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줄 모르는 개구리
어쩔 줄 모르는 개구리
  • 고혜주 기자
  • 승인 2021.05.04 13:17
  • 호수 14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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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주 문화부장

우리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교육을 거치며 많은 것을 배워왔고, 배우고 있다. 그러나 지식을 갖춰도 어쩔 줄 모르겠는 순간들은 찾아온다. 한번 그 깊은 우물에 빠지면 초조하고 답답한 마음에 점점 아래로 끌려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물에 빠져 죽을 수는 없다.


평소 기자는 흑백으로 확실하게 나뉘는 명쾌한 답을 좋아한다. 무슨 일이든 답을 내리려고 하는 습관은 이미 고질적인 병이다. 그런 점에서 마음에도 등이 달려있다면 기자는 본지 12면을 취재한 한 달 동안 땀띠가 날 정도로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총 다섯 곳의 장소를 방문하며 노숙인에 대해 다섯 개가 넘는 문제를 직면했고 가족과 친구의 외면, 제도적 구멍, 무너진 자존감 등 어느 하나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속에서 기자는 노숙인 문제에 대한 답을 갈구하게 됐다.


갈구의 계기는 서울시립 여성 보호센터에서 가족 찾기 활동에 대해 들었을 때다. 시설 이용자 중 가족의 소재지를 찾은 경우 시설에서 연락을 취하지만 가족들이 그와 관련된 소식을 거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어이없음, 그다음에는 분노와 답답함을 느꼈다. 이 감정은 그대로 용산역 텐트촌으로 이어졌다. 겨우 용기를 내 텐트촌의 남성에게 말을 건넸지만 정중하게 거절당했다. 기자임에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담을 수 없었다. 기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숙인의 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게 됐지만 기자 스스로 이 취재 끝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점점 미궁에 빠졌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는 아프지만 기자 혼자서 무엇을 한다고 달라지기도 힘든 지식을 갖췄음에도 어쩔 줄 모르겠는 상황. 기사를 쓰면서도 손이 잘 움직이질 않았다. 무언가 부족했다.


그러다 문득 기자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담의 의미와 달리 그저 답답한 마음에 떠오른 말이었지만 그 의미를 떠올려보니 문제점에 대해 알고 있고 해결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오만이란 걸 깨닫게 됐다. 그 뒤에는 취재 자료를 찬찬히 다시 읽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숙인 문제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 걸음 다가섰다. 수천만이 사는 사회를 혼자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직시함과 동시에 이런 기자라도 주변인에게 도움을 청하고 함께 생각해보자고 부탁할 수는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또 그 사람들이 주변에 묻고 물어 언젠가 천 명이 되고 만 명이 된다면 그때는 원하는 결말을 찾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기자는 개구리일지언정 우물 벽을 타고 올라갈 것이다. 그곳에 원하는 답이 있기에.

고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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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atle1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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