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의 향기
모란의 향기
  • 장두식(자유교양대학) 교수
  • 승인 2021.05.04 14:01
  • 호수 148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두식(자유교양대학) 교수
장두식(자유교양대학) 교수

서촌 홍건익 가옥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백모란이 지고 있다. 봄의 절정도 다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모란을 보며 ‘찬란한 슬픔의 봄’을 떠올리지 않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고등학생 정도면 김영랑의 시 「모란이 필 때까지는」을 다 외우지는 못하더라도 몇몇 구절은 외우고 있을 것이다. 봄빛에 환하게 빛나는 백모란을 열심히 사진에 담고 있는데 가옥을 방문한 누군가가 소복 입은 젊은 청상 같아서 애처롭다고 말했다. 모란에 대한 영랑의 슬픔이 이제는 보편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들은 ‘모란’하면 향기가 없는 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선덕여왕의 일화 때문이다. 신라 진평왕 때 당 태종이 보낸 모란 그림을 보고 벌 나비를 그리지 않았으니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는 덕만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많은 아동서적에 실려 있다. 당 태종이 그림과 함께 보내온 모란 종자를 심어 보니 과연 향기가 없더라는 이야기를 통해 한반도 최초의 여왕이었던 선덕여왕의 지혜로움에 감탄을 하게 된다. 이 일화가 너무나 강렬해 사람들은 모란은 아름답지만 향기가 없는 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란은 향기를 가진 꽃이다. 그것도 매우 강한 향기를 가지고 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우리들은 화려하게 피어난 모란을 보며 감동을 한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 펴 있는 모란 때문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선험적으로 형성돼 있는 모란 이미지 때문에 감동하는 것이 아닐까? 모란이 향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 봤던 사람들은 당연히 이러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일야구도하기」(『열하일기』)에서 우리의 감각기관은 외물에 의해서 지배를 받기 때문에 마음을 통해서 이를 통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도 타인들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외물들이 들어차 있다. 모란에서 슬픔을 느끼거나 모란이 향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 들어 가짜뉴스가 화두가 되고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되면 진실이 실종돼 버린다. 매일매일 인터넷과 대중매체가 쏟아놓은 수많은 정보와 근거 없이 떠도는 소문들 때문에 우리들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내부에는 모란을 보고 있으나 모란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패러독스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혼탁한 우리 시대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대중가요 ‘테스형’이 소환했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가 제자들에게 상투적으로 인용했다는 “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가 우리들의 비판력과 통찰력을 키워줄 가르침이 될 수 있다. 화왕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모란은 정말 아름다운 꽃이다. 그 아름다움은 ‘찬란한 슬픔’ 때문일 수도 있고 선덕여왕의 지혜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은 모란에 대한 단편적인 내러티브일 뿐이다. 이러한 내러티브를 걷어내야 ‘찐 모란’을 만날 수 있다. 우리 시대 사실들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야 하는 것으로 점점 변질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