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이여, 인간 세계에서 안녕하십니까
동물들이여, 인간 세계에서 안녕하십니까
  • 정찬우·조성건 기자 정리=이서연 기자
  • 승인 2020.09.09 00:53
  • 호수 14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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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권

Prologue
동물권. 세계적으로 동물의 권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며 동물도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생긴 단어다. 동물학자 싱어는 이를 ‘인간과 같이 지각·감각적 능력을 지닌 생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동물권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아직 대한민국은 동물 학대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구독자 50만 명을 보유한 유명 1인 크리에이터의 동물 학대 사건이 밝혀지고, 여수와 울산의 아쿠아리움에서는 돌고래가 폐사하는 일이 잇달아 발생하며  동물 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시민들의 높아진 관심과 동물단체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동물의 처우가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물을 학대한 사람에게 최고 징역 10년을 선고하는 유럽이나 미국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학대 행위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그치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에 기자는 야생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환경을 살펴보고자 그 현장에 다녀왔다.


동물이 사는 세상 : 야생과 다른 인위적 공간
다양한 동물을 가장 쉽게 만나볼 수 있는 동물원을 떠올린 기자는 연간 약 900만 명의 방문객이 오가는 ‘서울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을 찾았다. 동물들이 있는 공간마다 ‘소리를 지르지 마세요’, ‘먹이를 주지 마세요’, ‘만지지 마세요’ 등의 안내문을 부착해 부주의한 행동을 경고하고 있었다. 이를 보니 동물을 위한 동물원 측의 노력이 느껴졌다. 그러나 안내문에 쓰인 문구가 무색하게 동물을 만지려고 하는 아이들과 이를 방치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대조적이었다.


동물을 위한 노력과는 무관하게 드넓은 자연에서 살아가야 하는 동물에게 이곳의 크기는 상당히 작아 보였다. 아주 드넓은 공간을 확보해 자리를 마련한다 해도 자연이 주는 자유의 크기에 반해서는 한없이 작을 터. 이곳에 방문한 김희수(19) 씨 역시 동물들이 생활하기에는 우리가 좁게 느껴져 “제대로 된 활동이 불가능하고 불편해 보인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동물과 사는 세상 : 동물원 사육사 이야기
방문객과 이야기를 나눈 후 동물원 관계자의 얘기도 듣고 싶어진 기자는 서울 어린이대공원 동물복지팀 이지형(36) 사육사를 만나봤다. 동물권을 침해하는 장소 중 하나로 동물원이 언급되고 있기에,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람에게 관련 내용을 묻는 것이 조심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사육사는 앞으로 동물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소신 있게 말했다. 그는 “동물원이 동물권을 침해하는 것은 맞지만 현재 동물원은 야생동물의 후손들로 이뤄져 있다”며 “당장 동물원의 동물들을 풀어주는 것은 무책임하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먼 미래에 동물원은 없어져야 하지만, 현재는 전시 목적보다 종 보전에 중점을 두고 있어 그 기능을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물을 사는 세상 : 성남 모란시장
동물원에 다녀온 뒤 어느 날, 기자는 인터넷에서 하나의 글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작은 철장 하나에 여러 마리의 동물이 들어 있는 사진과 그 동물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팔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여전히 이들의 권리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을 보고 동물을 사고파는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 향한 모란시장은 대구 칠성시장, 부산 구포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 시장으로 불리던 곳으로, 개 시장이 사라진 지금도 동물시장은 활성화돼 있는 곳이다. 모란역에서 하차해 5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수도권 최대 규모 오일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양쪽에 줄지은 노점을 지나 골목 안으로 진입하니 고기를 판매하는 점포 진열장이 보였다. 내부에는 닭과 돼지 등 다양한 육류가 있었지만 특히 살가죽을 드러낸 개가 시선을 끌었다. 기자는 익숙지 않은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인터넷에서 본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 끝 대로변에서 닭들이 빼곡한 철장을 발견한 기자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야!”라고 외치는 가게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물을 판매하는 곳을 찾아왔다는 기자에게 그는 “이곳이 아니라 건너편”이라며 허락 없이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소리쳤다. 동물 보호를 주장하는 여론을 상인들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을 따라 길을 건너니 넓은 주차장에 천막이 빼곡히 늘어져 있는 모란 민속장이 눈에 들어왔다.

