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입막음 수단인가 피해자 보호인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입막음 수단인가 피해자 보호인가
  • 신정연 기자
  • 승인 2021.05.04 13:52
  • 호수 148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7.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출처: 미디어오늘
출처: 미디어오늘

 

● [View 1] 학교폭력 피해자 A 씨
나는 중학교 시절 따돌림과 금품갈취까지 겪었던 학교폭력 피해자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가해자를 피하고자 다른 지역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점차 무뎌질 때쯤 가해자 중 한 명이 대중매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됐다.


학교폭력에 대해 사과받고 싶었던 나는 인터넷에 해당 사실을 올렸고, 가해자에겐 수많은 해명 요구가 빗발쳤다. 그는 사과문을 게시했으나 몇 주 후 아무런 이유 없이 삭제됐으며, 나에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고소장이 통지됐다. 결국 나는 벌금을 물게 됐고, 가해자에게 도리어 사과하며 합의를 해야 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공공의 이익에 관해서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으나, 공익성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애매하다고 느꼈다. 나에게 고소장이 접수된 후 조치를 취하기 위해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니 동물병원에서 치료받은 반려견이 실명 위기에 놓이자 견주가 수의사의 본명을 SNS에 공개하려 했던 사건을 접하게 됐다. 견주는 해당 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며 2017년 헌법소원을 냈다. 이렇듯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문제 공론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피해자를 도리어 가해자로 만들 수 있는 법안은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다.

 

● [View 2] 기자 B 씨
본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목적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이를 폐지하는 것은 피해자를 법의 테두리 밖으로 밀어내는 것일 수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온라인 공간에서 성범죄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성 발언을 처벌할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 전 공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한 피해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미투 직후 인터넷에는 피해자의 품행을 폄하하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허위사실이 다수였으나 그중에는 사건과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피해자의 실제 사생활도 담겨 있었다. 악성 폭로 글을 피해자가 일일이 찾아내 삭제 요청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그들의 행위 중단을 유도하기 위해 피해자는 형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수사 결과, 악성 폭로를 남긴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근거로 처벌받아 그 죗값을 치를 수 있었다.


해당 법안에 대한 헌법소원 재판을 취재했을 때, 헌법재판소에서는 “전부 위헌으로 결정한다면 (중략) 어떠한 사실이 진실에 부합하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성적 지향·가정사 등 사생활 비밀이 침해될 수 있는 점”을 공시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범죄 피해자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사실 적시나 차별 표현을 대응할 수단으로서 필요한 것이다.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Report] 
지난 2월 헌법재판소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위헌이라고 제기한 `표현의 자유 침해' 헌법소원 재판에 대해 재판관 5대 4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의하면 사실을 공표해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형사상 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


해당 법안의 부작용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형법 제310조에 따라 보완이 가능하다. 실제 한 성형외과가 인터넷에 부정적인 후기를 게시한 소비자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지만, 정보 공유가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므로 무혐의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런 공익성의 범위를 일반인이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다수 거론됐다.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피해자를 2차 가해로부터 보호하고자 한다면 새로 법안을 만들거나 구성요건을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 적시’로만 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자체를 악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약이며 본래 목적은 어디까지나 피해자 및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법안의 본질을 잊고 악용하는 것이 문제인 동시에 이는 그만큼 허점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섣부른 판단은 독이 될 수 있으므로 개선점 또는 대안을 충분히 고려하는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신정연 기자
신정연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jy34@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