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홀로 설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그날까지
장애인이 홀로 설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그날까지
  • 임재욱·박애린·정세빈 기자
  • 승인 2021.05.18 13:05
  • 호수 14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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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탈시설

Prologue
작년 12월 발달장애인 시설인 ‘신아재활원’(이하 신아원)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하자 시설 자체를 코호트 격리(감염자가 발생한 의료 기관을 통째로 봉쇄하는 조치)하면서 장애인 탈시설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장애인 인권단체들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장애인들의 긴급 탈시설을 촉구했지만, 신아원 거주인의 재입소가 강행되면서 장애인에 대한 인권 문제가 논란시됐다. 이에 본지는 장애인 탈시설의 현장과 그들을 향한 사회 시선을 확인하고자 취재에 나섰다.

 

장애인들은 왜 가짜 정당을 만들었는가
지난 1월 24일 기자는 서울시장 예비후보자등록 정당을 살펴보던 중 자신을 ‘보궐선거 시작 전에 해산할 가짜 정당’이라고 소개하는 탈시설장애인당을 보게 됐다. 관련 기사를 살펴보니 ‘장애인 정책에 무관심한 대중을 환기시키기 위함’이라는 창당 목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장애인 권리 보장은 무엇일까. 이에 기자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지난 2월 23일 탈시설장애인당 합동 유세 선전이 진행 중인 마로니에 공원을 찾았다. 유세장 근처에 도착한 후 보편적인 정당 유세와 다른 한적한 분위기에 당황했지만, 이내 그들의 목소리에 집중해봤다.


유세에 참여한 후보자들은 장애인 탈시설의 필요성과 그들을 향한 관심의 중요성에 대해 성토하고 있었다. 이미정 후보는 “시청각, 뇌병변, 발달장애인의 의사소통 지원 확대”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박현철 후보는 “장애인들은 사회에서 소외돼 편견 속에서 살고 있다”고 지역사회에 호소했다. 그러나 주변인들은 일말의 눈길 한번 없이 무심하게 정면을 응시한 채 걷고 있었으며, 잠깐 멈춰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관심을 두고 보거나 끝까지 듣는 이는 없었다. 경청하는 이 없어도 한동안 계속된 그들의 호소에는 절실함이 느껴졌다. 기자는 이러한 모습들이 후보자들이 말했던 무관심이 아닐까 생각했다.

▲ 탈시설장애인당 유세 현장
▲ 탈시설장애인당 유세 현장

 

장애인을 향한 사회의 움직임
지난 3월 신아원에 강제로 재입소한 장애인 강 모씨가 슬리퍼 차림으로 시설에서 도망 나와 탈시설 의지를 밝혔으나 서울시청은 지원을 유보하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여성공감과 같은 장애인 인권단체는 서울시청 후문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소식을 들은 기자는 농성현장으로 출발했고, 그곳에 다다르자 서울시청 직원들과 단체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천막 농성장의 모습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천막 농성장의 모습

기자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서울시청 직원 여럿이 ‘천막 철거’ 계고장을 내린 후 농성장 앞의 게시물을 강제로 제거하는 상황이었다. 기자는 거친 현장 상황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용기를 내 그들에게 말을 걸어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재환(46) 활동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서울시 측에서 농성 철거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농성하는 이유를 모르는 것”이라고 기자에게 한탄했다. 더불어 김 활동가는 “서울시는 단 한 명의 탈시설조차 지원을 못 하는 상황”이라며 “「서울시 탈시설 5개년 종합계획」에 따르면 장애인 800명을 탈시설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을 보면 그 계획에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설이 장애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더욱 옥죄는 것일 수 있다”며 “타의로 일생을 시설에서 보내고, 심지어 집단 감염과 인권유린의 위협까지 느끼는 이 이상한 구조에 의구심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들에게 있어 시설은 복지라는 이름의 구금인 것처럼 보였다. 장애인이 동네에서 함께 살아야 할 이웃임은 당연하다.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들은 누구나 응당 누려야 할 거주의 자유를 잃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탈시설 관련 법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기자는 탈시설 법안 발의에 참여한 공익인권법제단 ‘공감’의 염형국(47) 변호사를 찾아갔다. 염 변호사는 탈시설 지원법안의 쟁점인 ▲시설 거주를 원하는 보호자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 결정권 ▲시설 종사자 직업의 자유 침해에 대해 “본인이 원하지 않은 주거공간을 보편적인 주거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이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10년 이내 시설 폐쇄는 무리한 요구라는 여론에는 “예산과 정책이 뒷받침된다면 그리 무리한 요구가 아니며 궁극적으로 장애인들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함께 사는 구성원임을 천명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 농성장 밖 탈시설을 촉구하는 피켓
▲ 농성장 밖 탈시설을 촉구하는 피켓

