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혼자 장애물은 두 배인 미혼부·모
육아는 혼자 장애물은 두 배인 미혼부·모
  • 임성훈·추헌지 기자 정리=강혜주 기자
  • 승인 2020.09.29 15:58
  • 호수 14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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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혼부·모 단체

Prologue
갈수록 높아지는 가족 다양성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2018년, 정부가 가족 다양성 TF팀(계획 달성을 위해 설치된 임시조직)을 출범했지만 뚜렷한 효과는 없었다. 2019년 9월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혼부·모의 아이에 대한 부정적 의견은 55.5%로 나타났다. 여전히 2명 중 1명은 이들을 사회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에 기자는 미혼부·모가 현실적으로 겪는 어려움을 조명하고자 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돕고 있는 두 단체를 방문했다.

 

‘미혼모의 동반자’ 주사랑공동체를 방문하다
지난 8월, 내리쬐는 태양을 가리며 서울시 관악구의 한 가파른 언덕을 힘겹게 올라 기자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국내 최초로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주사랑공동체’다. 베이비박스란 아이 유기를 막기 위해 고안된 구출 상자다. 이를 시작으로 주사랑공동체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아이와 미혼모 구제에 주력하고 있다.

맡겨진 아이를 추위로부터 보호하는 베이비박스
맡겨진 아이를 추위로부터 보호하는 베이비박스

 

건물 앞에 도착하자 베이비룸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베이비박스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이대동(48)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운영한 지 11년이 넘었다”며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낡았고, 이에 2015년에 방 형태로 교체했다”고 말한 후 기자를 후문으로 안내했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미혼모가 찾아왔다는 알림이 건물 전체에 울려 직원들이 비상 대응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24시간 긴박하게 운영되며, 찾아온 미혼모에게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이 구축돼 있었다. 이 목사의 설명을 들으며 기자는 미혼모와 아이 유기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베이비룸 내부에는 아이를 눕힐 수 있는 작은 침대와 어머니가 상담을 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벽 한쪽에는 ‘상담은 아기와 엄마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이 방의 목적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내부를 구경하던 기자에게 이종락(67) 담임목사는 “아이 보호를 신청한 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아이 구출을 위해선 미혼모 지원이 뒷받침돼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범위를 아이 보호에서 미혼모 지원으로 확장해 운영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내부에는 미혼모 임시거주 시설도 마련돼 있었지만, 현재 거주자가 있어 입실하진 못한 채 이 담임목사의 방으로 향했다.

 

대한민국에서 미혼모로 살아남기
주사랑공동체가 지난 6월 발간한 자료집에 의하면 올해 이곳을 찾은 이들 중 72.1%는 미혼모였다. 대부분은 여건상 아이를 양육할 수 없어 보호 신청을 위해 방문한다. 이 담임목사는 “이곳을 방문한 모든 미혼모가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고 있다”며 이 일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전했다.

아이를 키우고 싶어도 양육과 경제적인 활동을 동시에 할 수 없어 이곳을 찾는 미혼모도 많았다. 아이를 키울 여력이 생길 때까지 주사랑공동체에 아이 양육 원조를 부탁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 담임목사의 방을 나오자 분유와 기저귀가 가득 찬 비품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미혼모의 어려움을 공감한 사람들이 그들을 조금이나마 돕고자 후원한 물품이었다. 이렇게 많은 기저귀와 분유도 한 달이면 동난다는 이 목사의 말에 얼마나 많은 미혼모가 찾아오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기자가 만난 미혼모 A(29) 씨는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양육비는 가장 어려운 숙제”라며 “친구와 쇼핑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아이를 낳은 후부터 한푼 두푼 아껴야 육아용품을 구매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3년 동안 양육비 소송을 진행해 힘겹게 승소했지만, 상대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도 현행법상 강제 집행이 불가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또한 미혼모라는 이유로 사회적 차별을 경험하기도 했다는 A 씨는 “출산 전 다니던 직장에서 임신으로 인해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미혼모뿐만 아니라 미혼부도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덧붙이며 “미혼부·모들을 폭넓게 바라보며 가족의 다양성을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기자는 A 씨를 통해 미혼부의 어려움은 상대적으로 조명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수소문 끝에 미혼부 센터를 찾아갔다.

