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같음’과 ‘다름’의 차이
백묵처방-‘같음’과 ‘다름’의 차이
  • 한경근
  • 승인 2004.03.24 00:20
  • 호수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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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음’과 ‘다름’의 차이

지문 1. “우리는 서로 유사하거나 같은 것들에 가치를 둔다. 다르다는 것은 혼란스럽고, 같다는 것은 편안함과 질서가 있는 것이다. 질서가 없는 세상은 매우 복잡하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들이 서로 같거나 최소한 매우 비슷한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느낀다.”
지문 2. “우리는 서로 다른 것들에 가치를 둔다. 차이가 있다는 것은 바로 거기에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어느 하나의 다이아몬드가 보배로운 것은 그와 같은 다이아몬드는 세상에 단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예술품은 대량 생산 될 수 없다. 우리 자신들은 각기 고유하며 만일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다면 세상은 정말 끔찍할 것이다.”
본인이 강의하는 장애인 교육 개론 시간에 위의 두 지문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어떤 지문에 공감을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두 번째 지문에 손을 든 학생들이 처음 지문에 비하여 많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어느 쪽에도 손을 들지 않았다. 손을 들고 의견을 내는 일이 익숙치 않을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두 지문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뜻 더 나은 것이라 택하기 주저했으리라. 아마도 마음속으로 두 지문의 조화를 생각하고 있었을 터이다.
우리는 구성원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민주 사회에 살고 있다. 머리카락에 색을 넣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다른 옷을 입으려 하며 독특한 ‘나’를 만들어 간다. 온라인 공간에서 자기만의 아바타를 꾸미기도 한다. 개인의 독창성이 박수를 받으며 의견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반면에 그러한 행위들이 일정한 흐름을 따르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독특함을 갖는다는 통일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다양성과 통일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속성인가 보다.

‘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들은 장애란 무언가 다르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 다르다는 생각은 때론 불필요한 편견을 낳기도 한다. 장애인들은 외양이 다르고, 이동하는 방법이 다르고, 의사소통하는 방법이 다르다면 다르게 보인다. 공부를 하는 내용이 다르기도 하고 그 방법도 사뭇 다르다면 다르다. 심지어 공부하는 장소가 다르기도 하다. 집 근처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와는 달리 그 아이의 옆집에 사는 또래의 아이, A는 이른 아침 장애인 마크가 새겨진 노란색 학교 버스를 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그들만의 학교에 다니기도 한다. 이웃의 학교에 다녀도 장애를 가진 학생은 5학년 3반 교실이 아닌 학습 도움실 같은 교실에서 몇 안되는 학생들과 함께 학교 일과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다. 하지만 A에게는 다른 아이처럼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동함이 같고, 의사소통을 하며, 공부를 하기 위하여 학교에 다닌다.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는 ‘달리’ 팔과 다리가 없이 세상에 태어난, 오토다케 히로타다.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오체불만족]이라는 책에 그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회고한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손의 작용’이라는 제목을 칠판에 쓴 뒤 아이들에게 ‘오늘 손을 사용하여 어떤 일을 하였는가?’를 쓰도록 했다. 모두들 ‘이를 닦았다’ ‘글씨를 썼다’는 등의 내용을 적었지만 난 ‘휠체어에 올라갔다’라고 썼다.” 손을 사용한다는 같은 맥락에서 다른 작용을 말하고 있다.
장애라는 개념은 사회적 구인(social construct)이라고 한다. 장애가 사회적 속성이라는 말과 그 이치가 많이 다르지 않은 말이다. 어느 한 사회에서 앞서 예를 든 ‘다름’을 ‘장애’로 보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그 사회에서 정한 것이라는 뜻이다. 달리 말할 수도 있다. 그러한 ‘다름’을 개성으로 보아 ‘장애’로 달리 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서로 같은 두 그루의 소나무가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남산의 소나무 숲처럼, 다르다는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통일되고 융합적인 사회의 중요한 특성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무(木)들이 서로 다른(各) 것처럼 사람은 저마다의 人格을 갖는 이치이다.
전 하버드대 교수이자 생물학자인 Robert Barth는 학교사회에서의 다양성의 가치에 대해 다음과 말한 바 있다. “나는 내 아이들을 서로 다름을 추구하고, 다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며, 그것을 좋은 소식으로 그리고 배움의 기회로 여기는 그러한 학교에 보내고 싶다. 서로 다름이란 배움의 커다란 기회를 준다. 다름은 돈들이지 않고 풍부하고 언제든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교육적 자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는 다름을 인정하려하지 않으려는 우리들의 강박관념들이 학교와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그러한 다름을 이용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바뀌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그리고 학교에 중요한 것은 ‘같음’이 아니라 ‘다름’인 것이다.”
캠퍼스 곳곳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눈에 띈다. 천안캠퍼스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주관한 장애학생 교육복지 지원실태 조사에서 최우수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아쉬운 점도 있겠으나 차이를 존중하고 사회적인 장애를 없애가려는 작은 노력으로 본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른 모양을 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며 유쾌하게 모여 사는 통일된 대학 공동체의 모습이 그려진다. 수업 시간에 예를 든 두 지문이 실상 같은 것이기에 선뜻 어느 하나를 택하지 못한 학생들을 생각하면 즐겁다.
한 경 근 교수
<사범대학·특수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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