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지는 숨비소리…해녀에 귀 기울이다
작아지는 숨비소리…해녀에 귀 기울이다
  • 임수하·윤다운·정소연 기자
  • 승인 2021.09.07 14:58
  • 호수 14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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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

Prologue
‘제주 해녀’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자랑스러운 세계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것과 달리, 제주도청의 「2020년 해녀 현황조사서」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현직 해녀는 3천613명으로 1970년대의 1만4천여 명과 비교해 약 75%가 감소했다. 또한 그중 60세 이상 해녀의 비율은 89.2%로 심각한 고령화를 보이고 있다. 그들의 존속이 우려되는 상황 속에서 기자는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해녀의 삶을 쫓아 제주도로 향했다.

 

수천 년의 역사와 함께
가장 먼저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고 싶었던 기자는 ‘제주해녀박물관’(이하 해녀박물관)을 찾았다. 해녀박물관으로 향하던 기자는 자신의 가족도 해녀라고 소개한 택시 기사 덕에 해녀의 고장에 발 디뎠음을 실감했다. 도착한 해녀박물관에서는 부용식(53) 관장과 권미선(42) 주무관의 안내를 받아 더욱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해녀박물관은 제주도 여성으로서의 해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치마로 만든 테왁(물질할 때 기본이 되는 도구)을 싸는 천과 같은 손때 묻은 기증품과 그들의 육성이 담긴 인터뷰 영상이 해녀의 고된 삶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부 관장은 “물질은 기계나 장비 없이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원시적인 어로 활동으로 위험도가 높아 동료 간의 정과 연대감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공동체 정신은 사회에 대한 공헌으로 이어졌다. 권 주무관은 “해녀의 사회공헌은 일정 수익을 특정 목표에 사용하자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며 해녀들이 수익을 모아 온평초등학교의 재건 비용을 냈던 ‘학교 바당’ 이야기를 전했다. 기자의 질문에 예시 자료까지 꺼내 들며 열정적으로 답하는 모습에 해녀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불턱에 모여 몸을 녹이는 해녀들의 모습을 재현했다.
▲ 불턱에 모여 몸을 녹이는 해녀들의 모습을 재현했다.


직접 해녀의 터전을 살펴보고 싶었던 기자는 ‘한수풀 해녀 학교’(이하 해녀 학교)와 해녀 체험장의 문을 두드려봤다. 거센 비바람으로 체험은 취소됐지만, 우연히 해녀의 집에 초대받아 정영애(68) 귀덕2리 해녀 회장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해녀 경력 38년 차의 정 회장은 “잠수복이 없던 어머니 시절에는 물에 오래 있으면 추워서 불턱에서 몸을 데우고 아기들에게 미역귀를 구워 먹이기도 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모형과 터로 흔적만 확인할 수 있던 휑한 공간이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정감 있게 다가왔다. 


이어 그는 해녀였던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절대 해녀라 밝히지 말라고 당부했던 시절이 있었다며 “과거에는 해녀가 물에만 들어가 가정 살림에 소홀하고 게으르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제주 해녀항일운동과 유네스코 등재로 인해 해녀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전했다. 기자는 자주적인 삶을 살아온 제주 해녀가 박한 평가를 받았다는 안타까운 과거를 처음 접하게 됐다.

 

딜레마에 빠진 해녀 양성
정 회장과 대화를 나누며 기자는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해녀가 점점 줄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이에 관해 묻자 그는 “제주도 해녀가 되면 병원비 면제나 지원금 같은 혜택이 있다”며 “해녀증을 얻어 혜택만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어 새로운 해녀를 받는 방식이 까다로워진 것 같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기자는 신규해녀 유입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어촌계의 마음을 헤아리게 됐다. 이어 정 회장은 “젊은 층은 제주인의 서로 돕고 사는 정신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고, 고령 해녀들 역시 마음을 열고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해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서둘러 해녀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자가 만난 학생들은 모두 입을 모아 해녀가 되는 길이 어렵고 복잡하다고 외쳤다. 입문반의 임정은(42) 씨는 “해녀가 되고 싶지만, 조건도 까다롭고 어촌계에서 새로운 사람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재 해녀가 되기 위해서는 어촌계에 2년 이상 거주, 수협조합원 가입 외에도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해당 어촌의 해녀들과 어촌계 승인도 필요하다. 특히 승인 기준은 객관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감정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어 많은 학생이 곤란해하고 있었다.

