들

 

# 21세기 사랑의 방식
팬덤이 연예인에게 주는 사랑의 표현 방식도 점차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손편지 혹은 정성 담긴 선물이 대부분이었다면 현재는 물질적인 양상의 선물보단 연예인을 알리는 목적으로 영상이나 사진을 게재하는 홍보성 선물을 기획하거나 기부, 봉사와 같이 해당 연예인의 선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선물들이 점차 늘어난 것이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따르면 실제로 방탄소년단 팬덤인 ‘아미’가 방탄소년단의 이름으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5억 원이 넘는 금액을 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좋아하는 연예인을 홍보하기 위해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지하철이나 영화관 심지어는 TV 광고를 이용하기도 하며 전 세계적으로 광고를 게재한다. 서울교통공사 공간사업처 관계자는 “작년 기준 서울 지하철에 게재된 광고 수는 2천166건이다”며 매년 광고 수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렇듯 변화하고 있는 팬덤 문화에 대해 김헌식(47) 문화평론가는 “팬들이 과거보다 사회적 가치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결과”라며 “단순히 연예인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닌 팬덤 활동을 통해서 사회적 변화까지 이뤄내는 등 유동적으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올바른 팬덤 문화를 위해 그는 “세계의 주목을 받은 상황에서 글로벌 마인드를 지니고 팬과 연예인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성숙한 태도를 가질 것”을 당부했다.

Epilogue
팬들이 그들에게 주는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팬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한 그 과정에서 행복과 기쁨을 느낀다. 물론 연예인들은 팬들이 자신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것은 더없이 영광스럽고 행복한 일임을 명심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보여야 할 것이다. 팬들도 이제는 더 이상 소비만 하는 주체가 아니다. 그들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성숙한 팬덤 문화를 통해 주체적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 모습은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행동이다. 그러니 팬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고 함께 선한 행동을 실현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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