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당한 조치인가 범죄의 면죄부인가
합당한 조치인가 범죄의 면죄부인가
  • 이서연 기자
  • 승인 2020.06.17 19:16
  • 호수 14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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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심신미약 처벌 감경

● [View 1] 폭행 사건 재판을 맡은 판사 A 씨
10년간의 재판 중 이번 재판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 시비가 붙어 피고인이 피해자를 폭행한 사건이었다. 특이점은 폭행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이 치매 증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범행 당시 치매로 인한 심신미약(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하는 능력이 미약한 상태)을 입증한다면 감형도 가능하다.


이 사건을 맡은 후 ‘정신적인 문제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인지가 감퇴한 사람에게 그 죄를 물을 수 있을까’라고 끊임없이 자문했고 대답은 늘 같았다. 심신미약 감형은 특수한 상황에만 적용될 뿐이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이에 심신미약의 악용 가능성에만 사로잡혀 일반인과 동등한 형벌을 고려한다면 이는 또 다른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피고인에게 검사 측에서 제시한 징역 3년 대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건 정황과 변호사가 제출한 증거 등을 정상참작했을 때 실형을 선고하는 것보다는 심신미약을 인정하고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재 그는 교도소가 아닌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지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법치주의 국가다. 감정적 판단이 앞선 판결이 이어지면 법은 효용성을 잃는다. 증거에 입각한 심신미약 감형은 엄연히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 [View 2] 살인 사건을 수사한 형사 B 씨
내일이면 내가 수사를 맡았던 살인 사건의 항소심이 열린다. 가해자는 정신질환으로 인해 약을 먹었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했고 판사가 이를 인정해 형을 감경했다. 이에 검사가 항소한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가해자가 멀쩡한 상태였다는 정황증거가 발견됐기에 나 또한 이 사건의 판사가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을 선고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해당 사건이 보도됐을 때 가해자의 심신미약 처벌 감경 악용을 우려하던 여론은 현실이 됐다. 심신미약자가 아님에도 이 법을 이용해 자신의 죄를 감형받고자 한다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과 같다. 또 심신미약 여부가 불확실하므로 본인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제대로 된 죗값을 치러야 한다.


한편 며칠 전 발생한 묻지마 폭행 사건의 피의자도 심신미약을 주장하려는 기미가 보인다. 만약 이번에도 잘못된 판결이 내려진다면, 수많은 악용 사례로 이 법의 필요성이 의심됨에 따라 존치 논란은 더 심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심신미약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자에게 감형을 내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심신미약 상태가 피해 사실을 없앨 수 있는가. 확실한 처벌을 통해 피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Report]
‘책임 없으면 형벌도 없다.’ 형법의 기본원리 중 하나이다. 위법한 행위를 하더라도 그 행위자를 법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면 형벌이 부과되지 않는 것이다. 심신미약 감형도 이에 입각한 것이며 그 근거로 우리나라 형법 제10조 2항에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심신미약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법관의 판단에 좌우된다. ‘2018 정신장애 범죄자에 대한 법원의 책임능력 판단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피고인의 심신장애가 쟁점이 된 사건 중 1심 재판부가 심신장애를 인정한 경우는 약 19%였다. 다시 말해 약 80%는 심신장애를 주장했으나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가해자가 “정신질환이 있다”라고만 주장해도 심신미약으로 감형받으려는 것이라는 의심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약 19%의 사람 중 대부분은 이 법이 필요하며 이는 법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폐지’는 섣부른 결정일 수 있다. 2013년 6월에는 음주 상태에서의 성범죄는 심신상실·미약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 성폭력특례법에 신설됐다. 더불어 2018년 12월에는 심신미약 감형 의무 적용이 임의적 적용으로 개정돼 과거 형법 제10조 2항의 ‘감경한다’가 ‘감경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심신미약 감형은 ‘진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로 인해 심신미약 적용을 엄격하게 하고 있음에도 제도의 취지는 쇠퇴하고 개정을 거치고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심신미약자의 몫이 된다.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지키고 법망을 피해 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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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_seol@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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