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길어지는 장마, 무기력함을 담다
⑭ 길어지는 장마, 무기력함을 담다
  • 음악칼럼니스트 천미르
  • 승인 2021.09.07 16:35
  • 호수 14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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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도 지나가고, 무더위도 이제는 지나간 듯하다. 그런데 왜 다시 이렇게 비가 계속 내리는 걸까. 마음껏 밖에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습도도 높아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도대체 언제 이 지겨운 장마가 끝날까. 장마의 끝에는 나의 이 무기력함도 끝이 날까.

 

Lost Boy - Ruth B

비가 오는 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밀려오는 우울한 감정. 행복한 기억들보다는 앞으로의 걱정과 고민거리들이 먼저 떠오른다. 코드로 진행되는 피아노 선율과 차분한 보컬로만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오늘의 첫 번째 추천곡 ‘Lost Boy'다. 피아노와 보컬 외에 그 어떤 사운드도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특유의 공허한 비 오는 날의 감정을 잘 대변해주는 듯한 곡이다. 피터 팬에 나오는 네버랜드에서 길을 잃어버린 듯하다고 말하는 가사도 공허함과 무기력함 속에서 뭘 할지 모르는 누군가를 표현해주는 것 같다. 아무런 계획도 없고, 뭔가 하고는 싶지만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는 그런 순간 약간은 위로가 될 수 있는 곡이라 생각된다.

 

Honesty - Pink Sweat$

우중충하게 흐린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어느 순간 멍해지는 것을 경험해 본 적 있는가? 처음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다가도 정신 차려보면 멍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기타의 사운드와 쓸쓸함이 가득한 하이톤의 보컬이 인상적인 두 번째 추천곡이다. 한마디 한마디 끌지 않고 끊어지는 기타 연주는 창틀에 조금씩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느껴진다. 할 일 없이 지루한 이 순간 같이 시간을 보낼 누군가를 간절히 바라는 느낌도 전해진다. 앞서 소개한 첫 번째 곡처럼 기타와 보컬 외에는 어떤 사운드도 들어가지 않아 공허한 분위기가 잘 나타난 곡이다.

 

Pass by - Cardboard Box(feat. Big Hee)

비 오는 날의 센치함을 표현하는 듯 무심하게 연주되는 기타의 사운드. 빗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드럼의 심벌 사운드와 거기에 레트로한 감성까지 더해주는 의도된 노이즈 까지. 뒤늦은 장마로 할 일 없이 가만히 집 안에 있기만 한 우리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대변해주는 듯한 세 번째 추천곡 ‘Pass by'다. 며칠째 이어지는 비로 인해 더는 집 안에서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어진 허망한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듣는 이로 하여금 나른하게 만드는 보컬도 비 오는 날의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나타내는데 한몫을 한다. 페이드아웃 되면서 서서히 끝이 나는 아웃트로 뒤로 낡은 라디오에서 잔잔히 흘러나오는 노이즈가 뒤따를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Space - AUDREY NUNA

한국계 미국인 아티스트로 친근한 활동명을 갖고 있는 오드리 누나의 올해 발매된 신곡 ‘Space'가 오늘의 네 번째 추천곡이다. 오늘의 주제인 무기력함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라 생각한다. 공기가 많이 들어간 보컬의 강약 조절이 너무나도 인상적이다. 한 곡의 도입부부터 나오는 베이스 사운드는 무기력함이라는 늪이 우리를 끝없이 가라앉도록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앞서 설명한 보컬은 그 늪에서 헤어 나오려고 하지만 발버둥 칠수록 더 깊게 끌려들어 가는 모습처럼 곡의 후반부로 갈수록 간절함이 묻어난다. 무기력함에 깊게 빠질수록 자신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만 가득하게 된 누군가가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Falling - Harry Styles

원디렉션의 아이돌 멤버에서 어엿한 솔로 아티스트로 성장한 해리 스타일스의 곡 ‘Falling'이 오늘의 마지막 추천곡이다. 마지막 곡은 앞서 소개했던 곡들과는 다르게, 무기력함에 빠진 누군가가 다시 한번 떨치고 일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벌스에서 담담한 보컬은 축 처져있는 우리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훅에서는 조금 더 힘 있는 보컬로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뻗어주는 듯하다. 보컬과 함께 연주되는 피아노 사운드도 처음에는 우울한 느낌이 들다가 어느 순간 희망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픔을 견뎌내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은 가사도 결국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내려고 하듯이 길어지는 장마 속 지루하고 무력한 하루하루가 지나고 다시 밝은 해와 함께 즐거운 일들이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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