아이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싱글대디 가정지원협회’ 사무실
아이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싱글대디 가정지원협회’ 사무실

 

‘사랑이 법’ 제정의 주역을 만나다

미혼모가 있듯 당연히 미혼부도 존재한다.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2017년엔 8천424명, 2018년엔 7천768명으로 미혼부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이 통계에 포함되지 못한 이들이 있다. 바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미혼부다.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선 복잡한 절차와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출생신고를 포기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2015년 미혼부의 출생신고 단계를 간소화한 일명 ‘사랑이 법’이 제정됐지만, 약간의 절차만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복잡해 기본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에 기자는 2015년 ‘사랑이 법’ 개정에 앞장선 뒤 현재는 미혼부들을 돕고 있다는 ‘싱글대디 가정지원협회’ 김지환(44) 대표를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의 장난감과 각종 동화책이 널브러진 모습에 일반 가정집과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기자가 내부를 둘러보던 중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한 어머니와 아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을 반긴 김 대표는 아이의 어머니를 배웅했고, 곧 기자와 김 대표만 있던 공간에 아이까지 남게 됐다. 그는 “미혼인 아이의 어머니가 비뇨기과에 여자 혼자 아들을 데려가기 곤란해 내게 부탁한 것”이라며 이런 부탁을 종종 받는다고 말했다. 기자가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부분에서도 이들은 불편을 겪고 있었다. 아이는 곧 익숙한 듯 장난감 옆으로 와 해맑게 놀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장난감과 동화책이 있어 다소 괴리감을 느꼈던 기자는 그 용도를 새삼 깨달았다.

▲ 펫말을 들고 있는 김지환 대표 
▲ 펫말을 들고 있는 김지환 대표 

 

차가운 현실은 미혼부에게도 있다
아이들과 장난감은 뒤로하고 ‘사랑이 법’ 제정 중심에 서 있던 김 대표에게 1인 시위를 전개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답변에 앞서 시위 당시 사용했던 팻말을 꺼내왔다. 팻말에는 출생신고에 관해 법과 제도로부터 아이들의 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내용이 강조돼 있었고, 그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들, 병원에 가거나 학교에 가는 것 등 많은 일이 불가능하다”며 미혼부들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미혼부가 출생신고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미혼모나 다른 부모보다도 더 많은 시간과 돈이 소비된다. 그는 “늦게는 아이가 9살이 될 때까지도 출생 증명서가 없어 출생신고를 못 한 경우가 있다”며 이런 아이들이 상당수인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에 무엇보다도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을 다시 이해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사랑이 법 개정 이후에도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미혼부의 연락을 많이 받았다”며 싱글대디 가정지원협회 설립 계기를 밝혔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9년 발표한 미혼부의 출생신고 인용률은 71.6%이다. 여전히 30%에 달하는 미혼부의 아이들은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현재는 미혼부·모에 관계없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환경 개선을 돕고 있다는 그는 ”젊은 층부터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차별이나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사회적 인식 개선을 강조했다. 

 

법률 사각지대로부터 구조하기
미혼부·모들이 현행법의 허점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을 본 기자는 해결방안을 찾고자 서울시복지재단 사회복지공익법센터를 찾았다. 이곳에서 미혼부·모의 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 김도희(38) 씨는 “미혼부·모 대부분이 변호사 선임 비용이나 소송에 걸리는 시간에 부담을 느껴 법률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낮다”며 소송의 복잡한 절차를 지적했다. 


현재 ‘사랑이 법’은 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만 출생신고가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대부분 생모의 정보를 아는 미혼부는 출생신고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에 김 변호사는 이런 법률에 완화가 필요하다는 미혼부들의 주장에 동감했다. 

기자가 앞서 방문했던 싱글대디 가정지원협회에서 만난 미혼부 B(47) 씨는 이혼한 지 약 180일 된 여성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 출생신고를 못 한 상황이다. 민법 제844조 친생자 추정에 의하면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하거나, 결혼 후 200일 이후에 출생 혹은 이혼, 사별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녀는 법률상 남편의 자녀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출생신고를 못 해 가장 속상한 점으로 “아이가 아플 때 응급실조차 갈 수 없고 해외여행도 불가하다”며 “출생신고를 하루빨리 마쳐 여권을 만들어주는 것이 소원”이라 호소했다.

 

Epilogue

미혼부·모가 처한 현실은 쓸쓸한 외면과 손가락질이 난무한다. 기자는 취재 당시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 사회에서 미혼부·모는 아직 하나의 가정으로 존중받고 있지 않음을 느꼈다. 하지만 기자가 본 미혼부·모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 중 하나였고, 똑같은 엄마이자 아빠였다. 어느 부모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아이를 향한 애정은 가득했다. 이제 그만 미혼부·모를 향한 차별을 멈추고 응원과 격려를 전하는 건 어떨까. 하루빨리 다름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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