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에 관한 단상
거리두기에 관한 단상
  • 주재형(철학) 교수
  • 승인 2021.05.18 14:29
  • 호수 14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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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형(철학) 교수
주재형(철학) 교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18장에는 군주에게 여우와 사자가 될 것을 권유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현명한 군주라면 신의를 지키고 정직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때로는 사자처럼 폭력도 불사하고 더 나아가 여우처럼 교활하게 거짓말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그의 유명한 현실주의적 정치관을 잘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군주들은 유덕한 자들이라기보다는 속임수와 폭력을 쓰는 데 능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니 군주에게 덕보다는 폭력을, 진실보다는 거짓을 권할 수밖에.


다시 『군주론』으로 돌아가 보면, 같은 18장 말미에서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손으로 만져보고 판단하기보다는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볼 수는 있지만,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기 때문입니다.” 먼 거리에서 바라볼 수만 있는 군주의 이미지는 실체 없는 것이고 믿을 것이 못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속고 현실에서 진실과 정의는 무력하다.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단지 눈으로만 만나게 될 때, 온갖 오해와 기만이 독 안개처럼 피어나기 시작한다.


사람들 사이에 거리가 없을 수 없지만 이 거리가 거짓과 속임수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것 또한 거리를 두고서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가 말한 대로 아름다움은 모든 이해관계를 넘어선 무관심한 시선만이 볼 수 있는 것이다. 보들레르가 「지나가는 여인에게」라는 시에서 길거리에서 마주친 여인의 매혹에 대해 썼을 때, 그는 분명 그 여인과 화자를 떼놓는 거리가 아름다움의 원천임을 감지했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의 삶 또한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볼 때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는 단지 인간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다. 인간들 사이의 거리가 발생시키는 아름다운 거짓 또한 인간 사회의 구성 성분이다. 이 아름다운 거짓은 마키아벨리의 여우와 같은 군주를 낳았고,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개념으로 변신했으며, 보들레르의 여인이 발휘하는 순간적인 매력이 됐다. 인간들 사이의 거리 때문에 정의와 진실이 직접 권력을 얻는 일은 아마 드물거나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불의와 거짓만이 득세하는 것은 아니다. 거짓 중에는 추한 것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 고귀한 것도 있기 마련이며, 그래서 정의와 진실은 아름다운 가상으로서나마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정의와 진실이라는 아름다운 가상이 생겨나기에 알맞은 거리를 사람들 사이에 유지하는 일이 중요한 것 아닐까. 그 거리는 폭력의 힘이 미치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떼놓으면서도 사람들이 함께 살고 싶어 할 정도로 서로를 이어준다. 정의와 진실이 실현되지는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그 실현의 꿈을 포기하지 않을 정도만이라도 아름다운 외양을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또 다른 종류의 사회적 거리두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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