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식물성일까, 동물성일까?
약은 식물성일까, 동물성일까?
  • 윤수진 약사
  • 승인 2020.09.09 00:47
  • 호수 14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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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약의 정체성
▲ 다양한 첨가물이 들어간 타이레놀 

 

육식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심지어 우유와 달걀, 생선도 먹지 않는다는 채식주의자가 약국을 방문했다. 이 채식주의자는 어떤 약을 살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채식주의자의 원칙을 지키면서 약을 구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려면, 약을 어떻게 만드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먹는 약의 상당수는 치료의 핵심이 되는 약효 성분과 그 성분을 잘 보존하고 먹기 쉽게 하는 부형제로 구성돼있다.


학생들이 많이 찾는 타이레놀정 500mg을 살펴보면, 주 약효 성분으로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 500mg이 들어있다. 그리고 약의 모양과 색을 구성하는 부형제로 옥수수전분, 스테아르산마그네슘, 전호화전분, 분말셀룰로오스, 오파드라이흰색(YS-1-7027), 카르나우바납, 전분 글리콜산나트륨이 들어 있다고 기재돼있다.


타이레놀의 주요 약표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은 화학 합성물로 봐야 한다. 이에 식물성인지 동물성인지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 또한 오파드라이흰색(YS-1-7027)은 약 색깔을 흰색으로 나오게 하는 색소로 식물성, 동물성을 나누지 않는 화학 합성물이다. 옥수수전분이나 전호화전분은 식물성이라 볼 수 있다. 전호화전분은 전분이 물과 열을 만나서 겔(Gel) 상태가 되기 전의 상태를 의미하며, 사실상 식물성이라 볼 수 있다. 분말셀룰로오스는 펄프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카르나우바납은 남미의 카나우바의 어린잎에서 채취하는 밀랍으로 식물성이다. 전분 글리콜산나트륨 역시 감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식물성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스테아르산마그네슘은 스테아르산과 팔미트산 마그네슘염의 혼합물인데, 스테아르산은 18개의 탄소로 구성된 포화지방산으로 왁스 같은 고체 형태로 돼 있다. 이것은 코코아나 시어버터와 같은 곳에서 얻을 수도 있으나, 동물성 지방에 풍부하게 들어 있기 때문에 의약품의 원료로 사용하는 스테아르산은 동물에서 유래한 성분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동물에서 유래한 식재료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라면, 이런 성분들을 문제 삼을 수 있다.


이처럼 의약품의 부형제는 식물성과 동물성 식품 첨가물을 많이 사용한다. 많은 약을 만들 때 옥수수 전분이나 유당(우유 유래)을 상당히 많이 사용하는데, 이런 성분들이 혼용된 의약품이 대부분이다. 또한 말랑말랑한 연질캡슐의 경우 껍데기는 돼지나 소에서 유래한 젤라틴이고 내부의 액상 의약품을 녹이는 기제는 식물성 기름인 옥수수유나 식용유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의약품을 놓고 식물성이냐, 동물성이냐 정체성을 따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약은 동물성 성분과 식물성 성분 모두를 다 포함하는 잡식성이라 해야 할까?
약은 기본적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식물 유래인지 동물 유래인지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아픈 생명을 구하고,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지 사람의 식성을 가려가면서 치료하지는 않으니까.

윤수진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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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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