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의 경계를 넘어
외지인의 경계를 넘어
  • 임수하 기자
  • 승인 2021.09.07 16:22
  • 호수 14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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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영역 밖 사람에게 왠지 모를 경계심을 갖곤 한다. 우리 편과 남의 편, 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나누는 기준은 각자 달라도 친밀함을 더 느끼게 되는 선 하나씩은 갖고 있다. 그 경계선은 우리를 더 가까이 만드는 울타리가 되기도, 더 멀게 느껴지게 하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선 학연, 지연, 혈연을 통한 인맥이 끈끈하다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평소 기자는 이런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기자와 타인의 연관성을 발견하면 왠지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들곤 했다. 기자는 본지 12면을 취재하면서 다양한 장소를 방문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 중 새롭게 제주도에 정착한 이들은 기자에게 원주민들이 외지인에 대한 선이 있다는 말을 건넸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해녀 학교의 학생들 역시 외지인에 대한 경계선을 체감하고 있었다. 해녀가 되기 위해서는 지원하고자 하는 마을에 일정 햇수 이상 살고 있었어야 한다는 기준 때문이었다. 분명 그러한 기준이 생긴 이유도 있겠지만, 신규 해녀들이 타지에서의 생업을 포기하고 승인 여부가 확실치 않은 일에 전념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해 보였다. 


기자가 원주민들의 외지인에 대한 경계를 크게 인식하게 된 것은 김녕 금속공예벽화 마을에서 주민에게 말을 묻던 중이었다. 한 주민은 해녀 사회가 외지인을 받아들이는 게 늦다고 견해를 밝히며, 자신은 제주도에 내려와 20년 가까이 살았지만 아직 외지인으로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그 말에 기자는 의아했다. 마을에서 나고 자란 청소년보다 오랜 시간 마을에 살았을 세월이지만 여전히  마을 사람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그의 상황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기자의 의문에 대한 해결은 아이러니하게도 제주도에서의 경험에 있었다. 마을의 해녀를 취재하러 나선 기자는 해녀들과의 대화에서 기자를 ‘육지 사람’, ‘서울 사람’이라고 칭하는 모습에 자신도 외지인이라는 경계선 바깥에 있음을 경험했고, 기자 역시 해녀를 만나기 전 그들의 제주도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할까 미리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취재를 위해 갑작스레 찾아온 기자에게 수박과 전통 떡을 내어주며 흔쾌히 취재에 응하는 해녀에 인터뷰가 끝날 때쯤엔 모두가 웃으며 편히 대화할 수 있었다. 이런 모습에 기자는  괜한 걱정에 미리 거리감을 느낀 건 아닌지 자신의 태도를 반성할 수 있었다. 


경계심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결국 각자의 마음과 생각이다. 그렇다면 경계선을 허무는 방법은 개인의 마음가짐과 이해에 달린 것이 아닐까. 외지인이라는 생각에 거리를 두기보다 해녀 보존이라는 목적을 가진 공동체, 같은 마을에 사는 주민이라는 생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이번 취재로 기자는 처음 만난 상대라 할지라도 그들을 나의 경계선 밖으로 쉽게 밀어내지 않도록 마음을 연 채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임수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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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rolla79c0@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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