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란의 개화
춘란의 개화
  • 장두식(자유교양대학) 교수
  • 승인 2021.03.10 02:02
  • 호수 14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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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두식(자유교양대학) 교수

 

아침 산책을 나서려는데 베란다 구석이 반짝한다. 벌써 봄기운을 빨아들이고 있는지 화분들의 화색이 좋았다. 아침 빛에 더욱 푸르른 잎들 사이 수줍은 꽃봉오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춘란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삼월 아침 공기에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스르르 펴졌다. 춘란이 꽃을 피우는구나. 가람 이병기 선생의 시조가 떠올랐다. “산뜻한 아침볕이 발 틈에 비쳐들고/난초 향기는 물밀 듯 밀어오다/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옛 선인들은 이렇게 난과의 인연을 귀히 여겼었다. 치자나무와 라벤더와 고무나무 등 큰 화분들 틈에 방치하다시피 춘란 화분을 놓아뒀으니 참으로 무교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가련한 춘란이 개화를 하고 있다.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는데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려 하고 있으니. 여리여리한 꽃대궁을 한참 완상하다가 늦은 산책을 나왔다.


뒷산 초입에 들어서니 벌써 산책객들이 보였다. 마스크를 벗고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려 했는데 다 틀렸다. 제2의 피부가 된 마스크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가파른 약수터 길을 오르며 헉헉 숨이 차오르자 마스크가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다. 팬데믹 상황이 언제쯤 끝나려나. 작년부터 정상적인 생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비대면으로 강의를 하다 보니 심도 있는 강의를 할 수 없고 학생들과의 소통도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카데메이아에서 플라톤이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제자들을 교육했듯 대학에서의 강의란 교수와 학생들 간의 대화를 통해 더욱 심화·발전하는 것이다. 원격강의는 형식적인 면이나 내용적인 면에서 많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교수들은 효과적인 강의를 위해 많은 모색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뾰족한 방안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생동감 없는 강의는 수강하는 학생들보다 강의를 하는 교수들이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작년부터 대학 강의도 두터운 KF94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이다.


터벅터벅 산을 내려오는데 땀에 젖었는지 마스크가 축축했다. 상쾌한 아침 산책을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정말 팬데믹 상황이 언제 끝날까. 백신도 개발됐으니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곧 올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한다. 문득 춘란이 생각났다.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던 춘란이 봄이 오자 그윽한 꽃을 피우고 있다. 춘란은 무정한 주인의 눈길이나 손길이 언제쯤 다정해질까 애태우지도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환경에 적응하며 자기 본성대로 성실하게 자라고 있을 뿐이다. 재작년을 생각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생각하면 마스크를 쓰고 원격강의를 하고 있는 현재 이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비정상이라고 현재를 내다 버릴 수도 없고 현재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춘란처럼 살아야 한다. 자기 직분대로 성실하게 생활하다 보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올 것이다. 춘란이 감동적인 꽃을 피우고 있듯 오늘의 시련은 항상 내일의 찬사를 품고 있다. 더욱 오늘에 집중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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