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스티브 잡스의 몰락
여성 스티브 잡스의 몰락
  • 장두식(자유교양대학) 교수
  • 승인 2021.09.07 16:16
  • 호수 14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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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두식(자유교양대학) 교수
장두식(자유교양대학) 교수

 

엘리자베스 홈즈. 의료 스타트업 ‘테라노스’의 창업자 겸 전 최고경영자였고 2015년 『포브스』 선정 자수성가형 최연소 여성 억만장자였다. 그녀는 31세에 순자산이 45억 불이나 됐다. 그녀가 이렇게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은 것은 한 방울의 혈액으로 260여 종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의학 진단 키트 ‘에디슨’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디슨 키트는 의학자나 생명공학자가 아니더라도 의심할 만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에디슨이 갖고 있었던 각종 의혹은 그녀가 창출한 이미지와 대중매체가 창작한 스토리텔링에 의해 수면 아래로 잠겼다. 그녀는 실리콘밸리에 소재하고 있는 명문 스탠퍼드 대학교를 중퇴했고 금발의 잘생긴 외모와 검은색 터틀넥을 드레스 코드로 활용해 여성 스티브 잡스라는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런 그녀를 대중매체는 호의적으로 보도하며 대중적인 인기가 치솟았다. 그녀의 인기에 영합해 존 바이든과 빌 클린턴 같은 정계인사들과 ‘알리바바’의 마윈과 같은 재계 인사들은 극찬을 쏟아냈고, 미국의 최대 체인 약국 ‘월그린’과 계약까지 맺었다. 그렇게 테라노스는 90억 불의 가치를 가진 메디컬 유니콘 회사로 급성장했다.


그녀의 성공은 할리우드의 스타 탄생과 유사했다. 문화 자본과 대중매체는 실리콘 밸리에서의 백인 여성 성공 스토리를 과대 포장해 하나의 신화로 재생산했고 대중들은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에 열광했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었다. 2015년 월스트리트 저널의 존 커레이루 기자의 취재로 에디슨의 허구성이 드러났다. 처음부터 실험 결과에 조작이 있었고 대부분의 진단은 다른 기업에서 출시한 기기를 활용했다는 내부고발자의 폭로가 잇달았다. 2017년 테라노스의 모든 연구소가 폐쇄됐고 현재 그녀는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연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중이다. 유죄가 확정되면 최고 징역 20년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홈즈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상식이 어떻게 대중매체가 만들어 놓은 신화에 의해 무너지는가를 목격할 수 있다. 대중매체가 캐스팅한 인물이나 사건은 모두 다니엘 부어스틴이 주장한 의사사건에서 벗어날 수 없다. 희대의 사기꾼 엘리자베스 홈즈가 『포춘지』의 표지 모델이 되고, 『타임지』가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으로 선정한 것은 바로 의사사건이었다. 전통 영웅들이 스스로 자기를 만들었다면 현대 영웅들은 대중매체가 창조한다. 이렇게 현대의 영웅이 탄생하면 롤랑 바르뜨가 비판한 신화화가 일어난다. 즉 대중매체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가 보편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짓된 자연스러움이 상식과 과학을 전복시키게 된다.


우리는 인터넷과 대중매체가 거대한 외물로 작동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사실과 본질보다는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이 주인처럼 느껴지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필귀정(事必歸正)이 진리이다. 결국 사실과 본질은 드러나게 된다. 엘리자베스 홈즈의 성공과 몰락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시대도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정신이자 방법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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