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문화에 대한 단상
요즘 한국문화에 대한 단상
  • 주재형(철학) 교수
  • 승인 2021.03.23 15:51
  • 호수 14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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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형(철학) 교수
주재형(철학) 교수

 

누구나 오늘날 한국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영화에서는 작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부문을 석권한 데 이어, 얼마 전에는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작품 <미나리>가 5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됐다.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로 대표되는 케이팝은 명실상부 전 세계적인 트렌드이고, 그 밖에도 축구의 손흥민과 같이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얻은 한국문화와 한국인의 리스트는 끝없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문화의 급부상이라는 현상에서 민족주의적 흥분을 걷어내면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한국문화의 몇몇 탁월한 성취들의 배후에는 그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한국인들의 삶이 있다. 사실 이러한 성취들은 이 무관한 보통 사람들의 막대한 희생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다. 왜인가?


한국이라는 나라가 매우 작은 나라라고 하지만 사실 한국은 경제적 규모가 이미 세계 10위권에 드는 대국이다. 이러한 규모가 가능한 것은 수도권 집중화 때문이다. 한국 영토의 절대적 크기는 작지만, 서울 및 수도권의 크기와 인구 밀집도는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수준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힘은 바로 이 유례없는 중앙집중화에서 온다.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온갖 방식으로 가차 없는 경쟁을 벌이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 것이다. 학창 시절의 가혹한 학력 경쟁을 경험하지 않은 한국인은 없으며 이를 통해 경쟁 체제의 정당성을 체화하게 된다. 경쟁 체제의 역설은 1등이 될 기회는 원칙적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1등은 사실상 언제나 단 한 사람뿐이라는 점에 있다. 모두에게 원칙적으로 열려 있는 성공과 신분 상승의 환상과 오직 1등만이 살아남는 가혹한 현실의 합주가 오늘날 한국 문화에 깔려 있는 배경음이 아닐까?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모두를 달리게 만드는 경쟁 체제의 경직성이 초래할 다양성의 부족을 우리 사회는 경쟁의 고삐를 한층 틀어쥐면서 돌파했던 것 같다. 급변하는 상황에 따라 어떠한 희생들도 감수하면서 경쟁의 기준과 방식을 재빠르게 바꿨던 것이다.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그럴싸한 명칭에는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경쟁화하는 우리 사회의 고달픈 경주의 가쁜 숨이 어렴풋이 서려 있다.


그렇게 나는 미디어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아이돌들을 볼 때면 그 배후에 남겨진 수많은 아이돌 지망생들의 눈물을 떠올리게 되고, 화제가 되는 한국 드라마들을 볼 때면 지금도 열악한 촬영 현장에서 밤을 지새우는 스텝들의 초췌한 삶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다는 달콤한 꿈이 단 한 사람의 승자만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씁쓸한 현실을 정당화하는 한, 한국문화는 아마도 달콤 씁쓰름한 성공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지속이 얼마나 위태로운 균형 위에 서 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낙관할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당장 비관적인 결론을 내리고 절망하지는 말자. 사회의 명암은 한 몸이고 모든 사회는 각자의 문제들을 안고 있기 마련이다. 한국문화에 두 번째 전성기 또는 진정한 전성기가 있다면 그것은 세계적인 성취들의 눈부신 빛 아래에 깊이 드리워진 어둠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줄여나갈 체제를 창안해낼 때 도래할 것이다. 우리는 아직 출발점에 서 있다. 그것이 내가 우리 동시대인들에게 건네는 당부이자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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