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받지 못하는 매립시설, 갈등의 끝은 어디일까
환영받지 못하는 매립시설, 갈등의 끝은 어디일까
  • 박아영·이소영·이은솔 기자
  • 승인 2021.03.10 01:01
  • 호수 14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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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도 폐기물 매립시설

Prologue

지난 4일 인천시는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이하 영흥도)을 자체 신규 폐기물 매립시설(이하 매립시설) 설치 지역으로 최종 확정했다. 이는 인천시가 수도권매립지 폐지 및 매립시설 독립을 위해 영흥도를 매립지 1순위 후보지로 발표한 지 4개월 만이다. 발표 당시 영흥도 주민들은 일방적인 결정이라며 크게 반발했고 매립시설을 둘러싼 갈등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그들의 충돌은 확정 발표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커졌으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어딘가에는 꼭 설치돼야 할 환경기초시설이기에 서로의 입장이 곤란한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인천시와 영흥도 주민의 대립이 한창이던 지난달, 뉴스도 알려주지 않았던 그들의 현실 갈등을 조명하고자 그 현장을 찾았다.

▲ 피켓 시위 중인 영흥도 주민
▲ 피켓 시위 중인 영흥도 주민

 

물러설 수 없는 영흥도 주민
기자는 영흥도 매립시설 설치 반대 시위가 진행되고 있는 인천시청 앞 광장으로 향했다. 기자가 도착했을 때 영흥도 주민들은 집회 시작을 위한 음향 리허설 중이었고, 이곳이 집회 현장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석탄재에서 쓰레기까지 영흥도 주민을 두 번 죽이는 인천시 쓰레기 행정을 강력 규탄한다’는 문구가 크게 적힌 팻말을 꺼내 들며 준비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인천시청에 걸려있는 ‘환경특별시 인천’ 현수막과 대비됐다. 곧이어 집회가 시작되자 주민들은 노래에 맞춰 자신들의 심정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기자는 그들의 목소리에서 벼랑 끝에 매달려있는 듯한 절박함이 들렸다.


이번 시위를 총괄한 영흥주민협의회 임현선(51) 사무국장은 “영흥도는 지금도 대형 트럭들로 난잡하고 환경 문제로 인한 시름을 앓고 있다”며 “매립시설이 생긴다면 교통 대란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영흥주민협의회 임승진(58) 회장은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거나 연구용역 결과도 공개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미디어에 후보지를 발표한 인천시에 화가 난다”며 “일종의 정치꾼 노름에 주민이 농락당하는 기분”이라고 한탄했다.


영흥도의 한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영흥화력발전소(이하 화력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일어난 주민 갈등으로 큰 아픔을 겪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경찰에 연행되거나 수감 생활을 한 주민들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화력발전소 건설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임 회장은 “발전소 건설 후 먼지 때문에 호흡하기 힘들고 밖에 나가면 연탄가스 냄새로 어지러울 지경”이며 이번 건설 정책에 대해 “지난 경험이 있으니 매립시설 설치가 겁나는 건 사실”이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시위 피켓을 정리했다.

 

▲ 영흥도 곳곳에 걸려있는 매립시설 반대 현수막
▲ 영흥도 곳곳에 걸려있는 매립시설 반대 현수막

 


인터뷰를 마친 후 영흥도로 가는 버스를 타 창밖을 보니 도로마다 걸린 붉은 현수막들이 눈에 띄었다. 하늘은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연기로 뿌예 보였고, 이는 주민들의 한숨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기자는 수십 개의 현수막을 지나치고 나서야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자 버스 정류장 근처 부동산으로 들어섰다. 매립시설 설치 이점에 관해 묻자 부동산 관계자 김원철(67·가명) 씨가 조심스레 말문을 뗐다. “주민 여가시설을 생각하면 이득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인천시가 계획을 잘 이행할지 미지수”라며 “솔직히 설치된다고 해도 상생 관계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매립시설 선정지와 가까운 지역은 10~20%까지 값이 내려갔고 현재는 거래 자체가 안 되는 상황임을 설명하며 난처함을 표했다.


지자체에서 대체 매립지에는 총 3조3천억 원이라는 지원책을 주겠다고 내세우기도 했지만 김 씨는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얘기하면서 유인책이라 하면 누가 믿겠느냐”며 화력발전소로 인한 소음, 분지, 연기 등의 고통이 되풀이될 우려를 내비쳤다.

 

▲ 인천시청에 걸린 홍보 현수막
▲ 인천시청에 걸린 홍보 현수막

꼭 필요한 환경기초시설이기에
영흥도 주민들의 반대에 인천시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기자는 인천시청 내 3층에 위치한 수도권매립지 매입종료 추진단으로 향했다. 복도 끝에 자리한 사무실은 주민들의 시위가 끝난 후라 더욱 고요하게 느껴졌다.


