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마음 속에 빈 공간을 마련하자
너와 나의 마음 속에 빈 공간을 마련하자
  • 유헌식(철학) 교수
  • 승인 2020.11.24 16:04
  • 호수 14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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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식(철학) 교수

을씨년스런 2020년의 늦가을 한복판에 우리는 서 있다.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나와 사람들에게도 온기(溫氣)를 전해 주고 싶다. 무릇 생명이란 적당한 온기에서만 살아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서로를 잠재적인 코로나 전파자로 경계하는 차가운 시선이 아니라 재난의 시대를 함께 통과하고 있다는 공동운명 의식으로 서로를 보듬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따뜻하다’와 ‘차갑다’는 모두 느낌이다. ‘따뜻한 것’은 끌어당기며(引), ‘차가운 것’은 밀어낸다(斥). 지구에 가까워지는 별은 붉은빛을 띠어 따뜻하게 감지되고, 멀어지는 별은 푸른빛을 띠어 차갑게 감지되는 이치와 같다. 따뜻한 사람에게는 다가가고 싶지만 차가운 사람에게는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지각(知覺)의 성질이 행위의 방향을 결정하는 셈이다. 온기와 냉기의 차이는 주체 또는 사물이 품고 있는 공기의 양에 의존한다. 냉(冷)·온(溫)의 느낌은 자체의 물질적 속성이 아니라 대상을 구성하는 역학(力學)의 원리에 근거한다. 예를 들면, 나일론 실 한 올은 차갑지만 실 여러 가닥을 꼬아 합치면 따뜻하게 느껴진다. 실과 실 사이에 공기를 품을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기를 많이 품는 소재의 질감은 따뜻하고 그렇지 못하면 차갑다. 털과 울 소재의 옷이 따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냉·온의 정도는 대상 내부에 확보돼 있는 빈 공간의 크기에 비례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따뜻한 사람은 자기 안에 빈 공간이 충분히 마련돼 있다. 그래서 타인의 말이나 행동이 그의 공간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따뜻한 사람을 대하기가 편한 것은 그의 내부에 내가 자리할 수 있는 빈 공간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관용과 포용은 나의 내부에 마련된 빈 공간에서 비롯한다. 내 안의 빈 공간이 충분할 때 나도, 타인에게도 따뜻할 수 있다. 타인에게 차갑고 강퍅한 사람은 타인이 들어설 자리가 비좁다. 사람의 경우 ‘빈 공간’을 보통 ‘마음의 여유’라 부르는데 사실 이 공간은 어느 것으로도 확정되지 않아 유연한 자유의 영역이다. 불확정의 영역은 나를 불안하게 하지만 달리 보면 내가 타자를 받아들여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게 한다.


자기 안에 빈 공간 곧 여유가 없으면 타인에게 무관심하거나 냉담하기 쉽다. 조밀하게 직조(織造)된 섬유나 사람은 외부의 타자를 밀어내거나 들어온다 해도 그 안에 품기 어렵다. 겔렌(A. Gehlen)의 철학적 인간학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와 행위 사이에는 빈 공간 또는 ‘간극(Hiatus)’이 존재한다. 이 간극을 통해 인간은 외부의 자극에 직접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우회적, 반성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인간의 결핍을 보완할 수 있다. 코로나 시대에 자기보존과 생존의 욕구에 갇혀 타인을 경계와 증오의 마음으로 밀어내기보다는 인간이 구비하고 있는 ‘간극’을 활용해 인간애(humanism)의 시각에서 따뜻하게 감쌀 수 있는 빈 공간을 가슴 속에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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