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문 닫았습니다” 소규모 서점의 그늘
“오늘도 문 닫았습니다” 소규모 서점의 그늘
  • 박아영·신해인 기자 정리=권소영 기자
  • 승인 2020.11.10 16:01
  • 호수 1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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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

Prologue
아날로그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 산업이 친숙해지면서 MZ세대에게 종이책은 어려운 존재로 자리 잡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19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 1명당 평균 독서량은 연간 6.1권으로 작년보다 2.2권 감소한 수치다. 책 외에 다른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면서 책을 자연스레 멀리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전자책이 성행해 동네서점의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에 기자는 소외돼가고 있는 동네서점과 중소형 출판사의 그늘을 조명하고자 그 현장에 다녀왔다.

지금, 동네서점은 어디에
동네서점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곧장 수원역 근처 소규모서점으로 향했다. 첫 번째로 방문한 남문서점은 코로나19로 인해 매장 운영을 한시적으로 중단한 상태였다. 그 옆에 위치한 종로서점과 오복서점 역시 굳게 닫혀 있었다. 다른 서점을 찾기 위해 20분가량 골목을 한참 걸으니 간판에 희미한 불빛을 통해 일신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담한 서점 내부는 손님이 방문했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하고 한산했다. 오늘 서적 판매량에 대해 묻자 최영찬(70·가명) 씨는 “한 권도 못 팔았다”며 “이제는 단골손님조차 발길이 끊긴 상황”이라고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동네 헌책방도 다르지 않은 실정이다. 일신서점을 나와 다시 수원역으로 향해 허름한 외부의 헌책방을 찾았다. 내부에 들어서자 헌책 냄새가 물씬 풍겼으며 서가에는 시리즈물의 책과 동화책이 주를 이뤘다. 여러 권의 책이 정리되지 않은 채 통로에 쌓여있어 좁은 내부가 더 비좁게 느껴졌지만, 헌책 냄새와 옛 감성에 취해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오래된 참고서적을 하나 집어 살펴보니 표지에는 천 원임을 나타내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싼 가격에 놀란 기자에게 이곳을 운영 중인 김성순(60) 씨는 “근처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생긴 후 매출이 크게 하락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또 “깔끔한 책들은 주로 대형 중고서점으로 가고 남은 헌책들만 들어온다”고 말하며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대형서점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헌책방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수원 북스리브로 대형서점을 찾을 수 있었다. 내부에 들어서자 동네서점과는 확연히 다르게 쾌적하고 화사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어, 두 서점 간의 차이가 몸소 느껴졌다. 책을 읽을 수 있는 넓은 공간과 더불어 컴퓨터로 원하는 책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검색 서비스도 마련돼 있었다. 서적뿐만 아니라 여러 문구류와 음반까지 다양한 종류의 물품을 팔고 있었으며 계산하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이었다. 베스트셀러 코너를 둘러보던 황지후(35) 씨는 “깔끔하게 잘 정리된 느낌이고 큰 기업이다 보니 신뢰가 간다”며 방문 이유를 밝혔다. 방문객들은 주로 추천 도서 코너 주변에 집중됐고, 넓은 서점에 가득 찬 책들이 민망하리만큼 베스트셀러 외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앞서 방문한 일신서점을 떠올리니 그곳은 비교적 협소했지만, 추천보다 스스로 원하는 책을 발굴해내는 재미를 더해주는 공간이었음이 떠올랐다.

▲ 문이 닫힌 서점
▲ 문이 닫힌 서점
▲ 베스트셀러 책을 구경 중인 사람들
▲ 베스트셀러 책을 구경 중인 사람들

 

 

책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
이러한 서적 도매업 환경 약화는 동네서점만의 문제일까. 분명 그 영향은 중소 출판사에도 있으리라 생각한 기자는 3년 전 출판계를 충격에 빠트렸던 사건을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바로 국내 2위 출판 도매상인 송인서적의 1차 부도 신청 건이다. 송인서적은 2천여 개 출판사와 거래해온 대형 출판 도매 업체였지만, 만기 50억 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처리 됐었다. 이로 인해 소규모 지역 출판사 및 서점의 연쇄 부도 사태가 우려될 만큼 중소출판계의 존립이 크게 흔들렸다. 다행히 송인서적은 회생했지만, 출판계의 의존적 모습을 처음 마주한 기자는 중소 출판계의 빈약한 자립성에 대해 알게 됐다.

