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하게, 레디, 옥션!-손이천 경매사
뻔뻔하게, 레디, 옥션!-손이천 경매사
  • 이소영 기자
  • 승인 2021.03.23 14:43
  • 호수 14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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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경매사 손이천(45)

 

Prologue
단상에서 최종 금액을 세 번 부른 후, 봉을 두드려 작품을 새로운 주인에게 인도하는 경매. 1억, 10억, 30억··· 그리고 낙찰. 점점 올라가는 가격에 뜨거워진 경매장 안에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경매를 진행하는 이가 있다. 한정적인 경매사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당당히 정상에 오른 손이천(45) 미술품 수석 경매사를 신사동 아트타워에서 만나 봤다.


▶ 자기소개 부탁한다.
미술품 수석 경매사이자 케이옥션 홍보 이사인 손이천이다.

 

▶ 신문방송학과에 진학 후 IT 기업에 취직했는데, 전공과 무관한 직종을 또다시 준비한 배경이 궁금하다.
엄밀히 말하면 무관하지 않다. 신문방송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마케팅 홍보 일을 하고 싶었고 졸업 후 자연스레 IT 회사의 마케팅팀으로 입사한 것이다. 하지만 생각했던 일과는 결이 다르다고 느껴 퇴사를 결정했다. 그 후 1년 정도 미국에 살면서 명화를 많이 봤는데 문득 미술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관련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 비교적 늦은 나이에 전공과 다른 분야를 다시 공부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
홍익대 미술대학원 예술기획학과에 입학했을 때가 32살이었다. 당시에는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하고 싶었기에 덜컥 공부를 시작했다. 나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라면 40세가 넘어서도 시도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다.

 

▶ 미술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고 경매 회사 홍보 담당으로 입사를 결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당시 나는 미술계의 이방인이었다. 그런 나에게 미술 경매 주류인 회사에서 제안이 온 건 하늘이 준 기회라고 느꼈다. 미술과 홍보 둘 다 할 수 있다는 매력에 끌렸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 홍보 담당으로 입사해 미술품 경매사의 길 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
경매사를 하려고 생각했던 적은 사실 없다. 케이옥션에 홍보 담당으로 입사했을 당시 대표 이사였던 수석 경매사분이 경매사 일을 추천해 주셨다. 일단 해 보자는 생각으로 연습을 시작했고 종국엔 미술품 경매사가 됐다.

 

▶ 경매회사 대표의 권유로 미술품 경매를 시작하게 됐는데 거부감은 없었나.
뭐든 두려움을 가지기 마련이지만 ‘한번 해 보고 안 되면 말지’라는 마인드로 임했다. 경매사가 경매장에서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기 때문에 트레이닝을 시작했을 때 중압감은 있었지만 ‘내가 못하면 회사에서 안 시키겠지’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다.

 

▶ 평소 동영상을 보며 경매를 공부하는 것으로 아는데 동영상 공부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 있나.
해외든 국내든 마찬가지로 경매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는 경매사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선임 경매사의 조언을 받는 도제식 교육 혹은 녹화 자료가 전부다. 혼자 호가 연습을 하고 동작을 따라 하며 경매를 익혔다.

 

▶ 직업을 바꾸면서 새롭게 생긴 습관이 있나.
경매가 한 번 진행되면 끊임없이 얘기해야 한다.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목과 체력 관리를 열심히 하게 됐다. 또한 경매는 연습 무대가 없어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최선의 퍼포먼스를 위해 꾸준히 몸을 관리한 덕인지 12년 차인 지금도 문제가 생겨 경매에 서지 못한 적은 없다.

 

▶ 경매를 진행하면서 힘든 일은 없었나.
리허설은 많이 하지만 항상 예상 밖의 일이 발생하곤 한다. 최근에는 리허설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스크린이 네트워크 문제로 오류가 발생하는 일이 있었다. 고객들에게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지만 경매 흐름이 끊겨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 경매 도중 실수했을 때 본인만의 극복 방법이 있다면.
자잘한 숫자 실수를 가끔 하지만 최대한 줄이고자 많이 연습한다. 실수를 줄일 수 있는 건 결국 연습뿐이다. 그래도 실수했을 땐 빨리 잊는 게 중요하다. 굴하지 않고 당장 직면한 일에 집중하는 뻔뻔함이 필요한 것 같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경매품은 무엇인가.
우선 당시 최고가 65억5천의 기록을 경신한 김환기의 <고요>가 떠오른다. 또한 국가 지정 보물이었던 <퇴우 이 선생 진적첩> 작품과 낙찰률 100%를 기록했던 <전재국 미술품 컬렉션>이 아닐까 싶다.

 

▶ 직업상 미술관이 직장이다 보니 힐링 공간이라는 인식과는 멀 것 같다. 주로 힐링하는 장소는.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다 보니 일과 여가 생활의 경계가 없어진 건 맞다. 하지만 회사에 걸려있는 작품을 보며 힐링하기도 한다. 경매 작품은 아무래도 한정적이라 시립미술관 같은 큰 전시를 찾아 볼 때도 있다.

 

▶ 경매가 매일 열리지는 않는데 그 외의 여가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경매가 없는 날엔 다른 여느 직장인과 똑같이 일한다. 쉴 때는 미술이나 경제를 공부하며 다양한 시야를 가지기 위해 시간을 쓰는 편이다.

 

▶ 이직하고 싶을 때는 없었나. 
한 번도 이직을 생각한 적 없다. 이 일이 재밌고 할 수 있을 때까진 하고 싶다. 타 경매 회사에 대한 궁금증은 있었지만 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 봤다. 아직은 우리 회사가 좋고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어서 즐겁다.

 

▶ 본인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인간. 다들 말하기는 미술품 경매사. 사실 추상적인 것을 깊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라 인간이자 미술품 경매사 손이천이라는 수식어만 떠오른다.

 

▶ [공/통/질/문]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은.
멋짐. 항상 멋졌으면 좋겠다. 스스로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가꿔 나가고 있고 이 단어를 붙였을 때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청년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 이 기사를 읽는 독자층은 대부분 늦었다고 생각할 나이가 아닐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뭐든 해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 인스턴트 줄이고 라면 세 번 먹을 거 한 번 먹기!

Epilogue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그가 말하는 인생에서 당당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당당함의 원천은 후회 없는 도전으로부터. 이미 정해질 건 다 정해졌다고 생각하며 망설였던 것들을 지금이라도 당장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린 아직 젊기에.

이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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