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머물러 버린포항의 시간
2년 전에 머물러 버린포항의 시간
  • 노효정·박수아 기자
  • 승인 2020.06.17 18:59
  • 호수 14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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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

 

Prologue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서 규모 5.4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는 1978년 본격적인 국내 지진 관측 이래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위력이었다. 또 1993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된 이후 일어난 최초의 재난이었으며 그 여파로 수능이 연기되기도 했다. 이처럼 지진이 드문 우리나라로서는 큰 혼란이 야기됐던 포항 지진. 그로부터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년이 지난 현재의 포항은 어떤 모습일까. 그 피해 규모와 현재의 모습을 확인하고자 2년 전 지진 피해를 겪었던 그 현장에 직접 다녀왔다.

▲ 복구되지 못한 건물
▲ 복구되지 못한 건물
▲ 임시구호소 입구 모습
▲ 임시구호소 입구 모습

포항 지진, 2년 후

포항으로 향한 기자는 먼저 지진 피해가 가장 컸던 흥해읍에 도착해 대표적인 피해 거주 지역 ‘한미장관맨션’을 찾았다. 쩍쩍 갈라지고 무너져 내린 건물 외벽과 위태롭게 남은 창문의 빈 틀. 기자의 눈으로 확인한 아파트는 마치 2년 전에서 시간이 멈춘 듯 당시의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아파트 파편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설치해놓은 천막은 이곳의 모습을 한층 더 위험해 보이게 했다. 장흥동에 위치한 ‘크리스탈 원룸’ 또한 바리케이드만이 처져 있을 뿐 상황은 같았다. 복구되지 못한 건물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곳에서 보금자리를 잃은 피해민들의 거취가 궁금해졌다.

피해민들의 현 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위태로운 건물을 뒤로한 채 흥해 실내체육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흥해 실내체육관은 2년 전 지진 발생 시 임시대피소로 사용됐으며, 이후 거처를 잃은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구호소로 마련됐다. 임시구호소로 이동하는 도중 도롯가에 세워진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벽돌이 뜯어져 나온 상태로 방치되거나 건물 위쪽이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었다.

온전치 못한 건물을 지나 임시구호소에 도착했다. 임시구호소는 그 입구부터 이재민들의 처절한 목소리가 담긴 현수막으로 가득했다. ‘누구 하나 죽어야 해결되나?’, ‘난민보다 못한 지진 이재민’과 같은 문구는 진척 없는 이재민 피해 복구의 현 상황을 알려주는 듯했다. 곧이어 들어간 임시구호소의 문밖에는 ‘대피소 생활 820일째’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820일, 한눈에 보기에도 짧지 않은 시간임이 분명했다.

▲ 임시구호소 입구 모습
▲ 임시구호소 입구 모습
▲ 텐트로 가득 찬 체육관 내부
▲ 텐트로 가득 찬 체육관 내부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구호소 담당자에게 신분증을 제시하고 내부로 들어간 순간 기자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평범한 규모의 체육관 내부가 이재민들의 거주용 텐트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각 텐트와 텐트 사이는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의자가 설치돼있는 2층까지도 텐트가 가득 진열된 모습이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여러 문구가 새겨진 채 사방에 붙어있는 종이들이 기자의 시선을 끌었다. ‘이게 사는 거냐’, ‘집도 박살 나고 비도 새고 곰팡이까지’, ‘안전한 집에서 살고 싶어요’ 등 절규에 가까운 외침들이 체육관 벽면과 텐트 겉면에 빼곡히 붙어있었다. 지진으로 생존권을 잃은 사람들의 처참함이 느껴졌다.

이렇듯 지진 발생 이후 두 해가 지났음에도 피해 지역민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일부 이재민은 주거용 컨테이너로 거처를 옮기거나 포항시가 주선한 임대주택에 입주하기도 했지만 지진 피해가 가장 컸던 흥해 지역 이재민들은 지금까지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임시구호소에서 텐트 생활하고 있다. 현재는 약 40가구가 생활하고 있으며 약 200개의 텐트가 남아있다.

▲ 텐트에 빼곡히 붙어있는 외침
▲ 텐트에 빼곡히 붙어있는 외침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그렇게 체육관 실내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던 중 만난 한 이재민은 본인이 한미장관맨션의 주민이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A 씨는 “잠자리가 가장 불편하고 비가 올 때는 천장에 물이 새기도 한다”며 텐트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한 “임시구호소 생활 초기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청소를 포함한 환경 관리를 해줬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없는 상황”이라며 임시구호소의 현 상황을 설명했다. 어떤 해결을 원하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무엇보다도 본래 살던 흥해에 임대주택을 새로 지어 그곳에 살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이어 A 씨는 “한미장관맨션에서 계속 살기에는 불안한 요소가 많아 이중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안전을 위해 현재 다른 아파트에 살고 있으나 한미장관맨션이 팔리지 않아 집세가 이중으로 부과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재 한미장관맨션은 지진 발생 이후 포항시가 진행한 안전 점검에서 C등급(5개의 등급 중 중간단계)을 받으며 안전에 큰 문제가 없다고 판정돼 포항시의 매입·관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불편한 임시구호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다시금 더운 여름을 날 생각에 근심이 깊어지고 있었다. 제대로 된 취사 공간과 위생 시설이 마련되지 못한 체육관은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언제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막막한 기다림을 품은 지 언 2년, 이재민들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 설명회가 진행 중인 범대본 사무실
▲ 설명회가 진행 중인 범대본 사무실