그곳에서 만난 수도권매립지 매립종료 추진단 최명환(49) 팀장은 “현재 수도권매립지에 반입되는 하루 평균 폐기물 중 80%가량이 서울·경기에서 보내진 것”이라며 “그로 인한 인천시민들의 재산·건강상의 피해가 매우 크다”고 매립시설 독립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또한 “현재 수도권매립지는 폐기물 직매립으로 환경 오염이 크지만, 신규 매립시설은 폐기물을 소각·재활용 후 최소한으로 남은 폐기물만 매립할 예정”임을 전했다. 그의 단호한 어투에서 수도권매립지 종료에 대한 확고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영흥도 주민의 강경한 반대에 관해 묻자 그의 단호한 어투는 조금 풀어진 듯했다. 그는 “당연히 거주 주민으로서 좋아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들의 입장에 공감했다. 하지만 “거리, 기반시설, 땅 가격, 주변 생태계와 같은 세부 평가 지표를 따졌을 때 영흥도가 최적지로 뽑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발표 전 공청회를 진행할 수 없었던 이유는 “공청회를 통해 지역을 결정해도 그 지역 주민들이 찬성한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일단 후보지 중 1순위만 공개한 것”이었다며 “현재는 주민을 설득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해명했다.


수도권매립지 매립종료 추진단 현승주(51) 주무관도 신규 매립시설 명칭을 ‘인천 에코랜드’로 선정했다며 친환경 매립시설임을 강조했다. 또한 설치 예정인 매립시설은 폐기물을 지하에 매립하고 지상에는 에어돔을 설치해 주민들이 걱정하는 악취·분진 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환경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영흥도 주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갔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으며 영흥도와 주민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 방안을 약속했다. 인천시의 입장을 듣고 난 후 기자는 매립시설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은 사라질 수 있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
인천시와 영흥도 주민이 완전히 다른 입장을 고수하는 모습을 본 기자는 싸움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1992년부터 오늘까지, 작년 기준 수도권 2천500만 인구의 폐기물을 매립하고 있는 수도권매립지를 확인해보면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기자는 그 현장을 살펴보고자 발걸음을 옮겼다.


인천 서구 백석동에 위치한 수도권매립지에 가기 위해 기자는 청라국제도시역에 하차했다.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가 존재하지 않아 택시를 탄 기자는 평일임에도 한적한 인도를 보고 다소 놀랐다. 택시 기사 백영복(62) 씨는 “이 지역은 인천에서도 외각에 위치한 편이라 직원이 아니고서야 수도권매립지에 가지 않는다”며 기자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인천 중구 거주자라고 말한 백 씨는 수도권매립지가 곧 중단될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전혀 몰랐다는 듯이 반응했다. 본인 거주지역이 아니라 관심이 없었다는 그는 “만약 내 지역에 매립시설이 들어온다면 절대 반대할 것”이라며 강력한 반감을 드러냈다. 대답을 들은 기자는 인천시와 영흥도의 심각한 갈등이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듯해 허무함을 느꼈다.

▲ 수도권매립지로 들어가고 있는 트럭
▲ 수도권매립지로 들어가고 있는 트럭

 

혐오시설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수도권매립지에 가까워지자 ‘쓰레기는 또 다른 자원’이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트럭이 줄지어 매립시설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에 도착한 기자는 본관 옆 건물 벽에 ‘폭탄 돌리기는 이제 그만!’이라고 적힌 붉은 현수막에 시선을 빼앗겼다. 현수막 제작 취지를 묻자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노동조합 수석인 이성호(45) 씨는 “수도권매립지 종료까지 4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4자(서울·경기·인천·환경부) 모두 매립시설 문제에 대해 회피하고 있다”며 “국민에게 폐기물 대한 문제를 공개적으로 알리고 다 같이 해결하고자 걸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수석은 “혐오시설이라고 서로 거부하는 시점에서 수도권 국민의 건강권과 재산권, 환경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추가 매립지를 먼저 확보한 후 대체 매립지를 찾는 것이 우선”이라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현 수도권매립지를 연장해 내부에 친환경 매립지를 추가 건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종량제 도입과 재활용 활성화, 분리배출 시작 후 매립량이 줄어들어 수도권매립지 수명이 많이 늘어났다고 덧붙인 그는 “만약 수도권매립지를 계속 운영한다면 친환경적인 시설로 재탄생해 운영할 예정”임을 알렸다.


더불어 그는 아직 국민이 매립시설을 혐오시설로 바라보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현재 매립시설은 많은 연구와 관리를 통해 악취 문제가 대부분 해결됐으며 매립이 끝난 땅을 공원화해 충분한 주민 여가시설을 건설한다”고 전하며 사람들이 매립시설에 대한 프레임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실제로 매립시설을 돌아본 기자는 악취를 느끼지 못했기에 그의 의견에 공감할 수 있었다.

▲ 'waste, but energy'라고 적혀있는 수도권매립지 건물
▲ 'waste, but energy'라고 적혀있는 수도권매립지 건물

 

Epilogue
회피부득(回避不得). 피하고자 해도 피할 수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 사자성어다. 폐기물 매립시설의 역사는 지역 간 폭탄 돌리기의 연속이었다. 서로 문제를 회피하고 떠넘겨버려도 돌고 돌아 결국 다시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기자가 만난 취재원은 모두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 주장의 이면에는 딱 하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지역 간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이다.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이 아니라고 해서 안일하게 생각하는 개인주의 태도가 그들의 갈등에 불을 지핀 건 아닐까. 이제 무관심에서 벗어나 길고 긴 악연을 끊어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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