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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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형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04 13:25
  • 호수 14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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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임마누엘 칸트·존 스튜어트 밀
▲ 함께 고난과 어려움을 헤쳐나가게 될 결혼
▲ 함께 고난과 어려움을 헤쳐나가게 될 결혼

지난 1일, 그러니까 이 원고가 연회색의 신문용지에 찍혀 나오기 며칠 전쯤에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열릴 것이다. 친구는 아마 그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식장에 들어서겠지. “검은 머리가 파 뿌리” 같은 주례사가 끝난 뒤 나는 고심했지만, 전날 급히 적은 축사를 어버버 더듬대며 두 사람 앞에서 낭독할 테고.


예전엔 몰랐는데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는 건 꽤 어렵고, 힘들고, 또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서로가 사랑한다는 감정을 갖기 쉽지 않다는 뻔한 사실은 둘째 치더라도, 평생 이 사람만을 사랑하리라는 확신을 하기도, 행복에 비례해 늘어날 고난과 어려움도 함께 헤쳐나가야 함을 인정하기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뿐일까. 생판 남이었던 상대방의 부모·형제와 평생의 ‘가족’이 돼야 하며, 채 한 시간이 되지 않는 행사를 치르기 위해 수십, 수백 명을 만나 청첩장을 전해야 하고,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으로 대표되는 고난과 역경의 과정도 거쳐야 한다. 행복은 어쩌면 그렇게 쌓아 올린 관계와 고난 속에서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철학자들이야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많았으니 결혼을 하기도, 또 설령 결혼하더라도 행복하게 살기가 참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락방의 철학자 스피노자부터 서양 철학의 완성이라 불리는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 니체, 쇼펜하우어 등 독신들이 차고 넘쳤다. 그중 가장 ‘철학자답게’ 결혼하지 못한 예가 바로 임마누엘 칸트다. 어느 날, 그에게 어느 여인이 그와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넌지시 밝혀 왔다. 청혼을 받은 거다. 신중한 성격이었던 칸트는 그때부터 결혼하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결혼해서 좋은 점은 354가지를, 나쁜 점은 350가지를 발견했다나. 좋은 점이 4가지 더 많으니 청혼을 수락하려 했지만, 이미 그녀는 다른 사람의 배필이 돼 있었다. 지나치게 꼼꼼했던 탓에 7년 동안 고민한 결과였다.


왠지 결혼을 못 하고, 안 해야 할 이유만 잔뜩 이야기한 것 같지만, 서로의 관계 안에서 행복을 찾은 경우도 적지 않다. 존 스튜어트 밀은 스물네 살 되던 해에 자신의 사랑을 발견했다. 상대방의 이름은 해리엇 테일러. 결혼 4년 차에 두 아이를 둔 유부녀이자 밀의 친구인 존 테일러의 부인이었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20년이 넘도록 교감을 이어갔다. 당연히 세상은 시끄러웠다. 그리고 존 테일러가 죽은 뒤인 1851년 4월,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온 그녀의 두 아이가 증인으로 선 가운데 말이다.

 

아내가 병으로 급사해 결혼 생활은 약 7년으로 끝이 났지만, 밀은 평생 그녀를 아끼고, 존경하고, 사랑했다. 자신의 대표작 『자유론』이 두 사람의 합작품이라고 공언했으며, 그녀를 ‘칼라일보다 훌륭한 시인이요, 나보다 뛰어난 사상가, 내 생애의 영광이며 으뜸가는 축복, 내게 하나의 종교이자 가치의 근본이며, 내 생활을 이끌어 가는 표준’이라고 묘사했다. 결혼을 포함한 모든 ‘관계’ 속 문제는 그 제도의 불합리성이 아닌 그 제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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