그들을 위한 목소리

이재민 구호소를 나와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이하 범대본)의 사무실로 향했다. 범대본은 지진 피해민들의 목소리에 힘이 되고자 출범한 시민단체다. 기자가 방문한 사무실에서는 지진 피해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관한 설명회가 한창이었다. 침착하게 설명회를 듣고 있는 이재민들의 표정은 어딘가 지쳐 보였다. 설명회가 끝난 후에도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간이 상담 창구에서는 이재민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들은 정부가 내놓은 특별법과 자신들의 보금자리였던 곳의 복구에 대해 질문하고 있었다. 이재민들은 사무실에서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다.

상담을 포함한 모든 설명회가 끝난 후, 범대본 모성은(57) 공동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모 대표는 “범대본은 포항 지진 발생에 의문과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지진 발생 후 한 달 만에 만들어졌다”며 “지진 원인 규명 1만 명 서명운동을 비롯한 활동들을 벌여왔다”고 말했다.

현재는 약 2만 명의 소송인단을 구성해 정부를 상대로 지진 피해 손해배상 시민참여 소송을 진행하는 이들은 포항 지진의 원인으로 판정된 지열발전소를 중단시키는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긴 일정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던 모 대표는 “포항시민이 더 많이 모일 때까지 노력할 것이며 진행 중인 소송이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해결을 위한 발걸음

지난 4월 1일, 많은 잡음 속에 ‘포항 지진 특별법’이 시행됐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드디어 포항 지진 피해의 실질적인 해결을 위한 발걸음을 뗀 것이다. 그 안에는 피해민 지원에 관한 포항지진피해구제심의위원회의 출범과 트라우마 극복에 대한 사항 등 포항의 복구를 위한 내용이 담겼다.

지진 발생 후 2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피해민은 상당하다. 여진에 대한 공포 및 불안이 가장 흔한 증상이며, 공사·바람·차 소리 등의 생활 진동에도 심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생활 터전이 무너지거나 손실된 상태에서 제대로 된 해결이 이뤄지지 않아 화병과 같은 분노 및 우울로 발전한 사례도 있다. 이에 특별법과 함께 포항시에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를 설립했다. 정신과전문의를 비롯한 전문가 9명이 센터를 지키며 피해민들에게 전문 상담 및 지속적인 사례 관리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 차솔잎 정신건강요원은 “다양한 프로그램과 치유 장비를 이용한 정신적으로 트라우마 극복에 전념하고 있다”며 “지진 이후 집이 무너져 현재까지 임시구호소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 이용자가 지속적인 센터 이용을 통해 희망과 기적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진피해를 겪은 모든 분의 일상생활이 회복될 수 있도록 직원들이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명감을 보였다.

이와 함께 포항시와 MOU를 체결한 우리 대학 리모델링 연구소는 2018년 포항시의 요청으로 그 인연을 맺어 지진 피해를 입은 포항시의 내진 설계를 위해 힘썼다. 그 결과 포항시에는 주소 검색만으로 건축물의 건물 정보인 대장을 확인할 수 있는 ‘건축물 내진성능 자가점검시스템’이 구축됐다. 또 우리 대학의 기술력으로 마련된 내진 식탁을 포항시의 업체들이 생산해 어린이재단에 보급하기도 했다. 리모델링 연구소 이상현 소장은 “기존에 내진 설계가 되지 않은 건물들은 평가를 해보면 티가 난다”며 “다시 짓지 않고서도 보강할 수 있기에 꾸준한 검사를 통해 지진 대비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Epilogue

기자가 포항에서 마주한 피해 현장은 처참했기에 피해민들이 겪었을 아픔과 고통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진은 건물과 함께 주민의 삶을 무너트렸으며, 복구되지 못한 상처의 시간은 물리적 피해와 더불어 정신적 피해를 불러왔다. 피해민들이 겪은 손실에 대한 보상은 본래의 거처를 되찾아 주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심리적 보금자리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부디 지난 2년간 그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나아가 활기를 되찾은 그들의 움직임이, 머지않아 멈춰버린 포항의 시계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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