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의 그림자 속 온기 잃은 원주민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림자 속 온기 잃은 원주민
  • 조성건·신정연 기자
  • 승인 2021.03.23 14:43
  • 호수 14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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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문래동

Prologue
젠트리피케이션, 도심 곳곳에 다양한 핫플레이스가 생기는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상승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칭한다. 국토연구원이 2019년 7월에 발표한 단행본 『어느 동네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는가?』를 확인하면 서울시의 젠트리피케이션 위험 수준은 2015년 0.47%에서 2018년 1.25%로 약 3배 증가했고, 격차가 심한 구역의 경우 9배가량 증가했다. 이를 통해 서울시 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젠트리피케이션의 실상을 알고 싶어진 기자는 핫플레이스의 이면과 원주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서울 을지로와 문래동에 다녀왔다.

 

변화 속 을지로 노가리 골목
기자는 먼저 전자 산업의 메카이자 ‘힙스터’들의 성지로, 재개발을 준비 중인 을지로에 방문했다. 공구상부터 재개발 현장의 크레인까지. 을지로3가역을 빠져나오자 좁은 골목들과 그 사이를 가득 채운 가게들이 기자를 맞이했다. 그중에서도 을지로의 감성을 거론하며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노가리 골목’이다.
젊은 층이 을지로에 유입한 이유 중 하나는 이 노포의 매력 때문이다. 노가리 골목을 방문하니 옛 분위기와 요즘 감성이 어우러진 뉴트로 감성이 피어났다. 이곳의 매력은 원래 다양한 소규모 호프집이었으나, 기자가 본 노가리 골목은 프랜차이즈화된 체인점이 들어서면서 특유의 분위기를 잃어가고 있는 듯 했다. 이렇게 특색을 잃고 획일화돼 가고 있는 노가리 골목을 보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이렇게 젊음으로 물든 거리의 변화를 순응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노가리 골목에서 한 호프집을 운영하는 강호신(62) 씨는 “이것은 생각과 대처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다”라며 “젊은 사람들이 오는 걸 막을 수는 없으므로 기존 상인들이 변화하며 같이 발전해야 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그는 “서로가 노력하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할 방법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피할 수 없다면 변화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다만 변화에 휩쓸리기보단, 함께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떠날 수 없는 사람들
호프집을 나와 발걸음을 옮기자 바로 옆 골목에 밀집된 공구 유통상 가게가 보였다. 가게마다 붙은 ‘청계천 산업생태계 살려내라’, ‘소상공인 죽어간다!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청계천 을지로 재개발 사업 반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이를 보고 주변에서 태형공구를 운영 중인 권석준(55) 씨를 만나 조심스레 상황을 물었다.

그는 “정부가 50여 년 동안 형성된 여러 사업과 상가들을 한순간에 없애 버리려고 한다”며 “해당 개발에 근본적인 문제는 기존 상인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호소했다. 또한 그는 “노점상이 있어야 공구상이 사는 것처럼 이곳에 사업들은 모두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연계된 사업들을 하나씩 없애 버리면 여기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이들이 떠날 수 없는 사연을 설명했다. 실제로 기자가 본 을지로 일대는 모두가 하나의 공장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서로 찢어질 수 없고, 누구 하나 떠날 수 없는 그들의 사정이 비로소 이해됐다.

가게를 나와 세운상가, 청계상가 쪽으로 이동하니제조업 기술자들의 거리를 볼 수 있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목엔 공사장과 재개발 반대의 절실한 목소리가 담긴 슬로건이 걸려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 기자는 직접 알아보기 위해 슬로건의 출처를 찾았고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이하 보존연대) 안근철(38) 활동가를 온라인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예술가, 연구자, 문화기획자 등으로 구성된 보존연대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의 입정동 구역을 핵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해당 재개발로 인한 상인 및 주민들의 피해를 묻자 안 활동가는 생활 터전과 일터를 잃게 되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같은 구역 안에서 1~2단계 산업들이 뭉쳐져 있는 이곳은 개별적으로 찢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실제로 철거면 지역의 상인이 신도림으로 이사 갔으나 작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이곳에 매주 방문한다”는 고충을 털어놨다. 

서울시 측에서는 대책 수립과정을 상인 면담으로 진행했다고 했지만, 해당 자리는 상호 간의 의견을 듣기보단 서울시의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였을 뿐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기자는 상인들의 입장이 배제된 채 소통하려 했던 것 같아 안타까웠다.


