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의 집은 OO역입니다.”
“오늘 저의 집은 OO역입니다.”
  • 고혜주·이유진·임수하 기자
  • 승인 2021.05.04 13:58
  • 호수 14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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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Prologue
의식주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생존과 안전을 넘어 소유자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는 울타리다. 그러나 그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바로 노숙인, 홈리스(Homeless)다. 집에 대한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는 요즘, 집(Home)뿐만 아니라 먹을 것, 입을 것, 사회적 유대마저 결여된(Less)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본지는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 요소도 마련하지 못한 이들을 이끌어줄 방법은 없는 것인지, 노숙인이 처한 상황과 우리 사회의 태도를 담기 위해 취재에 나섰다.

 

누구도 선택하지 않을 삶
기자는 먼저 「2018 서울시 노숙인 실태조사」를 통해 노숙인의 79%가 노숙인 시설에서 지낸다는 것을 파악했다. 이에 바로 관련 기관을 찾았고, ‘서울시립 여성 보호센터’(이하 보호센터)로 향했다. 붉은 벽돌로 쌓아진 보호센터의 외관은 견고해 마치 그 안의 사람들을 지키는 요새 같았다. 보호센터에 들어가서는 복지지원과 권태완(45) 과장의 안내를 받아 그에게 노숙인 시설에 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보호센터는 질병 치료에 중점을 둔 요양 시설로,  현재 360여 명 정도의 여성 노숙인들이 살고 있다. 권 과장은 “요양 시설 특성상 입소자의 90% 이상이 정신 질환을 갖고 있다”며 입소자가 시설로 오게 되는 경로에 대해서는 “주로 가족의 방치 혹은 부모의 죽음으로 홀로 남겨지는 상황에 부닥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호센터는 노숙인들을 위한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입소자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은 사회적 기능 회복 사업으로, 입소자들의 참여도가 가장 높았다. 이는 버스 이용, 물건 구매, 타인과 관계 맺는 법과 같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가족에게 버려지거나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이들이 사회와 어울려 지내도록 돕는 활동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이다.


권 과장은 “노숙을 원해서 하는 사람은 없으며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도 노숙인의 삶을 선택하진 않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다른 복지 대상보다 노숙인 문제의 책임은 개인에게만 돌리는 인식이 크다”며 그런 인식이 변화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시설을 나가자 마당을 쓸던 직원들이 밝게 인사를 건넸다. 그 위 ‘꿈과 희망을 펼치자’라는 간판은 활기차고 따뜻한 시설 분위기를 대변하는 듯했다.

 

따뜻한 마음을 전하다

▲ 따뜻한 밥을 위해 찾아 온 300여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보호센터와 같이 노숙인을 위한 시설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거리에 남아있는 노숙인도 적지 않다. 시설 입소자와 달리 하루 한 끼를 해결하기도 마땅치 않은 그들은 궂은 환경에 그대로 노출돼 생활하고 있었다. 때마침 한마음운동본부에서 급식 사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기자는 명동밥집을 찾아갔다. 명동성당 앞 오렌지색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걸어가니 전 계성여고 학생 식당 자리에 있는 명동밥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후 2시, 도시락이 운동장에서 트럭을 통해 전달됐고 식당에서는 국을 데우며 배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2시 반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안내에 따라 거리두기를 유지한 채 질서정연하게 줄을 섰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스피커로 노숙인들을 반기는 환영 인사가 울렸다. 동시에 길게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빠르게 도시락을 받아 나갔고, 30분도 지나지 않아 모두 315개의 도시락이 전달됐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도시락을 보며 그들에게 이 한 끼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 도시락을 주고 받고 있는 명동밥집 모습
▲ 도시락을 주고 받고 있는 명동밥집 모습

명동밥집 센터장 백광진(62) 신부는 “눈치 보지 않고 존중받으며 배불리 먹는 공간을 마련해보자는 취지로 명동밥집을 준비했다”며 “남은 도시락은 남대문이나 서울역에 직접 방문해 거리 노숙인에게 전달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따뜻한 식사를 받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들어올 때보다 힘차 보였다.


웃는 얼굴로 명동밥집 이용자들을 배웅하던 자원봉사자 선덕님(67) 씨는 “노숙인 중에는 정신과 약을 복용해 무기력한 경우가 많다”며 “힘든 와중에도 멀리까지 와 식사하는 게 오히려 고맙다”고 이용자들에 대한 마음을 드러냈다.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서로 고마움을 느끼는 순수한 순간을 기자는 함께 할 수 있었다.

 

거리에 머무는 그들의 삶을 방문하다
명동밥집에서 나온 기자는 거리 노숙인이 많이 모여있기로 유명한 서울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른 오후에 방문한 서울역은 노숙인 대신 ‘노숙을 금지한다’는 현수막만 걸려 있었다. 이어 서울역 광장으로 나가보니 컨테이너형의 노숙인 지원센터를 볼 수 있었다.


