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언어로 동등한 소통의 가치를 전하다
당당한 언어로 동등한 소통의 가치를 전하다
  • 임성훈 기자
  • 승인 2020.11.24 16:50
  • 호수 14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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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미(42) 수어통역사
출처:코리아넷
출처:코리아넷

Prologue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되며 소외된 사회 계층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에 청각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은 약 37만7천 명.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우리나라 역시 코로나19 정례브리핑(이하 정례브리핑)을 필청해야 하는 시대가 왔으나, 이들은 일반적인 시청을 통해 정확한 사실 보도를 전달받기 어렵다. 하지만 표정과 손짓, 즉 자신의 신체 하나로 이들의 소통 매개체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정례브리핑 중계 화면 옆에서 유일하게 마스크를 끼지 않은 채 손짓을 하고 있는 수어통역사이다. 정확한 정보 전달이 생명이 된 요즘, 청각 장애인과 정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힘쓰고 있는 고은미(42) 수어통역사를 만나 그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현재 정례브리핑과 같은 정부브리핑에서 수어통역을 지원하고 있는 수어통역사 고은미다.

 

▶ 수어통역사라는 흔치 않은 직업을 택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나는 청각 장애인 부모를 둔 건청인을 의미하는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이다. 그렇기에 음성언어보다 수어를 먼저 배웠다. 이후 대학을 졸업할 무렵 수어통역사 자격증 제도가 처음 생겼고, 당시 수어에 대한 자신감 하나로 시험을 봤다. 그렇게 수어통역사가 되겠다는 결심은 자연스레 이뤄진 것 같다.

 

▶ 자막이 아닌 수어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유가 있는가.
일반 청인(聽人)도 브리핑 내용을 글자로 읽는 것보다 말로 들을 때 이해가 더 쉽다. 마찬가지로 농인(聾人)도 자막을 보는 것보다 수어로 전달될 때 이해도가 높아진다. 따라서 엄중한 시기에 국민 누구도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공평하게 정보제공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정례브리핑 현장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어는 손동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표정, 몸의 방향 같은 손 외의 신체 동작도 수어의 구성 요소에 해당한다. 입술이나 눈썹 모양을 어떻게 하고 몸통을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돌리느냐 등에 따라 수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때문에 정례브리핑에서도 수어통역사들은 표정과 손짓을 십분 활용한다. 그래서 좁은 공간의 브리핑장에서도 유일하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

 

▶ 정례브리핑에 대한 어려움은 없는가.
정례브리핑은 중요도만큼이나 난도 높은 통역 현장이다. 워낙 많은 의학용어와 함께 다양한 내용이 빠르게 쏟아지기 때문이다.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는 통역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에 배경지식을 많이 준비한다. 관련 브리핑을 꼼꼼히 다시 챙겨보고, 기사나 정책 뉴스, 유튜브 영상, 그리고 누리꾼들이 단 댓글까지 일일이 챙겨 보며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공부해 놓는다. 이러면 취재진 질의응답에 나올만한 질문을 일부 예측할 수 있고 대응하기 쉬워진다.

 

▶ 현 사태로 인해 새로 생겨난 ‘사회적 거리두기’, ‘COVID-19'와 같은 단어들은 어떻게 통역하는가.
수어통역에서 생소한 용어 사용은 어려운 부분이다. 때문에 새로운 단어가 생기면 한국농아인협회나 공공 수어통역사들이 모여 표현을 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농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수어를 수집하고 정리해 국립국어원-새수어모임에서 매달 공식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 만일 수어통역 중 말을 놓치거나 수어를 실수했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통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자의 의도나 맥락을 빠르게 짚어내 전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 특정 단어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당황하지 말고 들리는 시점부터 다시 차분히 통역해야 한다. 수어를 실수했을 때는 재빨리 수정해서 통역한다. 이런 순발력과 여유가 그동안의 수많은 시행착오 경험에서 나오는 약간의 노련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 전에는 어떤 곳에서 수어통역을 해왔는지 궁금하다.
한 대학에서 18년간 근무했다. 농인 학생이 듣는 강의마다 찾아가 강의 내용을 수어로 전달하는 일이었다. 이는 농학생의 교육권 보장에 아주 필요하고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수어통역사로 일하면서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면 무엇인가.
지금은 브리핑 통역을 하면서 농인으로부터 많은 연락을 받는다. 기존의 작은 화면이 아닌 화면 절반 가득 나오는 수어통역을 보면서 이제 수어로 당당하고 편하게 정보전달을 받는 것이 너무 좋다는 감사 인사다. 이럴 땐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 비장애인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정례브리핑으로 인해 수어가 많이 노출됨에 따라 인식이 확산되고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감사한 일이다. 이에 한 가지 바란다면, 많은 분들이 수어를 배웠으면 한다. 수어가 농인들의 언어이긴 하지만, 그들만의 언어는 아니기에 청인들이 수어를 배우고 사용한다면 농인들은 더 이상 장애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함께 하는 사회에서 따뜻한 관심이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 [공/통/질/문]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은.
‘함께’다. 현재는 바이러스 상황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다 보니 ‘함께’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한 것 같다. 잊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함께일 때 더 빛나고 행복한 존재라는 것을.

 

▶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을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가 해외여행을 갔을 때 긴장한 나에게 어느 외국인이 한국어로 말을 걸어준다면, 우리는 일단 미소로 화답하며 친근감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농인들은 우리나라에 살면서 매일 의사소통으로 인한 긴장감을 안고 살아간다. 다수의 힘 있는 언어를 소수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 더 나은 방법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pilogue
통역 중 마스크를 벗어야만 하는 이유를 듣자, 기자는 인명구조를 위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을 떠올렸다. 우리는 마치 코로나19라는 큰 화재 속에서 대피하고 있으며 그는 목숨을 걸고 대피가 어려운 사람들을 구조하는 중인 것이다.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묵묵히 일하는 그 경이로운 직업관은 어디서 왔을까. 고인 물에 깨끗한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다 보면 언젠가 다시 정화되듯, 우리 모두 바이러스 종식에 힘쓰는 사람들을 위해 책임감을 갖는다면 세상은 다시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깨끗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임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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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usktilldawn@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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