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을 잠시 멈춘 시간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춘 시간
  • 이은솔 기자
  • 승인 2021.05.18 13:39
  • 호수 148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9. 템플스테이

방에서 바라본 창밖은 파란 하늘과 따듯한 햇살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매일 쌓이는 강의와 과제에 시간을 뺏기곤 한다. 다가오는 기말고사 날짜를 달력에 표시하던 중 빨간색으로 적혀진 석가탄신일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 정도는 여유롭게 날씨와 자연을 즐기고 싶던 기자는 요즘 유행하는 템플스테이를 통해 오늘 하루를 잠시 멈춰보기로 했다. 


템플스테이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쉽게 예약할 수 있었다. 기자는 당일형 프로그램이 있는 수국사를 선택했다. 다양한 활동이 매우 알차 보여 부푼 마음으로 예약하기를 눌렀다. 집 근처 공덕역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인 수국사는 산 초입에 위치해 정류장에서 편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 사찰 입구에 다다르자 형형색색의 연등과 풀숲이 어우러져 고즈넉함을 뽐냈다. 사찰에 도착해 법복으로 갈아입은 뒤에는 스님을 기다렸다. 회색 법복을 입고 절에 앉아있으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 황금사원이라고 불리는 수국사 대웅전의 모습
▲ 황금사원이라고 불리는 수국사 대웅전의 모습

때마침 제월스님이 들어오고 함께 사찰 주변을 돌며 수국사의 역사를 배우는 것으로 활동이 시작됐다. 스님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어쩔 수 없는 지루함이 몰려왔지만, 갑작스러운 스님의 가상화폐 이야기에 다시금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님은 불경에 대해서만 논하리라 생각했던 기자의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걸음을 옮겨 도착한 나한전이라는 곳에선 부처의 제자인 아라한에 관한 설명을 듣고 짧은 명상 시간을 가졌다. 눈을 감고 벽에 등을 기대자, 새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평소 쉽게 들을 수 없던 소리에 집중하며 머릿속에 자연을 가득 그렸다.

▲ 부처에게 절하는 기자의 모습
▲ 부처에게 절하는 기자의 모습

슬슬 배가 고프던 차에 점심시간이 됐다. 발우공양을 하기 전 스님과 공양게송을 읊었는데, 이는 공양물에 깃들어진 정성에 감사하는 의식이다. 점심은 연잎밥과 시래깃국 그리고 채소로 이뤄진 반찬이었다. 사실 템플스테이를 오기 전부터 기자가 가장 크게 걱정했던 점이 고기 없는 반찬이었다. 그러나 밥에 은은한 연잎 향이 배어있어 구수한 국과 잘 어울렸고, 다양한 반찬들과 신선한 쌈이 입맛을 확 돋워 건강해지는 맛이었다. 걱정과는 다르게 기분 좋은 식사였다.

▲ 발우공양 때 먹은 음식
▲ 발우공양 때 먹은 음식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난 뒤에는 음악 감상을 할 차례였는데, 감상실에는 절에선 볼 수 없을 것 같은 최신식 스피커들이 준비돼 있었다. 목탁 소리나 국악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스님은 기자의 취향을 저격하는 ‘야생화’와 ‘Love Poem’과 같은 노래를 틀었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는 노래들을 들으니 복잡했던 생각들이 자연스레 비워지며 기분 좋은 나른함이 느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태극권을 배우는 시간이 됐다. 스님이 가르쳐준 기본 동작은 스쾃과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이었다. 몸이 머리를 따라주지 않아 힘들었지만 오랜만에 땀이 나게 운동하니 기분은 상쾌했다. 몸도 마음도 0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오늘 활동의 마무리는 역시 명상이었다. 그 주제는 ‘움직임의 원천은 무엇인가’였고 앞서 했던 명상과 다르게 10분 동안 한 곳을 응시하며 정해진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지만, 주제에 대한 답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흘렀다.

▲ 삼성여락정으로 올라가는 길
▲ 삼성여락정으로 올라가는 길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후 기자는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삼성여락정을 혼자 산책했다. 방문객 대부분이 떠난 후여서 사찰은 조용했다. 이번 템플스테이를 통해 바쁜 일상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시 멈춰 서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의 힐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앉아 잠시 주변 소리에 집중한다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생각들이 정리될 것이다. 멈춰진 오늘 하루 덕분에 기자는 내일의 일상을 더 열심히 살 수 있게 됐다.

이은솔 기자
이은솔 기자 다른기사 보기

 ssol_0609@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05-19 19:06:15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서 올라온 기사답게 마음이 편해지는 글이네요~ 기자님 항상 응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