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한 관념 깨고 우뚝 서기
만연한 관념 깨고 우뚝 서기
  • 강혜주 기자
  • 승인 2021.03.10 01:49
  • 호수 14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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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문학-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이 도서는 기자의 주관적인 추천 도서입니다.>

"20세기 여성의 불합리에 맞선 당당함"

 

저  자     정세랑
책 이름   시선으로부터,
출판사    문학동네
출판일    2020.06.05.
페이지     p.340

 

한국전쟁 당시 하와이 이주민의 삶부터 제국주의, 성차별, 모계 중심 가정까지. 정세랑 작가는 다양한 소재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녹여냈다. 예민하거나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주제들임에도 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따뜻하고 평화롭다. 이는 비단 하와이를 배경으로 서사가 전개됨만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제목만 보고 다양한 시선으로 내용을 전개해 이처럼 명명했으리라 예상하며 책의 첫 장을 열었다. 곧장 보인 가계도를 보곤 그 예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음을 깨달았다. ‘심시선’을 중심으로 뻗어 나온 그녀의 자녀와 손주들이 총 31장을 구성하기 때문에 이는 중의적인 제목이었다. 각 장에는 13명의 인물 중 한 명이 등장해 심시선과의 관련성, 그들의 개인사를 전달하며 동시에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다만 심시선은 등장하지 않는데, 대신 각 장의 도입에 그녀의 생전 인터뷰, 저서, 잡지 기고 글 등 짧고 다양한 토막을 통해 그녀의 가치관이 노출된다. 여기서 한 번의 이주, 한 번의 유학 아닌 유학과 두 번의 결혼을 거친 그녀의 생애를 엿볼 수 있을뿐더러 당시 세상의 억압에 맞선 20세기 여성의 진보적 가치관까지도 드러난다. 책장을 넘기고 심시선에 대해 알아갈수록 정세랑 작가의 이런 서술 방식은 즐겁게만 느껴졌다.

 

“그럼요, 죽은 사람 위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봤자 뭐하겠습니까? 사라져야 할 관습입니다.” p.9

 

심시선 별세 10주기를 맞아 장녀 명혜가 색다른 제사를 기획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의 생전 뜻에 따라 한 번도 제사를 지내본 적 없기에 모두 의아해하지만, 역시 관습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선 이들은 제사를 위해 하와이로 떠난다. 제사상도 준비하지 않고, 각 가계 구성원은 심시선이 젊음을 지냈던 이곳에서 며칠간 지내며 마지막 날 심시선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와이에서의 가장 감명 깊은 경험 혹은 물건을 공유하는 시간과 함께 그녀를 추억한다.

 

동양인 여성이기에 받아야 했던 억압과 폭력을 견디며 살아온 심시선의 당당함과 그녀의 자손이 물려받은 가치관은 이상적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 특별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에게 담긴 이야기는 극히 평범해 책장을 넘길수록 공감대가 형성되고, 우울하다가도 경쾌해지는 문체에 위로받기도 한다. 


책 초반엔 각 등장인물의 관계를 다 기억해내기 어려워 가계도가 그려진 앞장을 계속 들춰보기 일쑤일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개성이 뚜렷해 모두가 매력적이며 어느 순간 읽는 재미에 빠져 책을 놓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무던히도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이 책의 더한 매력들이 궁금하다면 여기에 시선을 주목해보는 게 어떨까.

강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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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jriver@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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