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할 수 있는 용기
저항할 수 있는 용기
  • 변영호 교사
  • 승인 2021.09.07 16:27
  • 호수 14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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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남방동사리

 

▲ 2천332일을 기록한 남방동사리 보호 현수막이 걸려있다.
▲ 2천332일을 기록한 남방동사리 보호 현수막이 걸려있다.

 

거제도 산양천에 특별한 현수막이 있다. 환경단체도 아니고 연구기관도 아닌 ‘하늘강’이라는 초등학교 과학탐구 동아리가 걸기 시작한 현수막이다. 현수막 내용은 멸종 위기 1급 남방동사리를 보호해 달라는 요청과 보호종을 잡으면 법적으로 벌을 받는다는 글이다. 


우리나라에는 남방동사리와 비슷한 물고기 3종이 있다. 사람들이 남방동사리를 보면 “우리 동네에서도 살고 있는 물고기”라고 한다. 우리 둘레에 흔하게 보이는 동사리와 남방동사리가 많이 닮았다. 비슷해 보이지만 위에서 보면 남방동사리에는 나비넥타이 무늬가 있다. 그래서 하늘강 아이들은 나비넥타이를 한 물고기라고 별명을 붙였다. 물길이 다른 한강 수계에는 무늬가 얼룩덜룩한 얼룩동사리가 산다. 물길마다 비슷하지만 다른 종이 산다.


남방동사리는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이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거제도에만 사는 물고기다. 거제도 17개 하천 중에서 유일하게 구천천(산양천) 권역에서만 발견된다. 거제에서 사라지면 영원히 우리나라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남방동사리는 일본에도 산다. 먼 과거에 거제도 물길이 일본과 이어져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고기 분포는 먼 옛날 지구 물길이 어떻게 이어져 있었는지 이해하는 중요한 퍼즐이다. 


현수막이 걸려 있는 장소는 민물고기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남방동사리 채집과 연구를 위해 오가는 곳이다. 같은 장소에 2천332일째 현수막이 걸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단일종 보호를 요청하며 가장 긴 시간 동안 한 곳에 게시된 현수막이다. 이렇게 오래 현수막을 건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거제도 물길은 아픔을 품고 흐른다. 최근 30년 동안에 쉬리와 꺽저기라는 민물고기가 거제도에서 사라졌다. 이 두 종은 2000년 이후 거제도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얼마 전 국립중앙과학관은 거제도에서 사라진 쉬리와 꺽저기 표본을 보관하고 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거제도에 쉬리와 꺽저기가 살았다는 역사는 국립중앙과학관 어류표본실 알코올에 담겨 있는 표본이 유일하다. 쉬리와 꺽저기 다음 차례가 남방동사리다. 쉬리와 꺽저기가 왜 사라졌는지 어떻게 사라졌는지 따져 묻고, 생태계 보호가 필요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기후 위기가 남방동사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 위기로 100년마다 한 번 오는 대규모 홍수를 막기 위해 하천 정비 사업 중이다. 강폭을 30~40m 넓히고 다리도 새로 놓는다. 공사 기간에 남방동사리 수난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강수량 때문에 수난당하는 묘한 상황이 남방동사리가 처한 현실이다. 


남방동사리가 살아가는 하천 모습들도 계속 변한다. 강 옆에 집을 짓고, 펜션과 식당도 생겼다. 남방동사리가 사는 구천천은 중간에 구천댐이 있어 강 중상류와 중하류역이 단절된 불안정한 공간이다. 사는 구간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안정적 하천 구간은 2.3km 내외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이 구간을 안전하게 보호해도 남방동사리 생존은 불안하다.


오늘 기준 2천332일째, 새로운 현수막을 걸며 무거운 맘도 함께 건다. 사랑한다는 것은 저항할 수 있는 용기다.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며 저항하고 있는가?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얼마 동안 저항 중인가? 초등학교 학생들이 현수막을 걸며 묻는다. 


 

변영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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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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