노숙인 지원센터는 핫팩이나 옷을 나눠주는 등의 구조 지원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주변에서 노숙인들은 추위를 막기 위해 상자와 비닐로 모양을 잡고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둘둘 만 비닐 침낭에 상자로 된 벽, 엉성하지만 그곳이 그들의 하나뿐인 집이었다. 조금 더 걸어 서울역 구청사 쪽으로 향하자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실제 노숙인들은 주민등록증 말소와 스마트폰의 부재로 검사를 받기 쉽지 않다. 검사소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쉽게 검사를 받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 잠자리를 펴고 있는 서울역 노숙인
▲ 잠자리를 펴고 있는 서울역 노숙인

해가 저물고 나니 남대문으로 향하는 지하 통로에 노숙인들이 자리를 펴기 시작했다. 오후 7시도 안 돼서 긴 통로의 양옆은 자리를 잡은 노숙인들로 채워졌다. 다수는 조용히 휴식을 취했으나 일부는 음주와 흡연을 하며 소리를 질러 그 모습이 다소 위협적으로 보였다. 통로를 이용하는 시민들도 정면만을 응시한 채 누가 말을 붙일세라 빠르게 지나쳤다. 일부 노숙인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 노숙인 전체의 이미지를 악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 이른 저녁 휴식을 취하는 서울역 노숙인들과 지나가는 행인들
▲ 이른 저녁 휴식을 취하는 서울역 노숙인들과 지나가는 행인들

다음날엔 노숙인 텐트촌이 있는 용산역으로 향했다. 3번 출구의 다리를 건너자 창문 너머로 화려한 건물들과 대비되는 엉성한 텐트들이 보였다. 텐트 외에도 상자로 지어놓은 집과 이불을 말리고 있는 빨랫줄, 텃밭 등 손수 만들어낸 생활 터전은 그들이 살아가고자 한 흔적이었다. 걸음을 재촉해 다리를 내려갔지만, 텐트촌의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덤불을 헤치며 바깥쪽으로 돌아갔으나 안쪽은 쇠막대와 낚싯줄로 만들어진 울타리가 외부인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텐트 앞 철조망에 서 있길 잠시, 한쪽 구석에서 머리를 말끔하게 묶은 남성 노숙인이 보수 도구를 들고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서울역의 날 선 노숙인이 생각나 얼떨결에 눈을 피했지만, 이내 큰 소리로 기자를 소개하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자의 걱정과 달리 그는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없다”며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그는 결코 기자를 무시하지 않고 정중히 거절했으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에 기자와 그의 마음 사이에도 커다란 철조망이 존재하는 듯했다. 그 후 다른 노숙인들을 기다렸지만, 마지막까지 그들은 텐트에서 나오지 않았다.

▲ 다리 위에서 내려 본 텐트촌
▲ 다리 위에서 내려 본 텐트촌

 

해결되지 않는 문제와 관계
그렇다면 사회는 과연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앞서 여러 곳에서 노숙인의 삶을 지켜봤지만 명확하게 결론지을 수 없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숙인들의 인권 침해와 권리 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홈리스행동을 찾아갔다.


남영역에서 서울 용산 경찰서 쪽으로 굽이굽이 골목길을 지나가니 아담한 저택에 위치한 홈리스행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실내에는 그간 홈리스행동에서 진행해온 활동들의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그중 ‘나는 가난하지만, 차별과 멸시는 거부한다!’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노숙인을 위한 여러 활동을 읽어보던 중 홈리스행동 안형진(36) 활동가가 나와 기자를 맞이했다.


포스터의 문구를 떠올리며 노숙인들이 받는 차별에 관해 물어보니 안 활동가는 “제도적 차별이 가장 심각하다”며 “다른 생활보장대상자는 지정 병원 제한이 1999년에 풀렸음에도 여전히 노숙인들만이 정해진 병원만 이용해야 한다”는 불합리한 상황을 비판했다.


또한 그는 “노숙인 복지는 지방이양사업으로 현재 지자체별로 운영 중이기에 자칫 지자체로의 책임 전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피부암 말기였던 노숙인이 부산에서 치료를 거절당해 서울로 이송됐으나 서울에서는 부산시민이라는 이유로 치료를 거부했다. 이에 그는 “중앙정부가 분명한 역할을 정하고 총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치 제 일인 것처럼 가슴 깊이 안타까워하는 그의 모습에 기자는 한 번도 노숙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동안의 안일함이 와닿았다.

 

Epilogue
보건복지부의 「2016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설 노숙인은 질병과 장애, 거리 노숙인은 실직이나 사업 실패를 계기로 노숙인이 된 경우가 많다. 노숙인이 되고자 노숙 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풍파로 사회 밖으로 내몰린 이들에게 우리는 너무 무정한 것이 아닐까. 노숙인 역시 사람이기에 그들을 알아봐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잠재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작은 관심이 불러올 변화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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