 

탈시설, 그 후의 삶
지난달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보건복지부 양성일 제1차관이 정부 로드맵을 통해 탈시설 지원자 2천 명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직 시작 단계일 뿐이지만 장애인 탈시설을 위한 각계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지원 조직 구성, 예산 확보, 자립 여건 마련 등 당장 실행되기 어려운 정책이기에 실제 장애인이 시설에서 사회로 정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에 기자는 실제 시설에서 나와 자립한 당사자를 만나 현 생활에 대해 듣고자 노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활동가로 활동 중인 탈시설 당사자 추경진(54) 씨를 만났다.


추 활동가는 사고로 인한 경추척추손상으로 장애인이 됐고, 2001년 시설 입소 후 2016년까지 약 16년 동안 시설에서 생활했다. 그는 자신이 “시설에 버려졌다”며 “시설에서의 고립된 생활이 매우 우울하고 고통스러워 삶의 끝을 바라기도 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자신의 시설 생활을 담담히 회고했지만, 그의 어투에 담긴 세월의 고통은 감출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사회에 대한 향수병에 탈시설을 결심했고 다짐 후 2년 동안 준비 기간을 거쳐 시설을 나오게 됐다.


활동가가 된 계기에 관해 묻자 그는 “의지는 있어도 두려움에 시도하지 못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시작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장애인의 인권 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며 대중들에게 “장애인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닌,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장애인의 지역사회로의 전환에 있어 비장애인의 노력이 절실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탈시설,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
개인이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보던 중 경기도 장애인복지시설협회에서 장애인 단체를 규탄하는 내용의 기사를 보게 됐다. 이는 지금까지 기자가 만난 이들과는 정반대의 의견이었다. 장애인 단체가 코로나19를 악용해 시설 거주 장애인의 의사를 무시한 채 긴급 탈시설을 요구했고, 시설 거주자들이 다시 복귀할 수 없도록 위협적 행동을 한 것에 대한 처벌 요구가 주된 골자였다. 관련 사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기자는 곧장 경기도 장애인복지시설협회가 있는 수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중심지 수원역과 한참 떨어진 허허벌판에 있었다. 기자회견을 주관한 장애인복지시설협회 김원녀(61) 협회장은 “시설문을 쇠사슬로 묶어 시설 거주자가 시설로 복귀할 수 없게 하는 장애인 단체의 행보는 인권을 빙자한 인권 침해적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탈시설 용어에 대한 올바른 인식부터가 우선이라며 “탈시설은 공식 용어가 아니고, 용어 자체가 장애인 단체에서 시작돼 한쪽 의미만 담겨있다”고 ‘지역사회통합 돌봄'으로 명시해야 함을 전했다. 이어 김 협회장은 장애인의 지역사회로의 전환은 분명히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언급하면서도 “현 상황은 의사를 전달할 수 없는 발달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제안하고 있는 법률이 근시안적”이라는 문제점을 꼬집었다. 장애인 탈시설법은 여전히 논의될 부분이 많았다.


코로나19 이후 시설 종사자들은 시설 내 확산 방지와 감염 예방을 위해 매주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진행 중이었다. 기자는 한 시설 종사자로부터 “확진자이지만 보호자가 없어 입원 치료가 불가능한 장애인을 돌보기 위해 봉사를 지원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시설 속 가려져 있던 장애인들의 고통은 곪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Epilogue
스웨덴에서는 그룹홈(장애인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가정)도 시설이라며 장애인 시설이 차별적 장소임을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장애인 탈시설을 국정과제로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탈시설법조차 시행되지 않고 있다. 법이 실행되기까지 많은 난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난관을 뛰어넘어 장애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찾아야만 한다. 하루빨리 그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전해지길 바란다.

 

* 바로 잡습니다

1481호(지난 18일) 12면에 실린 <장애인이 홀로 설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그날까지> 기사 중 '탈시설, 그 후의 삶'에서 '자원활동가로 활동 중인'을 '권익옹호활동가로 활동 중인'으로 정정합니다. 신문 제작 과정에서 오류로 기사 전반의 내용이 잘못됐음을 알립니다.

독자들께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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