 

▲ 성남 모란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닭들
▲ 성남 모란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닭들

동물을 판매하는 구역에서는 성인 남성 두 명이 큰 철장 안의 염소 세 마리를 다른 철장에 옮겨 담고 있었고 다른 노점에서는 토끼와 고양이, 닭 등의 동물을 판매하고 있었다. 좁은 입구의 철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는 듯한 염소의 울음소리는 애처롭게 들렸다. 철장에 있는 토끼를 바라보는 기자에게 상인은 “두 마리에 1만5천 원”을 제시했으나 가격은 점점 낮아졌다. 시장에서 들은 내용에 따르면 대부분의 동물은 일반 가정집이나 교배를 통해 데려온 것이다. 예방접종 여부는 상인마다 달랐지만 “건강한 애들”이라는 표현은 동일하게 사용했다. 하지만 동물들 틈 사이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닭의 모습을 보자 ‘건강함’이라는 단어에 괴리감이 느껴졌다.

 

동물을 사는 세상 : 대구 칠성시장
이번에는 전국 3대 개 시장 중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구 칠성시장을 찾았다. 방문객이 많으리라 생각했지만 시장 내부는 인적이 드물었고 심지어 철장에 든 개가 전시된 뒷골목을 지나는 사람은 기자가 유일했다. 현장을 촬영하고 싶었지만 상인들의 반응을 우려하며 같은 골목을 여러 바퀴 돈 기자는 마음을 굳게 먹고 카메라를 들었다. 그때 눈이 마주친 개가 짖기 시작했고, 가게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상인 A 씨는 안으로 들어오라며 기자를 불렀다.

▲ 대구 칠성시장 개소주 골목의 개 철장
▲ 대구 칠성시장 개소주 골목의 개 철장

시장 내 개소주 골목에 40년이 넘도록 있었다는 A 씨의 가게는 개소주뿐만 아니라 포도, 양파 등의 즙도 취급하고 있었다. 개소주용으로 쓰이는 개는 타지역에서 장날에 구매하고 밖에 내놓은 개들은 형식적으로 갖다 놓은 것이라는 A 씨. 동물보호협회에서 찾아와 이 업종을 그만둘 의향이 있는지 물었을 때 “굳이 개를 대상으로 장사할 필요가 없다”며 “그만둘 자신 있으니 그만둘 수 있게만 해 달라”고 답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자는 개 시장에 철폐에 동의하지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아있는 상인의 입장도 들어볼 수 있었다.

 

동물을 위한 세상 : 동물보호단체
칠성시장을 나서려던 찰나 인접한 대구시청 앞에서 칠성 개 시장 폐쇄를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빠르게 그 현장으로 향했다. 오전 11시 25분경 그곳에 도착하니 두 명의 ‘동물자유연대’ 소속 활동가가 팻말을 들고 걸어와 익숙한 듯 시청 건물 양옆에 자리를 잡았다. 8월, 30℃를 웃도는 더위였지만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내용을 전달하고자, 점심시간에 맞춰 시위를 진행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의지가 돋보였다. 한참 시위를 구경하던 끝에 기자는 시위에 참여 중인 동물자유연대 정책팀 박소연(27) 활동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 대구시청 앞 1인 시위 중인 모습
▲ 대구시청 앞 1인 시위 중인 모습

그는 실험동물과 개고기 문제를 여전히 바뀌지 않은 동물권 침해 사례로 꼽으며 "과거부터 계속 제기돼 왔던 문제지만 서로 다른 입장으로 인해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나 이전에는 아예 문제의식조차 없었던 것들에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이 늘어가는 점을 들며 과거보다 동물권이 보장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박 활동가는 일부 사람들이 동물보호단체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이 많다는 고충도 들려줬다. 이어 동물보호단체는 동물권 전반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기에 이번 시위 역시 그 활동의 일환이며, 더 많은 사람이 동물권을 인지하고 “동물을 우리 사회의 약자 중 하나로 바라보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Epilogue
동물원과 동물시장, 여전히 동물권이 침해되는 부분은 보였지만 동물권 보장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노력해 개선되는 모습 또한 찾아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동물권에 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높아진 관심에 비해 과거와 다를 바 없이 동물권 침해 행위가 이뤄지는 곳도 아직 남아 있었다. 누군가에게 동물은 그들과 상관없는 존재일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생을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반려동물이기도 하다.


“나는 나약한 동물일수록 인간의 잔인함으로부터 더욱 철저히 보호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간디의 말이 생각난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축산물을 구매할 때 동물복지인증 마크를 확인하는 등 일상생활에서도 동물권 보장을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이 많다는 것을 배웠다. 조그만 노력이라도 하나씩 실천한다면 아직 동물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동물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인간세계에서도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동물의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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