▲ 해녀 학교 학생들이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해녀 양성 사업에 대해 임 씨는 “해녀를 필요로 하는 어촌계에 지원할 수 있게끔 정부가 학교와 지역 간 연계를 돕고, 어촌계와의 연결 다리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해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있었으나, 절차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해녀가 되고자 하는 학생들의 열정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직업양성반의 최수연(53) 씨는 “제주 바다와 해녀에 대한 동경이 해녀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며 해녀라는 목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학생들의 강렬한 마음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들을 생각하는 마음
딜레마에 처한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 기자는 해녀 학교 교장실에 방문해 해녀 양성에 힘쓰고 있는 이동열(63) 사무국장과 대화를 나눴다. 해녀 학교에 대해 이 사무국장은 “개교 이후 13년간 750여 명의 졸업생과 40여 명의 해녀를 배출했다”며 2017년 직업양성반이 생긴 이후 해녀 배출 수가 늘었고 32세 최연소 해녀도 이곳을 졸업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부터는 학교에서 배출한 해녀들이 어촌계에 잘 정착했는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시의 담당 해양수산과와 협의해 졸업 이후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가입비와 같은 문제로 지역 어촌계와 마찰을 빚곤 하던 신규해녀들의 부담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니 기자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 해녀 학교 학생들이 해녀 노래를 배우고 있다.
▲ 해녀 학교 학생들이 해녀 노래를 배우고 있다.

 

이어 학생들이 평소엔 어떤 수업을 듣는지 궁금하다고 묻자 이 사무국장은 “기본적인 이론과 실기 수업 외에도 일반 학교처럼 환경 미화, 수학여행, 운동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며 “해녀 수업은 물론 즐거운 학교생활도 만끽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때마침 학교에서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어 기자가 직접 참관해볼 수 있었다. 궂은 날씨로 인해 예정됐던 운동회가 취소되고 학생들은 해녀 노래를 배우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해녀의 삶이 녹아있는 ‘이어도사나’, ‘해녀 아리랑’, ‘해녀 소리’ 등을 부르며 교실을 노랫소리로 가득 채웠다. 성별, 나이, 지역에 상관없이 가지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해녀 노래로 하나가 돼 즐기는 모습에 기자는 바다와 해녀를 사랑하는 그들이 만들어갈 미래가 기대됐다.

 

해녀의 명맥을 잇는 손길
한편 해녀의 보존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물 밖에도 있었다. ‘제주 해녀 문화연구원’의 조남용(50) 씨는 해녀 학교를 졸업한 후 해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초등학생 대상 교육·연구 활동을 진행 중이었다. 최근에는 전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해녀 학교를 구상 중이라던 그는 "더 많은 학생이 해녀의 가치를 깨닫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해녀 문화 보존에 쏟는 그의 열정은 더 많은 사람에게 불씨로 퍼져나갈 듯 보였다.


뭍으로 나온 해녀는 조 씨만이 아니었다. ‘김녕 금속공예벽화 마을’(이하 김녕 벽화 마을)에는 다양한 해녀들의 모습이 벽화로 간직되고 있었다. 조형물의 해녀들은 각각 그들만의 개성을 담고 있어 보는 이에게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이곳에서는 김녕 벽화 마을 프로젝트를 기획한 ‘다시방프로젝트’ 남현경(38) 대표의 사연을 들어볼 수 있었다. 8년 전 이곳에 자리 잡은 남 대표는 이 마을을 유명 관광지 사이 스쳐 지나가는 마을에서 가봐야 하는 마을로 만들고 싶었다며 “특히 해녀가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해녀를 주제로 한 작품이 가장 많다”고 전했다. 

▲ 유쾌한 해녀의 모습을 담은 벽화가 걸려있다.
▲ 유쾌한 해녀의 모습을 담은 벽화가 걸려있다.

 

담벼락 곳곳에 그려진 형형색색의 화살표는 기자를 작품이 설치된 담벼락으로 이끌었다. 작품들은 들쑥날쑥 저마다의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어 발견할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남 대표는 자신의 작품인 <원더해녀>에 대해 “해녀들이 즐거운 분위기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삶이 고될 것이라 속단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만들었다”며 밝고 당당한 해녀의 이미지를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권오미(52) 씨는 “처음에는 주민들이 관광객들로 인한 불편을 호소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본인의 집에도 설치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며 마을 주민의 긍정적인 반응을 알렸다. 해녀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기자는 본지를 통해 해녀를 알리는 데 작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Epilogue
바다와 한 몸이 돼 살아가는 해녀의 하루는 단순한 어업이 아닌, 그들의 주체적인 삶과 공동체 정신을 담은 전통이자 지켜야 할 자긍심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해녀 문화를 지키고 전승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힘쓰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니 우리가 아직 늦지 않았음을 느꼈다. 제주 해녀의 가치를 알고 지켜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변화로 신입 해녀가 늘어나고,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해녀 문화가 먼 훗날까지도 유지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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