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훌쩍 가까워진 연말, 어이없음을 담다
⑨ 훌쩍 가까워진 연말, 어이없음을 담다
  • 음악칼럼니스트 천미르
  • 승인 2020.11.24 13:07
  • 호수 147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뭐지? 나는 한 게 없는데 왜 벌써 12월이 다 돼가지? 학교도 몇 번 안 가고, 여행도 못 갔다 왔고, 뭔가 기억에 남는 일도 없는 올 한 해. 남은 한 달 남짓의 시간이라도 알차게 보내고 싶지만 여의치가 않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도 별 수확 없이 지나가 버리겠지. 이렇게나 허무하게 지나간 한 해가 있을까. 추억도 없이 스쳐 가는 시간에 어이가 없다.

Way Down We Go - Kaleo
달력 속 빼곡하게 적어둔 일정들을 보면 열이 받는다. 친구들과 약속했던 해외여행도, 한 해 동안 준비해왔던 자격증 시험도 모두 미뤄져 버린 지금. 계획해뒀던 일을 하나도 하지 못한 채로 벌써 한 해가 다 갔다는 사실에 화만 난다. 하필이면 왜 올해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못 하는 일들이 쌓여갈수록 어이없음을 넘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영화 '로건(Logan)'의 OST로 사용돼 인기를 끌었던 곡 'Way Down We Go'가 오늘의 첫 번째 추천곡이다. 끊임없이 추락하며 하늘에게 이런 고통을 준 이유를 물어보는 가사가 어찌 보면 지금의 상황들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지 않는가.

 

Gimme Gimme - Johnny Stimson
허무하게 날아가 버린 내 소중한 시간 돌려내!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위처럼 말하는 모습이 떠오르는 두 번째 추천곡 'Gimme Gimme'이다. 지나가 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너무 어이가 없어서 지금의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느낌이다. 국내 모 전자 회사의 스마트폰 광고에 활용되면서 눈길을 끌었던 곡으로, 통통 튀는 베이스 사운드와 중독성 있는 훅이 인상적인 곡이다.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터무니없는 일을 겪었을 때 현실을 인식하기 힘들고, 이 모든 것들이 꿈 혹은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곡이 위의 상황에 처한 누군가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New World - Krewella & Yellow Claw (ft. Vava)
올 한 해를 뒤돌아보면 짜증만 난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저스트 댄스'라는 아케이드 게임에 해당 곡이 들어가면서 많은 개인 방송인들이 이 곡을 즐기기도 했다. 두 자매로 이루어진 DJ 겸 프로듀서 듀오 크루엘라와 네덜란드 출신의 DJ 듀오가 합작해 만든 곡으로, 두 팀 모두 3명으로 시작했지만 한 명의 멤버가 각각 탈퇴한 점이 특징이다. 게다가 이 곡은 서구권 음악으로는 독특하게 중국의 래퍼 바바의 피처링을 들어가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뭔가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기에는 귀찮기만 하고, 이때까지 일어난 일들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어이없는 일들이었기에 그냥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모습이 떠오른다. 제목에서처럼 얼른 백신이 나온 새로운 세계가 다가오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Drugs - UPSAHL
내 기억에는 집에 가만히 누워서 멍하게 있기만 한 것 같은데 벌써 연말이 다가온다니.
실감 나지 않는 현실에 여전히 멍한 느낌이 드는 모습이 떠오르는 4번째 추천곡 'Drugs'이다. 마치 약을 한 것 같은 멍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곡으로, 한 음씩 연주되는 기타의 사운드와 나른한 분위기를 풍기는 보컬이 몽환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그냥 2020년은 원래 없었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말하는 친구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냥 남은 한 달간 무엇인가 하겠다는 마음은 버리고, 깔끔하게 포기하고 지내는 게 속 편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은 똑똑한 친구처럼. 남은 한 달 드라마틱한 변화를 바라기보다는 이 곡을 들으면서 그냥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건 어떨까.

 

Cold Little Heart - Michael Kiwanuka
이런 상황이 일어나고,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 버린 것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만 그럴 대상도 마땅히 없는 상황.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 어처구니없는 순간을 처음 겪는 것이기에 그 답답함은 배가 되는 것 같다. 현악기와 백업 코러스들의 사운드가 어울려 비장한 인트로로 시작하지만, 인트로가 지나면서 곡의 분위기가 블루지하게 변화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날씨도 쌀쌀해지고, 뭔가 나아지는 느낌도 잘 들지 않는 요즘의 상황을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되는 곡이다. 담담하게 풀어가지만, 간절함 또는 애절함이 담긴 보컬과 맞춰 곡 전체에서 이어지는 코러스의 사운드는 먹먹한 느낌을 만들어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