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에 마음을 두는 방법
아름다운 것에 마음을 두는 방법
  • 조원진 작가
  • 승인 2021.03.23 11:38
  • 호수 14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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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커피를 공부하는 마음가짐

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크게 두 가지의 질문을 듣는다. 첫 번째는 그림을 그렇게 잘 그렸는지 반신반의하며 묻는 것과 같은 누구나 쉽게 오해해서 하는 질문들이다. 자대배치를 받고 나서 미학과 출신이라고 부대의 벽화작업을 명받을 뻔했던 것이 대표적인 일화다. 두 번째 질문 그룹은 조금 더 심오한 편이다. 도대체 예술작품은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묻는 것이다. 이는 내 전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모름지기 대학 생활을 열심히 했다면 각종 이론을 섞어가며 유식한 답변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학 생활 내내 베짱이처럼 커피만 마셔대느라 전공 서적에는 먼지만 쌓여 좀처럼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 조금씩 융통성 있는 답변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졸업 후 한참이 지났을 때다. 미학과를 나온 덕분에 예술계에 종사하고 있는 선배들의 은덕을 받아 미술관과 박물관, 공연장을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을 마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이다. 작품 앞에서 어떤 이야기도 들을 준비가 됐을 때 작품은 비로소 나에게 말을 걸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작품과 마주하고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취향이 생기게 된다. 취향이 생기니 어렵게만 느껴졌던 전공 서적도 가끔 열어볼 수 있었다. 아직도 그 옛날 철학자들이 왜 그리 어려운 말로 ‘예술작품을 만난 감동의 순간’을 설명하려 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지러운 세상에 아름다운 것을 마음에 두고 나니 하루를 더 즐겁게 마주할 수 있었다.

▲ 창가에 놓인 커피 한 잔
▲ 창가에 놓인 커피 한 잔

커피를 좋아한다고 하니 사람들은 어떻게 커피의 맛을 기억하고 평가하는지 묻는다. 그러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커피 덕후인 나는 예술작품에 마음을 여는 것처럼 커피에도 마음을 열어두는 것이 좋다고 답한다. 커피에 마음을 열어둔다는 것은 커피를 마시는 행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가령 마신 커피에 대해 느낀 바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일은 내 취향에 맞는 커피를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이 될 수 있다. 익숙한 단어들로 그날 내가 느꼈던 커피에 대한 감상을 기록하는 것이다. 다양한 상황에서 마주한 한 잔을 기억하고 그 커피의 기억을 바탕으로 또 다른 한 잔을 마시는 일은 커피가 가진 아름다움을 깨닫는 방법의 하나다.


커피를 공부하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많은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던 해외 커피 서적도 잘 번역돼 유통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쉽게 커피를 공부할 수 있다.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을 강조하는 스페셜티 커피 시대(커피 제3의 물결)가 도래한 이래,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커피 이론들이 체계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커피 플레이버 휠(Coffee Taster’s Flavor Whee)이다. 1990년대 말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A)’의 회장이었던 테드 링글(Ted R. Lingle)이 개발한 것으로, 처음 탄생한 이후 약 20여 년간 커피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향미가 커피 인들의 언어로 발전해왔다. 플레이버 휠에 나와 있는 향미들은 아로마 키트로 제작돼 직접 향을 맡아볼 수도 있다. 어떤 학문이든 그것의 언어를 습득하는 일은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인데 플레이버 휠을 기억하는 일은 커피를 알아 가는 데 있어 큰 자산이 된다.


미학과를 졸업했다는 사실과 커피를 좋아한다고 얘기하면 듣는 공통적인 질문이 또 하나 있다. 그것들의 쓸모에 관한 질문이다. 미학과를 졸업하면 어떤 곳에 취직할 수 있는지, 커피를 좋아하고 공부하면 카페를 열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되묻는다. 아름다운 것을 마음에 두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지,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것만큼 인생에 또 필요한 것이 있는지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전공 수업 때는 귀담아듣지 않았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좇는 데 힘을 쏟는다. 무엇인가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기엔 아직 마시지 못한 커피 한 잔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조원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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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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