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타인(他人)’
코로나 시대의 ‘타인(他人)’
  • 유헌식(철학)
  • 승인 2020.09.29 13:14
  • 호수 147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글로벌하게 확산되고 장기화되면서 방역(防疫)이 인류의 최대관심사가 되고 있다. 방역의 문제는 결국 ‘타인과 거리 두기’로 이어지면서 주위의 모든 타인이 ‘잠재적인 코로나 전파자’로 둔갑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나 또한 상대방 입장에선 잠재적인 코로나 전파자에 속한다. 바이러스에 맞서기 위해 나와 타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긴장과 경계의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코로나 현상은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에 질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지만, 방역을 위한 ‘거리 두기’라는 처방전은 예전과 비할 수 없을 만큼 홀로의 시간과 공간에 머물게 한다. ‘뭉치지 않으면 죽는다! (Join, or Die!)’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호소와 반대로 지금은 ‘뭉치면 죽는다!’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깔려있다. 우리는 지금 서서히 홀로의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홀로’가 나를 살리고 타인도 살리는 길이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와 ‘같이’를 떨쳐버리기 어렵다. 인류는 모듬살이를 해왔다. 타인과 모여 일하고 생활함으로써 노동의 효율을 높이고 삶의 맛을 느껴왔다. 사람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사람들 ‘사이’에서 온다. 자신과 동질(同質)의 감각을 지닌 존재와의 만남에서 즐거움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홀로의 상황은 즐거움을 무기한 보류하게 만든다. 정지된 시간 속, 연락하거나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며 별생각 없이 ‘지인’이나 ‘친구’로 여겨왔던 사람들에 대해 우선순위를 매기고, 관계의 강도(剛度)를 따지게 된다.


누가 나랑 코로나 전염의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같은 배에 탈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연락해 만나자 해도 괜찮을까? 마스크를 벗고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웃으며 대화를 해도 무방한 타인은 누구일까? 내가 가깝게 생각하는 이에게 연락한다고 해서 그도 나처럼 생각해 반가워할까? 비록 만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전화나 문자로 상대의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코로나 시대는 내가 알고 지내던 타인이 나에게 무엇이었나, 반대로 그들에게 나는 무엇이었나를 묻고 생각하게 한다. 이 시대는 각자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면서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을 구별하게 만들며 주변 인물을 필터링(淨化)해준다. 걸러지면서 아예 관계 밖으로 밀려나는 경우도 생긴다. 홀로의 시간과 공간은 인간관계를 점검해, 상대적으로 더 소중한 사람과 덜 소중한 사람을 구분하게 한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를 진정한 친구로 여겼으며 누가 나를 지금까지 소중하게 생각해 왔을까? 코로나 시대는 예기치 않게 사람 관계를 정리해주고 있다. 지금도 뜻하지 않게 누군가는 이별하고 누군가는 재회하고 있을 것이다. 태풍 ‘코로나’는 인간의 관계 방식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휘몰아치며 재구성하고 있다.

유헌식(철학)
유헌식(철학) 다른기사 보기

 dkdds@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순이 2020-09-30 13:58:17
코로나로 인한 관계의 방식에 대해선 어렴풋이 느꼈는데 내용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살았네요.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