이에 현재 출판계의 서적 환경을 알아보고자 파주 출판도시로 걸음을 옮겼다. 인문·고전·역사·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다루는 중소 출판사 서해문집 사무실에는 17명의 직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자가 만난 김일신(49) 본부장은 “독자들의 취향과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평균적인 초판 제작 부수가 3천 부에서 1천 부까지 축소됐다”며 “인쇄량에서 확연히 변화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어 독서율 및 종이책의 수요 하락 이유는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으로 종이책보다는 핸드폰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독서 시간이 감소했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기자 또한 평소 핸드폰을 통해서만 정보를 얻는 것에 익숙해져 책을 읽을 생각조차 떠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의 말이 더 와 닿았다.

책을 파는 사람의 외침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서정가제가 탄생하기도 했다. 도서정가제란, 출판사가 붙인 책값을 유지해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현재는 10%의 가격할인과 5%의 간접할인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최대 15%로 할인율이 제한된다. 도서정가제의 취지는 도태되는 동네서점과 출판사를 살리자는 가치에서 출발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소비자의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동네서점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대형 업체의 매출 의존도도 여전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에 지난해 말에는 도서정가제를 폐지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넘어서며 존립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궈지기도 했다.


경제적 위기와 도서정가제 폐지의 피해는 고스란히 동네서점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에 기자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파주시 교하읍에 위치한 동네서점 쩜오책방을 찾았다. 수많은 빌딩 속 좁은 골목에 위치한 쩜오책방 역시 손님 한 명 없는 모습에 문을 열기가 괜스레 꺼려졌다. 내부에 들어서자 흔히 아는 유명작가의 책보다는 다소 낯선 책들이 눈에 띄었다. 평소 볼일이 없던 그림책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새로운 책은 기자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그렇게 한동안 책을 구경하다 쩜오책방 이정은(51) 대표를 마주쳤다. 그는 “도서정가제가 폐지된다면 할인된 도서만 살아남아 결국 책의 다양성은 꽃피기 어렵고 콘텐츠의 질이 낮아질 것”이라며 도서정가제 유지를 주장했다. 더불어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많은 동네서점이 큰 힘을 얻었다”며 도서정가제는 동네 책방이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도서정가제 지지와 함께 개정을 주장하는 서점도 있었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불광서점 벽면에는 ‘한국서점인협의회’의 호소문이 붙어 있었다. 민관합의체에서 마련한 할인 폭을 전제로 한 도서정가제 합의안이 국회에서 반려돼, 합의안 존중 요청과 도서정가제 개정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한국서점인협의회의 절실한 주장과 독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호소문 옆에는 도서정가제 지지 서명에 동참하는 서명운동도 진행되고 있었다. 다른 방문객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호소문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기자도 평소였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테지만, 취재 중 알게 된 도서정가제의 현 상황에 왜인지 눈길이 갔다.

앞으로, 동네서점은 어디로
정부에서는 동네서점의 경영난을 막기 위해 100여 개 동네서점에 각 500만 원 상당의 도서 구매를 지원하고 출판 제조업에 최대 3천만 원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기자는 실제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온 홍대 가가77페이지 서점을 찾아갔다. 마침 다음날 ‘김봉철 작가와 만남’ 북 토크 행사가 예정돼 있어 예약 후 행사에 참여했다.

저녁 6시부터 2시간가량 진행된 행사는 작가와 10명 정도의 독자 간 대화로 불탔고, 서점만의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분위기와 합쳐져 조화를 이뤘다. 대형서점에서 열리는 작가의 팬 사인회가 아닌, 동네서점에서 작가와 긴밀한 교류를 나눌 수 있는 북 토크의 매력에 빠진 순간이었다. 작은 서점에서 이런 행사를 꾸준히 진행한다면 손님들의 방문도 활발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점 주인 이상명(40) 씨는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북 토크와 더불어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심야 책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며 “여러 행사로 인해 단골손님 층이 단단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한눈에 보기에도 대형서점과 동네서점의 손님 수 차이는 두드러졌다.

▲ 편안한 분위기 속 작가와의 북 토크
▲ 편안한 분위기 속 작가와의 북 토크

 

 

Epilogue
영국 잡지 ‘모노클’에서는 매년 6월, 동네 서점 수를 지표 삼아 살기 좋은 도시 순위를 발표한다. 서점이 있어야 동네가 살아나고, 살기 좋은 도시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한미화 출판 평론가 또한 “동네서점은 주민들이 함께 꿈을 꾸고 소통할 수 있는 터전”이라며 “마을 분위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이자 책의 긍정적인 측면을 비추는 등불 같은 역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신없는 하루를 마친 뒤, 오늘만큼은 동네서점에 가서 차분하게 책을 골라보는 것은 어떨까. 천천히 책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음미할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동네서점 하나를 알아두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성공적인 하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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