새로운 문래동, 새로운 문제점
을지로 방문 후 또 다른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하며 젠트리피케이션의 온상지가 된 문래동을 방문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문래역으로 이동했다. 문래역 2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여러 조형물이 기자의 시선을 끌었고, 조금 더 걸어 골목에 들어가니 수많은 철공소와 건물 곳곳에 그려진 그림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 벽화 그림이 그려진 골목 하나를 두고 용접 불꽃이 튀는 철강공장과 감성 카페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은 이질감보다는 묘하게 하나돼 어우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철공소와 예술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조합으로 새롭게 탈바꿈한 문래동은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자 많은 사람이 찾게 됐고 거리 또한 활기를 띠며 모든 것이 좋아진 듯했다. 하지만 너무 짧은 기간에 바뀐 것이 문제였을까, 문래동 사람들의 속 사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문래동에서 철강소를 30년간 운영했다는 이승길(가명·65) 씨는 “작업 중에 찰칵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방문객들이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찍고 있었다”며 초상권 침해와 작업 중 재해 발생 위험을 우려했다. 또한 “관광객이 가게 앞에 버린 쓰레기를 청소하는 것으로 하루의 시작과 끝을 낸다”며 방문객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했다. 실제로 거리 곳곳에는 일회용품과 쇼핑백 등 무단으로 버려진 쓰레기가 쌓여있었고 철강소 벽에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강경한 경고문 문구에서 그동안의 그들의 노고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문래동에서 백반집을 운영 중인 이은숙(42) 씨는 또 다른 문제점으로 “방문객은 늘었지만, 대부분의 방문객은 기존 문래동 식당이 아닌 새로 생긴 카페나 음식점을 찾는다”며 “오히려 매출이 이전보다 줄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렇게 매출은 줄었지만, 방문객이 많아지자 급격히 오른 건물 임대료와 없던 권리금까지 생겼다”며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보였다. 오랫동안 지켜온 보금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나가게 된다고 생각하니 기자는 숙연해졌다.

넓어진 문화의 문래동, 좁아진 그들의 입지
문래동은 일제 강점기 때 방직 공장이 들어서면서 유입된 방직 기계를 ‘물래’라고 부른 데에서 유래됐다. 이후 50여 년간 철공소가 자리 잡고 철강 산업이 활성화됐지만 2000년대 초부터 철강 산업의 기계화로 하락세를 탄 일부 철강공장이 이전하자, 그 빈자리에 저렴한 작업공간을 찾던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모여 들며 지금의 문래창작촌이 형성됐다.

문래동에서 작업실을 운영 중인 예술가 최라윤(51) 씨는 주변 철강소에서 나온 찌꺼기들을 이용해 개인전을 열었는데, 주변의 철강소라는 특수한 공간을 활용해 문래동만의 색깔을 나타낸 것에 기자는 신기하면서도 예술의 조화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는 “7년 전 주변이 철공소로 이뤄져 있어 월세가 저렴한 문래동에 작업실을 구했지만, 문래동이 급부상하면서 임대료가 많이 올라 전시 공간 공연을 진행할 수 없게 됐다”며 앞으로의 예술 활동을 걱정했다. 다른 곳에서 높아진 임대료를 피해 이곳에 왔지만, 이곳 역시 임대료가 상승해 예술가들이 다시 다른 곳으로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예술가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며 문래창작촌의 영역이 더 넓어졌지만, 예술가의 입지는 훨씬 줄어들었다”며 쓴웃음을 보였다.

인터뷰를 마친 후 문래동을 돌아다니면서 철강소와 그 주변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는 서로 상생하기 위해 노력했던 결과물로 비쳤으며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그 결과물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애정을 갖고 발전시킨 동네를 뒤로한 채 쫓겨나듯 떠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섰다. 집으로 가는 길 기자는 넓어져 가는 문래동과 좁아져 가는 문래동 사람들의 모순된 상황에 답답함을 느꼈다. 

 

Epilogue
을지로와 문래동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에선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우리 대학 김현수(도시계획)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자연스러운 변화로, 과하면 부작용이겠지만 전무하면 재생의 효과가 없다”며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속도를 늦추고 의사 결정을 주민들에게 맡기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갑작스러운 도시재생사업의 경우 지가와 임대료 상승이 불가피하므로 단계적 재생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을 억제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정부 및 각 지자체와 기관들은 낙후된 지역의 소상공인들을 위해 도시재생사업과 상권을 활성화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도시재생이 시작되면 소상공인의 피해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 많은 자본과 다른 자영업자들이 유입될 우려가 있다. 소상공인을 살리기 위한 사업이 오히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불러와 이들을 거리로 내몰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도시 개발의 불가피한 과정으로 볼 수 있지만, 직면하고 있는 당사자에게 이 문제는 생계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기에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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